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7(화)
드디어 우리 시윤이의 생일이다. 시윤이의 목이 빠지다 못해 뽑혀서 하늘로 날아갈 정도로 기다리던 그날이 되었다. 선물로 시윤이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건 어디까지나 물질을 통한 서비스(?)였기 때문에 유효 기간이 짧다. 그래서 아쉬웠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짙은 기쁨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어제.
“여보. 나 내일 휴가 진행시킴”
그렇다. 오늘 연차를 냈다. 하루를 온전히 아들을 위해 내어주는 게, 우리 아들에게 나름 큰 선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소소한 이벤트(혹은 장난)를 즐기는 나는, 이번에도 밋밋하게 ‘아빠 내일 휴가 냈어’라고 밝히지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비밀로 했다.
아침에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찍 일어나서 방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작은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출근한 척하기’였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를 속이기에는 충분했다. 방에 숨은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거실로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내가 일부러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아, 우리 아들 생일이네. 아빠가 어디 숨어 있다가 짠하고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그치?”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런 일은 꿈에도 없을 거라는 듯, 전혀 기대하지 않는 말투로 아내의 말에 동조했다. 그 후로도 한 30분 정도를 더 방에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작은방 문이 굳게 닫혀 있는 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카톡을 주고받으며 언제쯤 나갈지 시기를 논의했다.
“시윤아. 작은방에 들어가서 엄마 가방에 가서 지갑 좀 꺼내 줄래?”
아내는 일부러 시윤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급히 문 뒤로 숨었다. 시윤이가 문을 열자 문이 내 몸에 부딪히며 덜커덩 소리가 났다. 시윤이는 신경도 안 쓰고 아내의 가방만 찾았다. 내가 먼저 시윤이의 등을 톡톡 두드렸다.
“O.O”
딱 이 표정이었다. 한 3초간. 그러더니 환하게 웃었다. 여전히 별말은 하지 못하고. 밖에서 성경 필사를 하던 소윤이는 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을 때 이미
“어? 문 뒤에 뭐가 있는 거지?
라며 작은방으로 왔다. 소윤이도 문 뒤의 무언가가 아빠일 거라는 생각은 못 했나 보다. 나를 마주하고는 시윤이랑 비슷한 표정과 과정을 거쳤다.
“아빠! 회사 안 갔어여?”
“어, 아빠 오늘 휴가 냈지”
“진짜여? 아빠. 너무 좋아여. 아빠 진짜 회사 안 가여? 지인짜?”
“어. 휴가라니까”
“아빠아. 아빠느은 왜 이렇게 장난 꾸러기에여어?”
“시윤이 생일이니까 깜짝 놀래 주려고 그랬지”
그렇게 깜짝 이벤트를 마치고 거실로 나왔는데 시윤이는 여전히 작은방이었다.
“시윤아. 뭐해?”
시윤이는 여전히 아내 가방을 뒤지며 아내의 지갑을 찾았다.
“시윤아. 지갑 안 찾아도 돼”
“왜여어?”
“그건 엄마가 시윤이 방에 들어가게 하려고 그냥 지어낸 말이었어”
“그래여어?”
아, 강시윤의 이 순박함. 이게 너의 매력이다.
미역국은 어제 아내가 끓였고, 오므라이스와 닭다리 구이를 더해 시윤이의 생일상을 차렸다. 닭다리를 구울 때 얇은 소금을 못 찾아서 굵은소금을 뿌렸더니 생각보다 많이 짰다.
“여보. 그런데 애들 닭다리가 조금 짜네”
닭다리에 곁들여진 과도한 짠맛을 중화시킬 요량으로 미리 선수를 쳤는데 아내가 한 점 먹어 보더니 인상을 쓰며 얘기했다.
“아우, 여보. 너무 심하게 짠데?”
“많이 짜긴 하지?”
