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따로 데이트

21.05.22(토)

by 어깨아빠

오늘은 소윤이가 그 어느 날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요일이다. 엄마랑 데이트를 하기로 한 토요일. 아침부터 설레는 소윤이와 다르게 시윤이는 아쉬워했다. ‘나중에=머지않은 미래에’ 자기도 엄마랑 데이트를 할 거라는 걸 알지만, 당장 오늘 못하니까 내심 아쉬워했다.


“시윤아. 우리는 오늘 뭐 할까?”

“엄마랑 누나 쫓아다닐까아?”


익살스럽게 장난치며 말했지만 진심이 많이 섞여 있었다. 사실 시윤이는 뭐 문제가 아니었다. 시윤이도 이제 컸다고 엄마랑 떨어지는 건 아쉬울 뿐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일이다. 서윤이가 문제였다. 과연 엄마 없는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지. 서윤이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아내도 모르고.


아내랑 소윤이는 아침 먹자마자 준비해서 일찌감치 나가기로 했다. 나가서 점심도 먹고 저녁도 먹고 온다고 했다. 원래는 동네 근처에서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그러려고 했는데 계획을 변경했다. 소윤이가 조금 멀리 가고 싶어 했다. 어제 아내와 의견을 나눈 끝에 경의선 숲길에 가는 것으로 정했다. 산책도 하고 밥도 먹고 카페도 가고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소윤이 성향에 딱 맞는 데이트라고 생각했다. 데이트의 또 다른 당사자인 아내도 약간의 설렘과 기대가 생긴다고 했다. 둘이 나가서 데이트를 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이라는 꾸밈으로는 모자랄 만큼 오랜만이었다.


우리(나, 시윤, 서윤)도 아내랑 소윤이가 나갈 때 함께 나갔다. 서윤이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지만 혹시라도 이별의 슬픔을 크게 느끼지 않도록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렇다고 안 볼 때 몰래 가고 그러지는 않는다.


“서윤아. 엄마 갈게”

“서윤아. 언니도 갈게”


인사는 하되 이별의 순간에 몰입되지 않도록, 야외(주차장)에서 유모차에 앉힌 채로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아내와 소윤이는 떠났다.


우리도 일단 점심을 먹어야 했다. 서윤이 밥만 집에서 싸 왔고 시윤이랑 나는 사 먹어야 했다. 번잡스럽지 않고 간편하면서 나는 최대한 빨리 먹을 수 있는 것. 그러면서도 서윤이, 시윤이랑 함께 앉아서 먹기에 불편하지 않은 곳. 햄버거였다. 시윤이는 햄버거를 먹지 못하니 김밥을 샀다. 햄버거 가게에 앉아 3인 3색의 점심 식사를 시작했다.


서윤이는 아내가 만들어 놓은 토마토 달걀 볶음과 쌀밥이었다. 그나마 요즘 서윤이가 밥을 너무 잘 먹어서 다행이었다. 햄버거를 베어 먹을 틈도 주지 않고 빨리빨리 달라고 재촉하는 건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앉아서 먹어 주기만 한다면. 시윤이 김밥도 혼자 먹기에는 너무 커서 내가 잡고 입에 넣어줘야 했다. 시윤이 김밥 한 입, 서윤이 밥 한 입, 내 햄버거 세 입 같은 한 입. 그렇게 먹어야 아이들의 속도를 맞추는 게 가능했다. 원래도 천천히 먹지는 않지만.


식사 시간은 긴장(약간의 긴장이 됐다. 지휘관 없이 홀로 전투에 나선 병사의 심정이었달까)이 무색하게 무사히 끝났다. 혹시 몰라서 총알(치즈, 과일 등)을 많이 준비했는데 밥으로도 충분했다. 총알을 아낄 수 있어서 든든했다. 지금 먹은 치즈 한 장이, 언젠가는 감당하지 못할 울음을 초래할지도 모르니까.


“시윤아. 뭐 할까?”

“아빠. 놀이터 가고 싶어여”

“그럴까? 놀이터 가자”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 서윤이가 낮잠을 안 자고 나왔기 때문에 밥 먹이고 유모차 좀 태우면 잘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 놀이터에서 시윤이랑 재밌게 놀아주고. 아내와 소윤이를 보내면서 다짐한 게 있었다.


