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03(월)
오전에 연락했을 때만 해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 듯했던 아내가, 오후에 카톡을 보냈을 때는 심상치 않았다. 잘 지내고 있냐는 나의 질문에 우는 이모티콘과 함께 내가 보고 싶다며 답장을 했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대화를 이어갔는데 아내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게 없는 심정이야. 그냥 다 버겁네”
라고 얘기했다. 결코 여유롭지 않은 매일의 삶이 반복되다 보니 자꾸 아이들에게 감정적으로 대하게 되고, 또 그런 스스로를 견디기 어려운 듯했다. 대충 어떤 심정인지는 이해가 가지만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난 당연히 아내의 스스로를 향한 평가를 인정하지 못한다. 잘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렇다고 무조건 그렇지 않다고, 막 칭찬하고 그러는 건 이 상황에서 별로 좋을 게 없다. 나쁠 것도 없지만 딱히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고 생각 한다).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하고, 또 아내에게도 자주 표현하니까. 뭔가 극적인 효과가 떨어진다.
아내의 정신력과 소위 ‘멘탈’이 매우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물론 가능성을 크게 보지는 않지만, ‘우리 아내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아내가 나한테 이만큼 표현했다는 건 이미 그 안에 뭔가 많이 쌓였다는 얘기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지만, 한정적인 범위 안에서라도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오늘은 내가 애들 셋을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퇴근하자마자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아내 혼자 밖으로 나가는 ‘자유’하고는 또 약간 느낌이 다르다. 시간으로 따지면, 아내가 나가는 ‘자유부인’의 방법보다 훨씬 짧다. 대신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일이 된다. 집에 혼자 남는 아내에게도 짧지만 강력한 고요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고. 이게 각자에게 어떻게 좋은지는 나도 모르겠다. 아니, 좋을지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냥 내가 아빠이자 남편으로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나름의 노력이다.
“여보. 애들 준비시켜 놔. 퇴근하면 바로 데리고 나갈게”
“여보는 뭐 슈퍼맨이야?”
“슈퍼맨은 무슨”
아내는 하루 종일 울기만 한 사람처럼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뭔가 퉁퉁 부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내의 얼굴을 보니 애들을 데리고 나가기로 한 게, 참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마의 속도 모르고(알지만 모른 척하나?) 좋아했다. 서윤이까지 데리고 나가는 건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제 사람처럼(?) 세 끼를 챙겨 먹기 때문에 저녁밥을 줘야 했는데, 그걸 건너 뛰고 데리고 나가는 거였다. 과연 서윤이가 언니, 오빠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잘 협조해 줄지 궁금했다.
“아빠. 우리 어디 가는 거에여?”
“그냥 산책하는 거야”
“왜여?”
“그냥. 엄마도 좀 쉬시고. 너희도 바람 좀 쐬고”
“아빠. 놀이터도 가도 돼여?”
“놀이터? 이따 봐서”
소윤이랑 시윤이는 점심을 늦게 먹었다고 했다. 샌드위치와 우유를 하나씩 사서 햄버거 가게로 갔다. 난 햄버거, 소윤이와 시윤이는 샌드위치, 서윤이는 치즈를 먹었다. 서윤이가 얼마나 잘 있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치즈로 준수하게 버텨냈다. 오기 전에 실컷 잤다고 하더니 그래서인지 기분도 좋았다. 엄마가 눈에 보이면 괜히 더 우는데 막상 아예 시야에서 사라지면 오히려 괜찮다. 서윤이는 조금도 울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저녁을 먹고 놀이터에 갔다. 이미 어두워진 뒤라 다른 건 타기가 어려웠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네만 탔다. 유모차에 앉아 있던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그네 타는 걸 보더니 자기도 내려가겠다고 했다. ‘으으’, ‘이이’, ‘앙앙’ 이런 소리만 내지만, 아내와 나는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녀의 몸짓과 표정, 향하는 방향 같은 걸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바닥에 내려줬더니 언니, 오빠의 그네 타는 걸 방해하며 애교를 부렸다. 이쪽 저쪽 걸어 다니며 웃고 안기고 그랬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그네 못 타는 건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고, 막내의 재롱을 보며 귀여워했다. 서윤이는 꽤 한참 동안 걸어 다녔다. 한 20분 정도. 그러더니 지쳤는지 갑자기 내 종아리를 붙잡고 손가락을 빨았다. 잽싸게 안아서 물티슈로 손을 박박 닦아줬다. 다시 유모차에 앉히니 ‘이제 놀 만큼 놀았다’는 듯, 가만히 앉아서 손가락만 빨았다.
아파트 단지를 천천히 한 바퀴 더 돌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시간을 좀 더 주고, 아내에게도 시간을 좀 더 주고. 애 셋을 데리고 밥도 먹고 놀아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힘들기만 하지는 않았다. 나도 나름대로 즐거웠다. 아내는 매일, 혼자 하는 일이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재밌었지?”
“네. 늦게까지 아빠랑 노니까 좋았어여"
“그래. 낮에도 엄마 말 좀 잘 들어. 엄마가 많이 힘드시대”
“아빠아. 우리 돌보시느라아?”
“어. 얼마나 힘드시겠어. 그러니까 시윤이도 엄마가 얘기하면 바로바로 듣고”
재우는 건 다시 아내의 몫이었다. 아내는 ‘힘들지 않았냐’며 걱정했지만, 진짜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좋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늘 얘기하는 것처럼, 이게 과연 (나에게) 바람직한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보. 이제 애들 셋 데리고 나가도 되겠는데? 어차피 서윤이 수유도 안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