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30(금)
아내가 오늘은 파주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이거 뭐 일주일 내내 쉴 틈 없이 움직이는 구만.
출근할 때 아내랑 애들이 함께 갔고 아내에게 운전을 맡기고 난 조수석에 눈을 붙였다. 세상에 이렇게 편한 출근이 있다니.
'맨날 이렇게 출근하면 좋겠다'
는 허무맹랑한 꿈을 꾸며 출근했다.
퇴근할 때는 저번처럼 은혜네 (친구 중 한 명, 도하/서하 엄마) 집으로 갔다. 역시 저번처럼 소윤이, 시온이, 도하는 덩치 좋은 성인 남성의 등장을 반기며 나에게 매달렸다. 새삼 아들 둘의 아빠가 아니라는 것과 애 셋의 아빠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래. 우리 소윤이, 시윤이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 세상에는 나보다 힘들게 애를 키우는 사람이 더 많을 거다'
어제 아내가 장모님과 통화했을 때 장인어른이 소윤이, 시윤이를 매우 보고 싶어 하시니 보고 가는 게 어떠냐고 얘기하셨고 아내는 대답을 유보했다. 마침 금요철야예배도 없어서 아내는 데이트를 제안했다. 아이 둘을 맡겨야 하는 부담스러움 때문인지 뭔가 내키지 않는 기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자고 했다. 기회는 있을 때 덥석 물어야 한다.
은혜네 집에서 나오면서 소윤이와 도하(5살, 은혜 아들)에게 포옹도 시키고 뽀뽀도 시켰는데 도하의 뽀뽀를 받은 소윤이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여주인공이 지을 법한 수줍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입술을 닦지 않았다. 내가 뽀뽀하면 맨날
"아빠. 침은 묻히지 말라고 했잖아"
하면서 팔로 입을 쓱 닦던 녀석이 벌써부터 차별을 두다니.
장인어른은 아직 퇴근 전이었지만 안면 몰수하고 장모님께 소윤이, 시윤이를 맡기고 튀었다.
"여보. 그런데 우리 뭐해?"
"그러게. 뭐 하지?"
"일단 밥 먹자. 배고프다"
"뭐 먹지?"
"그러게. 뭐 먹지?"
"애들이랑 못 가는 곳 가야지"
"당연하지"
지난번에 아이들이랑 갔던 정발산의 [미니 타이]라는 태국 음식점에 가서 똠얌꿍과 팟타이를 시켰다. 메뉴조차도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수 없는 매콤한 걸로.
"여보. 좋다"
"그러게. 음식에만 집중할 수 있네"
밥을 먹고 나서는 마찬가지로 같은 날 갔었던 [네임드 커피]
역시 좋았다. 그야말로 애들이 없어야만 만끽할 수 있는 여유와 커피 향. 아내와 나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완벽한 타인]
시나리오를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참 수작이라고 생각했다. 휴대폰으로 한정지어서 그렇지 휴대폰 이외의 어떤 매개가 있으면 다 비슷하지 않나 싶었다. 오래간만에 실컷 웃으며 재밌게 영화를 보고 나왔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영화 시작 전 전화가 왔었다. 소윤이가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먹였고 와서 자기를 안아달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소윤이가 졸음이 극에 달했구나'
영화 보고 나와서 장인어른이 보낸 카톡에는 우리와 통화를 마친 소윤이도 시윤이도 10분 만에 잠들었다고 했다. 더더욱 마음 편하게 밖에서 시간을 더 보냈다. 1차 식사부터 시작해서 무려 4차까지. 아주 늦게까지 데이트를 즐겼다.
"여보. 지난 주도 데이트고 이번 주도 데이트네"
"아 그러네. 팔자 좋네"
"우리 너무 뻔뻔한가?"
"뻔뻔하긴 하지. 그래도 어쩌겠어. 장인어른이 보고 싶다고 하셨다며. 우리는 모 아니면 도라고 말씀드려. 못 보던가 지겹도록 보던가"
이러다 아내가 금요일에 파주 간다는 소리만 들으면 침을 질질 흘리는 파블로프의 개가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 참, 철야예배는 오늘만 없었던 거지.
철야예배를 그만둔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