‘아빠랑 남아 있는 것도 데이트만큼이나 즐겁게 만들어 줘야지’


그걸 실천하려면 일단 서윤이의 손아귀에서 어느 정도 빠져나와야 했다. 유모차에 태우면 바로 잠들 줄 알았다. 예상과는 다르게 서윤이가 쌩쌩했다. 놀이터에 가기 전에 유모차를 좀 더 돌았으면 잠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놀이터에 바로 가버렸다. 긴장해서 판단력이 흐려졌었나 보다.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서윤이가 자기도 내려 달라며 몸을 벌떡벌떡 일으켰다. 가장 피해야 하는 상황은 서윤이의 울음이 터지는 거다. 그것보다 좋지 않은 상황은 없다. 얼른 서윤이를 내려줬다. 대략 어떤 일이 펼쳐질지 예상을 하면서도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윤이는 기분이 좋았다. 생글생글 웃으며 놀이터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냥 평지만 돌아다니면 좀 나았을 텐데 자꾸 계단을 오르고 높은 곳에 올라갔다. 오르내리는 맛을 알아버렸다. 계속 서윤이를 쫓아다녔다. 우사인 볼트처럼 시윤이에게 뛰어가서 시윤이에게도 의지적으로 신경을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시윤이는 누가 봐도 재미가 없어 보였다.


“시윤아. 재미없어?”

“네. 누나가 없으니까 심심해여”

“그치?”


내가 못 놀아주는 것도 있었지만 누나가 없는 것도 꽤 큰 영향을 미쳤다. 시윤이는 누나에게 많이 의지하는 것 같다. 주변 얘기를 들어보면 동생이라고 다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시윤이는 의사 표현을 할 때도 누나 영향을 많이 받고 놀 때도 누나가 있을 때랑 없을 때랑 차이가 많이 난다. 오늘도 전혀 흥이 나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윤이는 조금도 졸리지 않은 듯, 오빠의 마음도 몰라주고 여전히 활발했다.


“아빠. 자전거 타고 싶어여”

“자전거? 그래. 알았어. 아빠가 고민 좀 해 볼게”

“뭘여?”

“아, 서윤이가 좀 자야 아빠가 시윤이랑 같이 놀지”


서윤이는 시윤이가 오줌 마렵다고 해서 잠깐 화장실 가려고 안았더니, 자기는 놀이터에서 놀 거라며 발버둥을 치며 저항할 정도로 흥이 오른 상태였다.


“서윤아. 더 놀 거야. 잠깐 화장실 가는 거야. 오빠가 쉬 마렵대”


신기하게도 요즘은 서윤이가 말귀를 알아먹는 느낌이다.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알아듣고 차분해지는 걸 여러 번 봤다. 오늘도 그랬고.


놀이터에서 조금 더 놀다가 결단을 내렸다. 가끔 가는 작은 공원에 가기로 했다. 그때가 이미 오후 2시 정도였다. 차에 태우면 안 잘 리가 없었다. 집에 올라가서 유모차를 갖다 놓고(차에 휴대용 유모차가 있으니)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이는 카시트에 앉히자마자 잠들었다.


“시윤아. 서윤이 잔다”


커피를 한 잔 사서 공원으로 갔다. 올해 들어 가장 조심스럽게 서윤이를 유모차로 옮겼다. 다행히 서윤이는 깊이 잠들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시윤아. 자전거 타자”


날이 무척 뜨거웠다. 시윤이는 두어 바퀴 돌더니 자전거에서 내렸다. 시윤이의 얼굴에 여전히


‘하나도 재미가 없다’


라고 쓰여있었다. 아빠하고 있는 것도 엄마와의 데이트만큼 재미있다고 느끼게 해주겠다는 나의 당찬 포부에 조금씩 금이 갔다.


“시윤아. 자전거 왜 안 타”

“아빠. 누나가 없으니까 혼자 타서 재미가 없어여”

“그래?”

“아빠. 누나한테 전화해 보자여”

“그럴까?”


시윤이는 엄마가 아니라 ‘누나’에게 전화를 하자고 했다. 아내와 소윤이는 즐거워 보였다. 오붓해 보였다. 시윤이는 누나와 엄마가 지금 어디인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아내와 소윤이는 야외라 길게 통화를 하기 어려웠다. 아쉽지만 짧게 통화를 마쳤다. 난 계속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해야 시윤이가 좀 재밌어하고 즐거워할까’


뾰족한 수를 떠올리지 못했다.


“아빠. 우리 무궁화 꽃이 할까여?”

“그럴까? 그래. 하자”


조금의 지체함도 없이 바로 시윤이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뛰는 것도 정말 열심히 뛰었다. 시윤이는 두 판 만에 흥미를 잃었다.


“시윤아. 그럼 우리 산책이나 할까?”

“산책이여? 어디여?”

“그냥 여기 주변. 시윤이는 자전거 타고 가고 아빠는 유모차 끌고 걷고”

“좋아여”


말 그대로 공원 주변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조금’ 걷는 정도였다. 의외로 여기서 시윤이의 표정과 말투, 행동에 즐거움이 깃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내 속도에 맞춰서 내 옆에서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보이는 꽃 얘기, 건물 얘기, 사람 얘기를 하면서 앞으로 나갔다.


“시윤아. 아빠는 시윤이랑 이렇게 걸으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 재밌고 좋은데”

“아빠. 저도 좋아여”

“누나랑 엄마 없어서 심심하지 않아?”

