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01(토)
지난밤의 심야 데이트는 오늘 아침의 늦잠까지 이어져야 비로소 완전한 결말을 이룰 수 있다. 애들은 일찍부터 거실로 나갔고 난 잠을 늦게까지 잔 건 아닌데 누워서 한참 동안 놀았다.
오늘도 바쁜 하루가 예정되어 있었다. 우선 처갓댁인 파주에서 서울 중곡동까지 가야 했다. 아내의 친한 친구인 해나네 집들이가 있었다. 집들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손님은 없고 우리만 가는 거라 그냥 초대 정도라고 하는 게 맞으려나. 워낙 멀어서 부지런히 집을 나섰다. 10시 30분쯤 나왔는데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아. 10시 10분에 나오는 게 목표였는데"
내가 아내에게
"아. 나 100억 모으는 게 목표였는데"
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비현실적인 문장이었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도착 예상 시간이 해나와 약속했던 시간보다 늦어서 아내가 미리 연락을 했다. 해나는 좋아했다고 한다. 해나 남편은 오전에 약속이 있어서 혼자 준비하고 있다면서. 아내와 나는 해나의 기쁨도 더해줄 겸 더 늦기로 했다.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샀다.
해나네 집은 그야말로 신혼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었다. 우리 신혼 때 어른들이 우리 집에 오면
"이야. 신혼집 분위기 나네"
이런 얘기하곤 했는데, 그땐 정확히 그 '신혼집 분위기' 라는 게 뭘 말하는지 몰랐다. 해나네 집 가보고 나서 알았다. 그냥 그런 게 있다. 말로 콕 집어 설명하기 힘든. 예를 들자면 네스프레소 캡슐 같은 것도 우리는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저 멀리 보관한다면 해나네 집은 거실 벽 한가운데 보관함을 달아서 거기 넣어 놓는다던가.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는 바로 관심을 보이고 퍼즐 맞추듯 가지고 놀았다) 뭐 그런 것들.
흑흑 우린 정말 구혼인가 봐.
시윤이는 가는 길에 잠들어서는 해나네 도착해서도 침대에 누워서도 한참을 자고 일어났다. 잘 잤는지 일어나서는 기분 좋아가지고 잘 놀았다. 소윤이도 해나 남편분이 자기 코드에 맞는지 말도 잘하고 장난도 치면서 기분 좋게 놀았다. 사실 해나 남편분이 애를 너무 잘 보셔서 놀랐다. 이것저것 다양한 흥미를 제공하는 건 물론이고 여유로움과 능숙함이 느껴졌다. 아내와 내가 해나의 남편이 준비된 육아인이라고 판단한 결정적인 순간은 한창 재밌게 가지고 놀던 기린 인형(?)을 소윤이의 손에서 부드럽게 뺏어서 원래 위치로 가져다 놓는 장면이었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단호하지만 차갑지 않게. 육아의 기본이지만 잘 못하는 건데 참 능숙하셨다.
해나네 집들이 이후에는 홈스쿨 부모교육이 있었다. 장소는 연신내의 한 교회. 역시 오래 걸렸다. 덕분에 소윤이는 실로 오랜만에 차에서나마 낮잠을 잤다. 부모교육 후에는 함께 홈스쿨 하는 시안이네와 우리 집에서 잠깐 만나기로 했다. 지난 목요일 밤 오기에 찬 아내의 폭풍 집안일 덕분에 집이 제법 깨끗한 상태긴 했지만 어젯밤에 집에서 자지 않고 처갓댁에서 보냈기 때문에 아내는 정확히 집 상태가 어떤지 불안해했다. 조금이라도 먼저 가서 청소기라도 한 번 돌리고 정리를 하기 위해 먼저 출발했다. 초고속 고밀도 보이는 부분 한정 청소 및 정리를 마친 뒤 시안이네가 도착했다. 그때가 이미 8시가 다 됐으니까 꽤 늦은 시간이었다.
둘째들은 각자 엄마, 아빠에게 매달리고 서로 노는 법을 몰라서 조금 애를 먹었지만 소윤이랑 시안이는 둘이 제법 잘 놀아서 대화에 큰 방해가 되지 않았다. 10시가 넘어서 시안이네가 가고 우리도 후딱 준비를 마치고 자러 들어갔다.
아침부터 장거리 이동이 많이 포함된 꽉 찬 일정 덕분에 피곤했는지 아내가 가장 먼저 잠들었다. 오래간만에 낮잠을 자서 그런지 소윤이가 계속 사부작 거리면서 잠들지 않았다.
"소윤아. 얼른 자"
"네"
다 재우고 나왔더니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다. 노트북을 펴고 소파에 앉긴 앉았는데 나도 계속 졸았다. 동서를 횡단했던 하루가 피곤하긴 했나 보다.
싱크대 앞에 소윤이가 마음으로 낳은 아이(인형) 둘이 속싸개에 쌓여 누워 있었다.
"아빠. 내가 아기들 재웠으니까 얘네 깨우지 마여. 치우지도 말고여"
문득 해나네의 신혼 분위기가 그리워졌다. 난 벌써 손주를 둘이나 둔 할아버지가 됐는데 말이야.
인형이 자꾸 발에 차여서 걸리적 거렸지만 소윤이의 말을 기억하며 그대로 뒀다.
아까 차에서 라디오를 듣는데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내일 비 온다는데여?"
"아 그랬어?"
"네. 내일 비 온대여"
"아 안되는데"
어플로 확인해보니 오후에 비 예보가 있었다.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다음 주는 수요일에도 축구가 없고 주일에는 울산에 가야 해서 이번 주에는 꼭 축구를 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