둘째의 생일을 준비하는 방법

21.04.23(금)

by 어깨아빠

시윤이 생일이 드디어 다음 주다. 그동안 시윤이는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3월에 누나의 생일 때는 생일이 되기도 전부터 생일이 지나고 나서까지 끊이지 않는 택배 행렬(뭐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지만 시윤이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에


“엄마아. 자꾸 누나 선물만 늘어나니까아 조금 속상해여어”


라며 심경을 고백하기도 했다. 얼마 전 지난 동생의 생일에는, 처음이라 그만큼 성대하게 축하를 받는 동생을 보며 왠지 모르게 쓰린 속을 달랬을 거다. 연으로 따지면 가운데지만 월로 따지면 하필 마지막이라 이렇게 됐다. 시윤이는 자기 생일은 왜 이렇게 늦게 오는 거냐며 푸념 섞인 기다림을 얘기하곤 했다.


시윤이의 이러한 사정은 아내와 나는 물론이고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도 잘 알고 계셨다. 그리하여 시윤이 생일 대작전이 전개됐다. 그 신호탄을 (내) 엄마가 쏘아 올렸다. 레고를 집으로 배송시켰다. 일부러 택배로. 그저께쯤 도착했는데 시윤이가 보지 못하게 숨겨두고 있다가 아내가 오늘 꺼내놨다. 레고를 들고 사진을 찍은 시윤이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시윤이 못지않게 소윤이도 좋아했다고 했다. 사실 시윤이가 직접 조립할 수 있는 수준의 레고는 아니었다. 요즘 한창 레고에 맛을 들인 소윤이는, 이런 상황을 자연스레 파악했을 거고. 이게 웬 떡이냐 싶었을 거다. 아내가 소윤이에게


“소윤이는 왜 좋아”


라며 모르는 척 물어봤는데, 시윤이가 대신 대답했다.


“사랑하는 시윤이가 선물 받은 게 기뻐서 그런 거 아니에여어?”


시윤이의 이 순수함. 오래오래 간직해라.


고모부가 사준 여름 샌들도 도착했고, 물론 엄청 좋아했다고 했다.


시윤이 생일은 다음주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모이는 건 내일이다. 거기에 맞춰 내일은 장모님이 사 주신 선물이 도착할 예정이다. 물론 택배로. 아내와 내가 산 선물은 다음 주에, 진짜 시윤이 생일쯤 도착할 거고. 우리 집의 짠한 둘째를 위한 온 가족의 고민과 정성이 참 깊다.


다행히 소윤이의 숨소리는 많이 괜찮아졌다고 했다. 열도 다 떨어지고 보기에도 멀쩡해 보인다고 했다. 코가 막히고 콧물이 나는 건 여전했지만. 내 생각에 감기 바이러스가 우리 집을 훑고 간 게 아닐까 싶다. 아내와 나는 정신력으로 이겨냈지만 아이들은 그러지 못한 거고. 아이 키우기 전에는 몰랐지만 ‘아프고 나면 큰다’는 말을 벌써 몇 번이나 체감했다. 이번에도 아프고 나면 또 쑤욱 클 거다. 소윤이나 시윤이도 그렇지만 서윤이게 별로 안 아프고 지나간 게 다행스럽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이제 나름대로 아픈 경험이 쌓여서 나름대로 잘 이겨내는데, 서윤이는 아직 그러기 힘드니까. 물론 서윤이도 아프면서 크는 거지만, 그래도 아픈 건 속상하다. 누구든.


일이 생각보다 늦어져서 정시에 퇴근을 하지 못했다. 아내에게 미리 연락도 못했다. 제때 퇴근하지 못하는 게 거의 없는 일이라 당연히 아내도 예상을 하지 못했다. 아내는 내가 제시간에 오는 줄 알고 집 앞 분식집에 저녁을 주문해 놨다고 했다. 오는 길에 찾아오라고 하려고. 예상치 못한 남편의 퇴근 지연에 아내는 적잖이 당황했다. 갑작스럽게 애 셋을 데리고 주문한 음식을 찾으러 식당에 갔다.


그러고 나서 자기 전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는 듣지 못했다. 난 퇴근하고 바로 교회로 갔다. 교회에 가기 전에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두 잔 샀다. 내가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예배가 끝나고 아내에게 줄 얼음을 넣지 않은 아이스 아이리시 라떼.


집에 돌아와 마주한 아내의 얼굴은, 거친 풍파를 모두 견뎌내고 평안의 세월에 접어든 노인 같았다. 여유로워 보이는 표정 속에 지난 시간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오늘은 애들이 안 보고 싶어 했어?”

“보고 싶어 했지. 소윤이가 그러던데? 이번 주에 아빠랑 집에서 저녁을 한 번도 같이 못 먹었다고”

“아, 그랬나?”


월요일에는 아예 못 만났고, 화요일에는 밖에서 먹었고, 수요일에는 나 혼자 먹었고, 어제도 같이 못 먹었고. 일에 치여서 그런 게 아니라 뭐 대수롭지 않은 일이긴 해도, 어쨌든 나도 몰랐던 사실이다. ‘아빠랑 같이’ 저녁 먹는 걸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나름 아쉬운 한 주였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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