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02(주일)
어제 식당에서 싸 온 빵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아침으로 줬다. 삶은 감자와 계란, 옥수수를 넣고 속을 만들어서 마요네즈와 버무렸다. 급하게 만든 것치고는 그럭저럭 먹을 만했지만, 그렇다고 엄청 맛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맛있었는지, 처음에 반 개씩만 줬는데 나머지 반 개도 더 먹었다.
어린이 주일이라 평소보다 아이들 예배가 늦게 끝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선물 주머니를 하나씩 들고 나왔다. 선물은 젤리, 과자 같은 먹거리였다. 시윤이는 오늘도 누나랑 떨어졌다고 했다. 지난주에 비하면 훨씬 더 오랜 시간이었다고,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오늘은 말씀이 엄청 짧아서 시윤이가 한참 떨어져 있었어여”
역시 처음이 어렵지 한 번 시작하면 금방이다.
아침에 아이들에게 빵을 준 건, 밥이 없어서였다. 밥이 없는 건 어젯밤에도 알았지만 ‘그냥 샌드위치 만들어 주자’라며 넘겼다. 그게 점심까지 이어졌다.
“여보. 집에 밥 없지?”
“없지”
“점심에 뭐 먹지?”
“그러게”
아내가 샤브샤브를 얘기했다. 사람이 너무 많을 거 같아서 다른 곳을 생각해 보자고 했고, 아내는 칼국수를 제안했다. 칼국수 가게로 정하고 가려고 했는데 좌식 자리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서윤이를 어딘가에 고정시켜 앉혀 놓지 않는 식사 시간이 어떨지는, 굳이 경험해 보지 않아도 안다. 경험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고 보면 소윤이 때는 부스터도 꼭 챙겨 다녔다. 부스터는 물론이고 턱받이같이 자잘한 것도 잊지 않고 가지고 다녔다. 막내라서 굉장히 귀히 여기는 것과는 반대로 아내도 나도 굉장히 털털해졌다. 어차피 다 거기서 거기다. 챙기는 불편을 감수하고 불시의 상황에 조금 더 편할 것인지, 챙기지 않는 편리함을 누리고 불시의 상황에 조금 불편할 것인지의 차이다.
서윤이를 앉히지 않고 밥 먹을 자신은 없었다. 아내와 나는 처음 생각했던 샤브샤브 가게에 가기로 했다. 월남쌈도 있다는 말에 소윤이와 시윤이도 반겼다. 어제 아내가 소윤이와 시윤이 사이에 앉아서 밥을 먹었는데, 둘 사이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오늘은 내가 둘 사이에 앉고 아내가 서윤이를 챙겼다.
샤브샤브, 월남쌈을 먹으러 갈 때마다 이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와, 샤브샤브 한동안 안 먹고 싶다’라는 생각이 오늘도 강하게 남았다. 일단 자리부터 불편했다. 의자가 고정식이라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탁자를 애들 쪽으로 바짝 붙였더니 내가 왔다 갔다 하기가 불편했다. 수시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샤브샤브와 월남쌈인데. 앉아서도 쉴 틈이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끊임없이 라이스페이퍼를 제공해야 했다. 쌈 싸는 게 능숙하지 않은 시윤이를 돕기도 해야 했고.
“여보. 여보는 쌈 한 번도 못 싸 먹었지?”
“나? 어. 괜찮아. 월남쌈은 별로 안 먹고 싶다”
쌈 싸 먹을 여유가 없었고, 의욕도 없었다. 육수에 담긴 야채와 고기를 건져 먹는 것도 바빴다. 내 요령이 부족한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말 분주했다. 아내가 서윤이를 잘 챙기고 있는지, 아내는 잘 먹고 있는지 살펴볼 겨를도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식사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마려워여”
“뭐? 쉬 마렵다고?”
“아니여. 똥이여”
여기서 오늘 나의 가장 큰 실수가 나왔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고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쓰러졌다. 쉽게 말해, 짜증을 냈다. 그러면 안 됐는데, 차마 내 본능을 조절할 틈도 없이 새어 나왔다. 소윤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사실 바로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럴 정신이 없었다.
