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14(금)
서윤이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울었다. 물론 천둥번개처럼 크고 우렁차게. 알람 대신 나를 깨워줬을 때는 효녀였는데, 알람 울리기 30분 전쯤 울 때는 불효녀다. 그러고 나서도 내가 회사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할 때까지도 아기띠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시윤이가 일어나서 나오니까 그제서야 내려갔다고 했다. 오빠랑 노는 게 재밌긴 재밌나 보다.
그렇다고 계속 기분이 좋은 건 아니었나 보다.
“왜 이렇게 우는지. 정말 내가 울고 싶다”
이게 고작 9시도 되기 전에, 아내가 보낸 카톡이었다. 소윤이, 시윤이 때는 워낙 수월하게 지나가서 서윤이도 그러겠거니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 후로는 점심 먹고 나서 연락을 했다.
“여보? 잘 지내고 있어?”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습니당ㅋㅋ”
아내가 붙인 ‘ㅋㅋ’가 괜히 더 짠하게 느껴졌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말이 딱 이 순간을 위한 표현이 아닐까. 아내는 잘 지내는지, 애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하루 종일 걱정 속에 보냈다.
퇴근하려고 자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아내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오늘 같은 날은 진짜 특근 수당이라도 있어야 되는데”
그러고 연달아 카톡이 왔다.
“아침 점심 저녁(예정) 먹이고 치우고 간식도 두 번 주고 소윤 시윤 오전에 공부시키고 중간에 서윤이 낮잠 재우고 오후에 수박 사러 외출도 하고 돌아와서 셋 목욕 시키고 중간중간 집 치우고 빨래하고 목욕 시키면서 화장실 청소 간단히 하고”
그러고 밖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욕조에 들어가 목욕하는 사진 한 장 이렇게 사진도 보냈다.
“여보, 참고로 여보한테 하소연하는 느낌은 전혀 아니에요. 그냥 스스로 오늘은 극한직업 같아서”
극한직업 맞지. 세상에 이런 극한직업이 또 어딨나. 새로 산 이모티콘으로 아내의 카톡에 동조하는 답장을 보냈다. 더 말을 붙이고 말고 할 것도 없었고.
아내는 그 와중에 저녁으로 콩국수를 준비했다. 한살림 콩국물이 다시 나온 기념으로. 나도 잘 먹고, 아내도 잘 먹고, 소윤이도 엄청 잘 먹고, 시윤이도 엄청 잘 먹었다. 서윤이도 오늘은 중간에 갑자기 변하지 않고, 끝까지 잘 먹었다. 콩국수 면도 입에 맞는지 주는 족족 잘 받아먹었다. 꽤 평화로운 저녁 식사였다. 극한직업을 체험한 아내의 하루가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교회에 다녀왔는데 아내가 어두컴컴하게 불을 켜고 거실에 나와 있었다. 아기띠로 서윤이를 안고. 서윤이는 엄마 품에 안겼는데도 거세게 울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소리를 내기 위해 악을 쓰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몸까지 있는 대로 뒤로 젖히면서.
“여보. 이러다 얘 빠지겠다”
“그러니까. 잘 잡아야겠다”
아내가 안고 있는데도 나아지지를 않았다. 방에 데리고 들어가기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손을 빨지 못하는 게 서윤이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 같았다. 아내는 아내 대로 힘들어서 어쩌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답도 없고 체력도 없고 정신력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와 서윤이를 보며 고민하다가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그냥 닥터썸 빼자”
“지금? 갑자기?”
“어. 여보도 너무 힘들잖아. 손가락도 손가락이지만 여보가 먼저 쓰러지겠어. 그냥 빼”
아내는 엄청 내키지 않는 듯했지만 내 말대로 했다. 사실 내가 엄청 다정하게 제안한 건 아니었다. 뭐랄까, 이때처럼 아내의 정신력이 고갈된 상황에서는 종종 일방적으로 결정하듯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일 때도 있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입장이다. 아내는 전혀 다르게 느낄지도 모른다. 결국 서윤이는 5일 만에 다시 엄지손가락을 찾았다. 자기 엄지손가락이 자유를 얻은 걸 깨닫지 못한 건지, 서윤이는 계속 울었다.
아내가 서서 안아줬는데도 울면,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 달리 말하면, 어차피 아내가 안아줘도 울 거면 그냥 내가 안아주는 게 낫다. 이래도 울고 저래도 우니까. 아내에게서 서윤이를 받아서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누가 들으면 아동학대라도 벌어지는 줄 알 만큼 크고 까랑까랑하게 울었다. 아내에게 안겨 있을 때 그렇게 울었는데, 아직 그건 자기 최대치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듯 더 크게 울었다. 그대로 바닥에 눕혔다. 더더 크게 울며 일어났다. 다시 안아서 또 바닥에 눕혔고, 더더더 크게 울며 일어났다. 다시 안아서 또 바닥에 눕혔고, 더더더더 크게 울며 일어났고. 이걸 수차례 반복했다.
“서윤아. 많이 속상해? 졸리지? 누워서 자면 돼. 아빠가 토닥토닥 해 줄게”
어느 순간 서윤이가 일어나는 걸 포기하고 누운 채로 손가락을 쪽쪽 빨기 시작했다. 그 뒤로 한 번 정도 갑자기 벌떡 일어나긴 했지만 완전히 달라졌다. 누그러졌다. 뭐가 누그러진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뭔가 누그러졌다. 서윤이는 내 얼굴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누워서 손가락을 빨며 잠을 청하는 느낌이었다. 완전히 재웠다는 느낌은 아니었고 ‘곧 잘 거 같다’의 느낌일 때 방에서 나왔는데 잠시 후 서윤이가 깨서 울며, 문쪽으로 걸어왔다. 소리만 들어도 서윤이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서윤이를 눕혔다. 이번에는 바로 손가락을 빨며 눈을 감았다. 이건 서윤이 나름의 신호였다.
‘나를 재우고 있는 사람이 아빠여도 상관없으니 내가 완전히 잠들기 전에는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번에는 서윤이가 완전히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나갔다. 그랬더니 이미 자정을 넘겨 다음 날.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아내와 나는 둘 다 다소 타격을 입었다. 그냥 자꾸 눈에 초점이 없어지고 대상 없는 어딘가를 응시했다. 아내는 집안일을 했고, 난 일기를 썼다.
서윤아, 손가락 마음껏 빨아라. 뭐 어떻게 되겠니. 니 손가락 지키려다가 엄마 잃겠다. 마음껏 빨아. 대신 엄마한테 좀 살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