그 뒤로 식사를 마칠 때까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빠. 근데 너무 짜다”
“너무 짜여”
“얇은 소금으로 하지 그랬어여”
“너무 짜서 다 못 먹을 지경이에여”
등의 혹평을 쏟아냈다. 그런 일이 별로 없기도 하지만 혹 아내의 음식이 뭔가 이상해도 절대 아이들 앞에서는 조금의 비판도 하지 않는 나로서는, 아내의 선제적인 별점 테러가 원망스러웠다.
가장 먼저 병원에 가야 했다.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모두 영유아 검진을 받아야 했다.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하는 덕분에 강제로 부지런했다. 안 그랬으면 최소 1-2시간은 더 늦어졌을 거다. 집에서 나가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뭔가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걸 감지했다. 뾰족하게 드러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뭔가 완전하지 않다는걸.
마침 노트북을 두고 온 게 생각나서 아내와 아이들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노트북을 챙기고 나서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홍삼진액도 한 포 마셨다. 간절했다.
‘아프면 안 된다. 우리 아들 생일을 이렇게 망치면 안 된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다시 병원 쪽으로 갔다. 아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여보. 많이 졸려 보이는데?”
라고 얘기했고, 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운전대를 아내에게 넘겼다. 그러고는 조수석에 앉아 쪽잠을 청했다. 그래도 호수 공원까지 한 20-30분 걸리기도 하는 데다가 카페, 김밥 가게에도 들른 덕분에 쪽잠 치고는 꽤 오랜 시간이었다. 자면서도 걱정이었다. 몸이 나아지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아들 생일은 어떻게 되는 건가. 다행히도 거짓말처럼 호수 공원에 도착해서 잠이 깨니 몸이 훨씬 괜찮았다. 차에서 불편하게 잤어도 나름 꼭 필요한 잠이었나 보다.
“소윤아, 시윤아. 걱정하지 마. 아빠 이제 괜찮아”
공원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시윤이 생일 선물로 받은 RC 자동차도 가지고 놀고, 킥보드도 타고, 자전거도 타고 그랬다. 그러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자전거를 빌리자고 했다. 트레일러가 연결된 자전거를 빌려서 나는 페달을 구르고 자기들은 트레일러에 타 보고 싶다고 했다. 오늘만 그 얘기를 한 건 아니었다.
“아빠. 언젠가 호수 공원에 가면 그때 봤던 거 그거, 그 뒤에 타는 자전거 꼭 타 보자여”
이런 얘기를 자주 했었다. 가까운 자전거 대여소에 가서 물어보니 처음에는 소윤이는 타기 어렵다고 했다. 소윤이가 타려면 안장 달린 자전거를 빌려서 거기 타야 한다고 했다. 당연히 무게 때문에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트레일러가 작아서 불편할까 봐 그런 거라고 하셨다.
“소윤아. 괜찮겠어? 소윤이한테는 많이 작을지도 모른다는데?”
“아빠. 괜찮아여”
소윤이와 시윤이는 둘이 함께 앉아 보더니
“아빠. 불편하긴 한데 그래도 탈 수는 있어여”
라고 얘기했다.
“사장님. 저건 얼마죠?”
“아, 한 시간에 만 오천 원이에요”
“아, 만 오천 원이요? 생각보다 비싸네”
“소윤아, 시윤아. 만 오천 원이래. 너무 비싸다. 안 되겠다”
“아빠아아아”
소윤이와 시윤이는 별말 없이 신음 소리를 내며 마음을 표현했다.
“아, 그래. 오늘 시윤이 생일이니까 타자 타”
소윤이와 시윤이는 굉장히 좋아했다. 둘이 같이도 태워 주고, 한 명씩도 태워 주고 그랬다.
“아빠아. 맨날 이런 거 보다가 내가 이런 걸 타고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여어”
우리 소박한 시윤이에게는 너무 즐거운 경험이었나 보다. 중간에 서윤이가 깨서 서윤이도 태워 봤는데 의외로 굉장히 좋아했다. 아내도 한 번 태워 봤는데, 트레일러가 생각보다 튼튼했다. 아내를 태우고도 거뜬했다. 물론 난 계속 페달을 밟았다.