“아까는 그랬는데 지금은 괜찮아여”

“시윤이도 아빠랑 얘기하는 거 재밌어?”

“네”


서윤이는 늦은 낮잠인 만큼 엄청 오래 잤다. 시윤이랑 30분 넘게 걸었다. 날이 더워서 제법 힘들었지만 기분은 아주 좋았다. 걷고 와서 잠깐 앉아서 쉬다가, 시윤이는 땅따먹기를 했다. 그건 또 혼자여도 재밌게 했다.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갈 때마다 열화와 같은 박수와 호응을 보냈다. 어설프게 뛰고 비틀대는 시윤이의 모습에 진짜 웃음이 나기도 했고.


서윤이는 이때쯤 깼다. 거의 2시간을 잤다.


서윤이가 깨고 나서 조금 더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라도 돌아오는 길에 시윤이가 잠들까 봐 카시트를 조수석으로 옮겨서 옆에 앉히고, 이온 음료도 하나 사 줬다. 서윤이는 엄마의 부재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내내 기분이 좋았다. 엄마를 찾기는커녕 칭얼대는 일도 없었다.


“시윤아.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밥 말고 간식 중에”

“음, 아이스크림?”

“오. 아빠도 아이스크림 얘기하려고 했는데”

“그래여?”

“어. 그럼 우리 아이스크림 사러 가자. 시윤아 그러면 집에 들어가는 길에 사서 갈까 아니면 집에다 차 대놓고 다시 걸어서 마트에 가서 살까?”

“음. 집에다 차 대놓고”

“그래? 괜찮겠어? 시윤이 졸려 보이는데 안 힘들겠어?”

“안 졸린데여?”


시윤이의 말대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시 마트로 갔다. 이때쯤부터 아내의 일상을 향한 경외심이 새삼 배가되었다. 뭐 큰 것 때문이 아니었다. 막과 막을 전환할 때 필요한 사소한 움직임들, 예를 들면 유모차를 갖다 놓으러 한 번 올라온다던가 어딘가에 도착해서 카시트에서 내리고 유모차에 태운다던가 자전거를 꺼낸다던가 다시 출발하기 위해 유모차에서 내리고 카시트에 태운다던가 다시 자전거를 싣는다던가 차를 대고 마트에 가기 위해 또 유모차를 꺼내 태우고 다시 접고. 이런 일련의 소소한 일, 소소하지만 꼭 해야만 하는 일이 나의 체력 소모의 촉매제라는 걸 깨달았다. 더군다나 혼자서 하려니 말도 아니었다.


그간 아내의 고단한 하루를 매우 피상적으로, 표면적으로, 지식적으로만 이해하고 공감한 걸 반성했다. 모르지 않았고 언제나 진심 어린 공감이었지만, 현실은 그것보다 훨씬 거칠었다.


집에 오니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고민하지도 않았다. 계란밥.


아내가 삶아 놓은 감자가 있길래 그것도 함께 넣고 으깨서 비벼줬다. 시윤이도 서윤이도 모두 잘 먹었다. 서윤이가 어느 정도 일반식 섭취가 가능해서 천만다행이었다. 설령 서윤이가 일반식을 먹고 있지 않았더라도 오늘이 아마 그 첫날이 되었을 거다. 밥을 먹고 나서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자기 것은 어딨냐며 달려들 게 뻔한 서윤이를 대비해 치즈를 꺼냈다. 다행히 서윤이는 치즈에 만족했다.


아내와 소윤이는 경의선 숲길에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서 고생했다고 했다. 점심은 잘 먹었고 소품 가게에 가서 구경도 잘 했다. 그러고 나서 카페를 가려고 근처에 있는 카페를 네 곳이나 찾았지만 모두 사람이 꽉 차서 가지 못했다고 했다. 거기서 카페에 가는 건 포기하고 동네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래도 동네에 와서는 다시 평안을 찾았다고 했다. 카페에 앉아서 서로에게 편지도 써 주고, 소윤이는 온전한 자기 몫의 음료도 주문해서 마셔 보고. 저녁까지 오붓하게 잘 먹었다고 했다.


소윤이와 아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우리는 방에서 놀고 있었다.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자 서윤이는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미어캣처럼 벌떡 일어나서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러더니 빠르게 현관문으로 향했다. 아내를 보면 갑자기 울면서 안아달라고 하거나 반대로 엄청 웃으면서 반기거나 그럴 줄 알았는데 둘 다 아니었다. 의외로 잠깐 마트에 다녀온 엄마를 만난 것처럼 덤덤했다. 오히려 시윤이가 더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소윤아. 오늘 좋았어?”

“네. 너무 좋았어여”

“그래?”

“네. 올해 들어서 가장 좋은 날이었어여”

“우와 진짜? 그 정도였어?”

“네. 너무너무 좋았어여”


아내도 너무 좋았다고 했다.


소윤이가 아내에게 써 준 편지에도 소윤이의 진한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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