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5(토)
드디어 주말. 홀로 전투를 치러야 하는 평일을 겨우 버틴 아내의 옆에서 함께 싸우 아니 싸우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아내의 짐을 덜어 줄 수 있는 주말이다. 아쉽게도 비가 많이 왔다.
“아빠아. 왜 주말마다아 비가 계속 오는 거에여어? 자전거 좀 타고 싶은데 계속 못 타여어”
소윤이와 시윤이의 아쉬움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실제로 주말마다 비가 온 건 아니었지만 그렇게 느낄 만큼, 쉬는 날 자주 비가 오긴 했다.
“오늘은 집에서 많이 놀자여. 우노도 많이 하고”
점심때는 손님이 왔다. 포항에 사는 아내의 친구 부부가 집에 놀러 왔다. 아이들이 있으니 최대한 덜 번잡스럽고 간단한 걸 점심으로 골랐다. 피자나 치킨을 먹을까 하다가 떡볶이로 변경했다. 아이들은 주먹밥과 튀김을 줬다.
미친 듯이 정신없지는 않았지만, 한데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먹을 정신은 없었다. 그나마 나랑 아내 친구의 남편은 식탁에 앉아 있었지만, 아내랑 아내 친구는 끊임없이 움직였다. 더군다나 만나는 시간도 무척 짧았다. 그야말로 서로 얼굴 본 데 의미를 두는 만남이었다.
내일 서윤이가 유아세례를 받는데, 오늘 교회에 가서 세례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것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다. 아내 친구네와 우리는 함께 집에서 나왔다. 엄청 피곤했다. 집에만 있었는데 뭐가 그렇게 피곤한지 졸음이 몰려왔다.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많이 안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아내랑 서윤이만 들어가고 나랑 소윤이, 시윤이는 차에서 기다렸다.
너무너무 졸렸다.
“소윤아. 아빠 잠깐만 잘게. 너무 졸려서”
시윤이는 자고 있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눈을 좀 붙이려는데 소윤이가 계속 말을 걸었다.
“아빠. 어디라도 좀 가자여. 어디라도 가고 싶어여”
아빠랑 동생은 자고, 혼자 할 게 없으니 참 심심하겠다는 게 머리로는 이해가 됐는데, 행동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일단 내가 너무 졸렸다. 게다가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렸다.
“소윤아. 어디를 가자는 거야. 지금 밖에 비가 저렇게 오는데. 아빠가 일부러 안 가는 게 아니잖아. 비 오는데 어디 갈 데가 없으니까 그렇지”
소윤이에게 살짝 짜증을 냈고 소윤이는 조용해졌다. 이제 이 정도 일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지만 아마 약간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도 뜬금없이 급발진했다. 그 당시에는 이런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냥 조금이라도 자고 싶었다. 왜 그렇게 피곤했는지 모르겠지만. 잠과 깸 사이의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 때,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다들 아빠가 오셨네. 우리도 다 같이 올 걸 그랬나 봐”
결국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아내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교육이 엄청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지만, 그래도 답답한 차보다는 훨씬 나았을 거다.
세례 교육을 마친 뒤에는 수리를 맡긴 차를 찾으러 갔다. 맡긴 차를 찾으면서 타고 간 차도 수리를 맡겼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데 카시트 옮기고 애들 태우고 하는 게 은근히 애를 써야 하는 일이었다. 이런 잔잔한 일들이 쌓여 묵직한 피로가 되어 돌아오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샀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이제 우노 하자. 가지고 와”
소윤이가 오래전부터 벼르고 벼른 우노를 드디어 시작했다. 지난 주말에 한 번도 못했다는 사실에 소윤이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평일에도 저녁 먹기 전에 한두 판 하기도 했지만 그걸로는 성이 안 찼나 보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니까, 오히려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낸 거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한 우노는 야간 행군처럼 끝을 모르고 계속됐다. 서윤이의 방해가 가장 큰 변수였다. 서윤이를 위해 버린(?) 카드 몇 장을 내어 주고, 우리의 게임을 훼방 놓으려고 할 때마다 잘 어르고 달랬다. 서윤이는 자기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카드를 내놓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자기도 함께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머무니까 괜찮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서윤이도 깨닫는다.
‘아, 내가 지금 깍두기구나. 은근히 배척 당하고 있구나’
그럼 쥐고 있던 카드를 내팽개치고 엄마를 찾으며 운다. 서윤이가 울어서라기보다 같이 놀고 싶어 하는 동생을 계속 따돌리는 건 지양하고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일단 게임을 중단한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욕구를 채워주는 게 더 급하다고 판단되면 동생 배척을 감수하기도 하지만.
아, 서윤이는 확실히 좋아졌다. 엄지손가락을 다시 찾고 나서는 극한의 울음이 없어졌다. 물론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고, 서윤이 나름대로 극한의 상황이 벌어지면 언제나 천둥번개는 치겠지만 일단 달라졌다.
“여보. 서윤이 좀 다른 거 같지?”
“어, 완전. 일단 기분이 안 좋거나 이러면 손을 빨면서 진정이 되네”
서윤이는 몇 살 때까지 손을 빨지 모르겠지만, 이제 끝났다. 서윤이도 우리(아내와 나)도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이제 엄두도 안 난다. 우레와 같은 울음을 마주할 자신감이 닥터썸과 함께 날아갔다.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도 있었다. 애들은 그전에 재웠다. 꽤 이른 시간이었지만 집에 일찍 들어왔기 때문에 제법 여유가 있었다.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고, 난 거실에서 온라인 모임을 시작했다. 한 10분쯤 지났을 때 아내가 나왔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장난을 쳐서 나왔다고 했다. 그 덕에 서윤이만 피해를 봤다. 갑자기 엄마를 잃은 서윤이는 방문까지 와서 통곡하며 문을 벅벅 긁었다. 아내는 다시 들어갔고 금방 다시 나왔다.
온라인 모임까지 마치고 나니 드디어 하루를 끝낸 느낌이었다. 피로가 풀리는 건지 이제야 몰려서 느껴지는 건지 애매한 나른함과 함께, 출출함이 찾아왔다. 고민이 길지 않았다.
“여보. 파전 먹을까?”
“그럴까?”
난 나가서 파전을 사 왔고, 그동안 아내는 두부 김치를 만들었다. 애들이랑 같이 보내는 시간도 참 즐겁고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다 재우고 아내랑 둘이 복작대는 이 시간이 진짜 알짜배기다. 이걸로 주말 육아의 피로를 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