“와, 아빠. 아빠가 오늘 회사를 안 가고 지금 우리랑 같이 노는 게 너어어어무 좋아여”
소윤이와 시윤이 둘 다 수시로 이런 얘기를 했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의 깜짝 등장은 올해 가장 잘 한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실컷 즐겁게 놀았다. 잠에서 깬 서윤이도 기분이 괜찮아서 별로 힘들지도 않았다. 그렇게 한 두어 시간을 놀고 다시 짐을 챙겨서 차로 돌아왔다.
저녁 먹을 곳은 미리 정해 놨다. 아내가 주기적으로 가고 싶어 하는 곳이었다. 짐을 트렁크에 싣고 차에 타려는데 아까 공원으로 출발할 때처럼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약발이 다 된 것처럼 갑작스럽게 기운이 쭉쭉 빠졌다.
“여보. 여보가 운전을 좀 해야겠다”
“왜? 또 힘들어?”
“어, 좀 그런 것 같네”
아까랑 똑같았다. 식당으로 가기 전에 에그 타르트를 사러 갔는데 거의 기절 상태였다. 아까처럼 몽롱하게 자면서 계속 생각했다.
‘아, 그래도 다행이다. 놀 때는 이러지 않아서’
그래도 벼르고 별렀던 아들의 생일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은 그랬는데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여보. 이래 가지고 밖에서 밥 먹을 수 있을까?”
“어, 괜찮아. 가자”
“아니 여보. 무조건 괜찮다고 하지 말고. 가서도 여보가 계속 이러면 오히려 우리도 더 힘드니까 여보도 무리하지 마”
“그럴까? 그럼 집으로 가자”
집으로 가는 동안 난 반 실신 상태였다. 아내와 아이들은 급히 저녁 메뉴를 정하느라 바빴다. 논의 끝에 짜장 떡볶이와 튀김, 순대 같은 걸로 정했다. 원래 먹으려던 것에 비하면 심하게 단출하지만, 시윤이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난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집 근처 약국에 들러서 약을 사서 먹기도 했다.
“시윤아. 미안해. 아빠 일단 좀 누울게. 아빠 일어나면 그때 같이 생일 축하하자”
“아빠. 괜찮아여”
“여보. 미안”
“뭘 미안해. 얼른 자”
평소에 많이 골골대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애들도 아픈 아빠의 모습이 어색한 듯했다. 하필 오늘 같은 날. 좀 편하게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눈을 좀 붙였다. 땀이 많이 나는 게 느껴졌다. 자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조금씩 나아진다는 느낌도 들었다. 한 시간 정도 잤을까, 분명히 아까보다는 또 괜찮아졌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이제 또 괜찮네”
불행 중 다행이 이런 건가. 나름대로 중요한 순간에는 몸이 괜찮았다. 애들이랑 밖에서 놀 때, 마지막으로 시윤이 생일 축하해 줄 때. 약의 힘이었던 것 같다. 조각 케이크에 초를 꽂고 아주 신나게, 굉장히 과장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오늘 하루가 올 한 해 시윤이에게 가장 행복한 날로 기억되길 바라면서.
“시윤아. 오늘 좋았어?”
“네에”
“뭐가 제일 좋았어?”
“아빠가 회사 안 가고 우리랑 같이 있는 거어”
“그래? 다행이네. 우리 시윤이가 좋아해서. 시윤아. 생일 축하해. 엄청 많이. 잘 자”
아내가 무척 피곤해 보였다. 갑작스럽게 남편 수발(?)까지 드느라 그랬는지 유독 초췌해 보였다.
“여보. 괜찮아?”
“어, 나는 괜찮아”
“아, 그래도 진짜 아까 놀 때는 괜찮아서 정말 다행이야”
“맞아. 진짜 은혜다 은혜”
“그러게. 애들도 엄청 좋아하던데?”
“그러니까. 여보의 오늘 작전은 아주 성공적이었어”
아들아. 아빠가 너의 생일을 위해 이렇게까지 했다. 이게 아빠의 마음이야. 직장인에게 연차 하루가 어떤 의미인지 아직 모르겠지? 끼이고 치어서 고생이 많은 아빠의 유일한 아들,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