“여보. 샤브샤브는 먹고 나면 한동안 먹고 싶은 생각이 안 들지?”
“응. 샤브샤브는 이제 안 먹고 싶어”
그래도 서윤이가 울지 않고 끝까지 잘 앉아 있어서 그나마 나은 식사였다. 서윤이까지 난리였으면 내가 샤브샤브를 먹는 건지 샤브샤브가 나를 먹는 건지 몰랐을 거다.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엄청 졸렸다. 배가 많이 부르지도 않았다. 사우나에 가서 한 2시간 땀 빼고 온 느낌이었다.
예배도 늦게 끝났고, 밥 먹는 시간도 오래 걸려서 평소에 비하면 굉장히 늦게 집에 왔다. 거의 바로 나갈 시간이었다. 한 30분 정도 쉬다가 옷 갈아입고 다시 나왔다. 서윤이는 자고 있었다.
“여보. 왠지 여보랑 애들 나가면 바로 깰 거 같아”
“그러려나?”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냥 기분이 좋았다. 똥 마렵다고 인상 쓰던 아빠는 온데간데없었다.
“소윤아, 시윤아. 날씨 진짜 좋다. 그치? 기분 엄청 좋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운동장에서 엄청 잘 놀았다.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지 옷과 신발에 진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특히 시윤이 옷과 소윤이 신발이 심했다. 공교롭게도 둘 다 하얀색이었고. 아마 아내가 현장에서 봤으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난 아내만큼 신경이 쓰이지는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얼룩 제거는 아내가 전적으로 수고를 담당하니까.
나중에 들어보니까 같이 놀던 남자아이(시윤이 동갑)가 일부러 뿌렸다고 했다. 시윤이가 실수로 흙을 튀었더니 그랬다고 했다. 그래서 시윤이는 어떻게 했냐고 물어봤는데
“저는 그냥 가만히 있었어여. 누나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겠어’라고 얘기하라고 해서 그렇게 얘기했어여어”
“시윤이는 다시 흙 안 뿌렸어?”
“네”
“이야. 잘했네. 잘 참았어. 똑같이 하면 안 되는 거야. 우리 시윤이 짱이네”
무조건 참기만 하라고 가르치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일단은 참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계속 참다가 정 안 되면 너도 똑같이 하면 된다는 가르침은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우리가 없는 동안 아내도 잠시 장을 보러 나갔다 왔다고 했다. 우리랑 비슷하게 들어왔다. 집에 오자마자 소윤이와 시윤이 샤워를 시켰다. 식탁에 에그타르트가 보이길래 아내에게 거기도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애들 재우고 아내가 말해주길, 사실은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왔다 가셨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들으면 서운할까 봐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방문 이유도 명확했다.
“서윤이 좀 실컷 보러 오셨대. 서윤이 엄청 귀여워하시더라”
첫째, 둘째 손주 눈치 안 보고 막둥이 좀 실컷 보러 오셨다는 거다. 그걸 알면 서운할까 봐 비밀로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 노릇도 쉬운 게 아니다.
애들 재우고 아내랑 각자 할 일을 하다가 자러 들어가기 직전에, 운동화와 셔츠를 빠느라 애를 썼다. 운동화에 묻은 진흙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는데 시윤이 셔츠에 묻은 게 문제였다. 아내가 열심히 빨았지만 잘 안됐나 보다.
“하아. 여보. 이거 버려야겠다”
“왜? 안 지워져?”
“어. 안 지워질 거 같아. 아, 오늘 그걸 입히는 게 아니었는데”
교회 갈 때 입었던 셔츠를 그대로 입혀서 간 거였다. 아내는 ‘왠지 느낌이 이상해서’ 갈아입히려다가 말았다고 했다. 고가의 셔츠는 아니라 너무너무 아까운 건 아니었지만 나름 시윤이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라 조금 아깝긴 했다. 얼룩 제거 전문가인 아내가 포기할 정도면 정말 가망이 없지 않나 싶다.
아내는 다짐했다.
“이제 축구장 갈 때는 버릴 옷 입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