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피로

21.04.30(금)

by 어깨아빠

아내는 처가에 갔다고 했다. 소윤이랑 시윤이, 서윤이가 함께 욕조에 들어가 목욕을 하는 사진을 받았다. 서윤이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은 걸 보니, 많이 컸다는 걸 또 느꼈다. 돌 지나고 나서는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크는 느낌이다. 언니, 오빠와 함께 목욕하던 서윤이는 먼저 물에서 꺼내자 엄청 짜증을 냈다고 했다. 서윤이가 제일 깍쟁이처럼 굴 것 같다.


아내는 나에게 퇴근하고 파주로 와서 저녁을 먹는 건 어떠냐고 물어봤다. 아니, ‘그건 너무 갑작스럽지?’라고 물어봤다. 애들이 저녁 먹고 가자고 성화였던 것 같고, 장인어른도 손주들을 더 보고 싶으셨던 것 같다. 평소보다 더 피로가 느껴져서 선뜻 가겠다는 말이 안 나왔다.


“여보 저녁 먹고 올래?”


내 저녁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파주에서 저녁을 먹고 와도 괜찮다는 말이었다. 아내는 애들이 너무 강력하게 얘기해서 고민이라고 했다.


“여보는 올 생각이 없는 거죠?”

“여보가 오라면 가고”

“그냥 잘 얘기해서 데리고 갈게. 여보에게 혹시라도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여보가 원하는 대로 해. 가서 저녁 먹는 것도 괜찮으니까 여보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는 말이야”


아내는 퇴근 직전에 다시 카톡을 보냈다.


“여보. 그럼 와주세용. 미안해. 그냥 저녁 먹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갑시다”


나중에 자세히 들어 보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제발’ 저녁을 먹고 가자고 난리였다고 했다. ‘요즘에는 먹고 간 적이 별로 없다’는, 나름 합리적인 명분과 함께.


퇴근하고 가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오늘따라 몸이 너무 피곤했다. 밥 먹고 잠시 카페에도 들렀는데 그렇게 졸릴 수가 없었다. 보니까 아내도 비슷해 보였다. 이번 주에 하루 쉬며 놀았던 게 오히려 피곤했나.


집으로 돌아올 때 차가 두 대였다. 평소처럼 한대였다면 아내에게 운전을 맡기고 싶을 정도로 잠이 쏟아졌다. 아니면 시윤이 말처럼 견인장치를 달아서 끌려가고 싶기도 했고. 졸음을 쫓아내며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시윤이는 오는 길에 잠이 들었다. 낮잠을 안 잤고, 아주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밤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시윤이를 안고 집까지 올라가는데, 숨이 헐떡거렸다. 어찌나 묵직하던지. 방에 눕힐 때는 나도 모르게 내던지다시피 했다.


아내는 소윤이와 서윤이를 재우러 들어갔고, 난 바로 소파에 누웠다. 1시간 넘게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잔 건 아니었고 나름의 피로회복 시간이었다(이것저것 시답지 않은 영상을 봤다는 말에, 핑계를 붙이는 중). 아내가 다시 나올 때까지 산송장처럼 계속 그렇게 누워 있었다.


“여보. 뭐 했어?”

“나? 계속 누워 있었어. 조금도 안 움직였어”


너무나 신기한 건 그렇게 피곤해도 애들 재우고 놀 힘이 솟기는 한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커피, 케이크는 들어갈 배가 남아 있는 거랑 비슷한 건가. 아무튼 아내와 나는 정신을 좀 추스르고 영화를 봤다. 무려 새벽 2시까지. 조금도 졸지 않고. 영화의 마지막 10분은 서윤이도 함께였다. 서윤이는 영화가 10분 남았을 때쯤 깼다. 잠시 멈추고 들어가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짧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아내가 들어가면 못 나올 것 같았다. 본인이 그렇게 얘기했다. 그래서 서윤이를 데리고 나왔다. 물론 서윤이는 아내에게 기대 눈을 감고 손가락을 빨기에 바빴다. 서윤이는 그렇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우리와 함께였다.


영화가 끝나니 또 거짓말처럼 졸음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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