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과 현실의 괴리

21.04.29(목)

by 어깨아빠

아침부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시윤이의 행동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묻는, 일종의 자문(?)을 구하는 메시지였다. 사실 어제 자기 전에도 시윤이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서윤이야 아직 우는 것 말고는 의사 표현을 못 하니까 그렇다 쳐도, 보다 사람다운 1호, 2호 중에서 특히 2호가 아내를 많이 힘들게 하는 편이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꽤 자주 아내의 뚜껑을 열리게 만드는 모양이다.


나의 입장은 항상 비슷하다. 일단 아내 편(?)이다. 기본적으로 아내와 나의 교육관이나 훈육관이 비슷하기 때문에 애써 의지를 발휘하지 않아도 일치할 때가 대부분이긴 하다. 오늘처럼 아내가 특별히 물을 경우에만 조금 상세히 얘기한다. 오늘 같은 날에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말한다. 말이나 글로 조언하는 건 너무나 이상에 가깝고, 현실은 또 다르니까. 나도 간헐적으로 그걸 경험하니까.


지금 우리 집의 상황은 대략 이렇다(이건 철저히 나의 시각 및 분석이다). 시윤이는 항상 뭔가 ‘고프다’. 그게 물질적인 무엇이든, 정신적인 무엇이든. 선물도 고프고, 관심도 고프고, 사랑도 고프고, 스킨십도 고프고, 시간도 고프고. 아내도 그걸 알긴 아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다. 무엇보다 막내가 너무너무너무 껌딱지다. 엄마에게서 떨어지면 바로 경보가 울린다. 그저 우는 게 불쌍해서가 아니라 한참 듣고 있기에는 너무나 괴로운 음역대의 까랑까랑한,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채찍질 당하는 기분이 드는 울음이라 그냥 방치가 안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막내랑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시윤이의 ‘고픔’은 항상 미충족 상태로 남고. 시윤이가 마음이 너그러울 때는 괜찮은데 그게 아닌 날에는 서윤이의 울음 못지않게 사람의 신경을 긁는 짜증으로 나타나고, 아내는 또 그게 견디기 힘들고.


무작정 ‘시윤이 마음을 알아줘야지. 무조건 잘해줘’라고 할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일단 모르는 척해야지’라고 할 수도 없다. 아내라고 이걸 모르는 게 아니다. 모르는 건 아니지만 가끔 잊고 사는 경우는 있다. 혹시나 잊고 산다면 다시금 기억해 보라는 차원에서 아내에게 원론적이지만 유일한 해법이 담겨 있는, 저 이야기를 다시 한번 했다. 대신 ‘시윤이와의 시간을 위해 집안일이 조금 덜 되거나, 서윤이가 많이 우는 건 조금도 잘못하는 게 아니다’라는 정도만 더 강조했다.


나의 카톡을 받은 후, 아내는 시윤이랑 방에 들어가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면서 얘기를 했다고 한 걸 보니 나름 좋은 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어 보니, 그때는 그렇게 이야기를 잘 나눴는데 오후에는 또 난리와 환장의 시간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 이게 인생이지. 이게 육아고. 이 땅의 모든 육아인들이 방송 육아, 인스타 육아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24시간 그렇게 우아하게 보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마 대부분은 아닐 거다. 방금 웃다가도 돌아서면 얼굴을 붉히기도 하는 게 아이들과의 시간이다. 어느 집이든.


아내에게 오늘은 저녁도 하지 말고 나가라고 했다. 막내에게 마지막 수유를 하고 나가야 하니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하는 건 어려웠지만,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라도 좀 놓으라는 의미였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피자를 먹고 싶다고 해서 피자를 시키기로 했다. 피자 얘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오늘 저녁은 특별식이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엄마가 나간다는 소식을 듣자 눈물바다가 됐다고 했다. 이것은 있을 때 잘 하지 못하고 떠나니 후회하는 자식들의 전형인 것인가.


피자는 나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요즘 자기도 나름대로 욕구 불만(단유)이 있는 서윤이는 낮잠도 한 번 밖에 안 자서 기분이 영 별로였다. 언니와 오빠가 먹는 피자를 자기도 먹겠다고 해서(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도우 부분만 조금씩 떼어주며 시간을 벌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가 나가는 게 못내 아쉬웠지만 그것 때문에 울고 그러면 아빠에게 더 큰 제재(이를테면, 평소에도 엄마랑 자지 못한 다거나)를 당할지도 모르니, 크게 내색하지 않는 눈치였다. 사실 소식을 들은 지 오래되어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충분하기도 했고. 또 애들이 많이 크기도 했다. 소윤이가 스스로 이렇게 얘기도 했다.


“아빠. 예전에는 엄마 나간다고 하면 우리가 막 울고 그랬잖아여”


사실 소윤이는 요즘 아빠를 향한 고유의 사랑과 정이 좀 깊어진 느낌이다. 내 베개를 가지고 잔다거나(내가 이게 너무 좋은가 보다. 자꾸 의미를 부여하네) 나에게 와서 안기는 게 늘었다거나 하는 걸 보면. 그에 비해 시윤이는 아직 그 단계는 아닐 거다. 조금 더 ‘아기’에 가깝다. 그래도 기특하게 엄마를 보내준다.


막내가 문제다. 일단 다 함께 들어가서 누웠다. 아내는 앉아서 서윤이에게 오늘의 처음이자 마지막 수유를 했다. 아내는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나갔다. 5초 정도 뒤에 서윤이가 거세게 울었다. 울면서 옆에 누운 내 몸을 타고 넘어가려고 했다. 문쪽으로 가겠다는, 엄마를 찾아 떠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누운 채로 배 위에 안고 달래 주려고 했는데 거부했다. 다시 눕히고, 다시 내 몸을 타고, 또 눕히고, 또 타고. 한 다섯 번 반복하고 나니 서윤이가 갑자기 바닥에 엎드리며 손가락을 빨았다.


‘뭐지? 포기했나?’


싶었는데 갑자기 벌떡 몸을 세우더니 또 매섭게 울었다. 5초 울다가 다시 엎드렸다. 그게 끝이었다. 농구 게임 한 판을 하면서 서윤이의 잠이 깊어지길 기다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깊이 잠든 것 같았다. 방 문을 열기도 부담스러워서 베란다로 비상 탈출을 했다. 서윤이는 그 뒤로도 나를 찾지 않았다. 중간에 한 번 공기 청정기 뚜껑이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나고 바로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아, 끝났구나. 들어가야겠네’


라고 생각했는데 서윤이가 너무 졸렸는지 조금 울다가 다시 조용해졌다.


약간의 불안감을 안긴 했지만 어쨌든 나도 자유였고, 딱히 할 게 없어도 혼자만의 시간을 누린 아내도 자유였고. 모두에게 유익한 자유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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