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3(주일)
예배는 잘 드렸다. 서윤이는 굉장히 조금 자고 깼다. 기분이 안 좋아서 막 울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이것저것 만지고 싶어 하고 돌아다니고 싶어 하고 소리 내고 싶어 해서(뭐 대부분 실행으로 옮겼다) 그걸 적당히 받아 주며 막느라 신경이 많이 쓰이고 애를 먹기는 했다.
소윤이가 어제부터 토스트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집에 식빵이 없어서 만들어 주지는 못하고 대신 예배 끝나면 점심으로 먹자고 했다. 예배를 잘 드리고 토스트와 커피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토스트를 다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아내만 앉아서 토스트를 먹었다. 난 서윤이 밥을 먹였다. 잠을 덜 자고 깨서 그런지 평소에 비해 짜증이 많았다. 그래도 가랑비 같은 수준이었다. 오래 맞으면 젖기야 하겠지만, 순식간에 젖을 만큼은 아니었다.
아, 서윤이에게 아니 아내와 나에게, 아니 우리 가족 모두에게 놀라운 변화가 생기고 있다. 서윤이가 안 깨고 자는 날이 많아졌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뭐지. 한 번도 안 깬 게 맞나. 꿈인가’
하는 생각이 진짜로 든다. 400여 일의 긴 행군이 드디어 끝을 보는 느낌이다. 사실 안 깨고 쭉 자면 엄청 개운할 거 같았는데, 생각만큼 극적이지는 않았다. 피곤한 건 깨나 안 깨나 비슷했다. 그래도 그건 내 느낌이고, 실제로는 훨씬 피로가 덜 쌓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믿기지 않는 나날을 선물받았다. 서윤이에게. 지난 400여 일도 믿기지 않는 날이긴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평소보다 일찍 집에서 나왔다. 운동장에 가기 전에 세차를 하러 갔다. 고압 호스로 물 뿌리는 거 보고 싶다고 해서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차에 맞고 부서지는 물결을 맞으며 깔깔거렸다. 참 별것 아닌 일에도 즐거워하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니 뭔가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요즘은 자꾸 ‘쟤네가 저러는 것도 얼마 안 남았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아직 한참 남았을지도 모르는데 애들이 훌쩍 큰 게 수시로 느껴져서 그런가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걸레를 하나씩 주고 여기저기를 닦으라고 했다. 교육의 차원은 전혀 아니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좋아한다. 재밌어하고 뿌듯해한다. 원래 더 꼼꼼하게 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다 돼서 다소 찝찝하게 마무리를 하고 운동장으로 출발했다.
나도 잘 놀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잘 놀았다. 야외에서 뛰놀고 싶은 욕구를 해갈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늘 아내에게 미안하지만, 서윤이도 데리고 나갈 수 있는 그날을 꿈꾸고 있다(문장 호응이 이상하군. 아내에게 미안한 거랑 내가 꿈꾸는 거랑 무슨 상관이람).
“여보. 어디야?”
“집이지. 지금 끝났어?”
“어. 이제 가려고”
“알았어”
“저녁은 뭐야?”
“보쌈이지”
원래 어제 먹으려고 아내가 주중에 사 놨는데 갑자기 데이트를 하는 바람에 못 먹은 보쌈을, 오늘 준비한다고 했었다. 힘들면 무리하지 말고 나중에 먹자고 얘기했다. 사실 다소 무책임한 말이었다. 고기를 얼려 놓은 게 아니라서 얼른 먹지 않으면 상할지도 모른다. 그전에 소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고기 먹어야지. 상하면 어떡해”
라고 얘기하는 아내에게 별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곱씹어 보면 이런 게 적지 않다. ’괜찮아 나중에 해’, ‘괜찮아 다음에 해’, ‘괜찮아 무리하지 마’, ‘괜찮아 무리하지 마’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내가 대신하는 건 아니고.
“설거지 나중에 해. 일단 좀 쉬어”
라고 얘기하지만, 내일이 되면 아내가 해야 할 설거지는 어제의 몫까지 쌓여 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무튼 아내는 부지런히 보쌈을 준비했다. 엄청 이른 시간부터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고 했다. 씻고 바로 식탁에 앉았다. 별다른 양념이 들어가지 않았으니 서윤이도 먹기에 좋았다. 소윤이와 시윤이야 늘 잘 먹지만, 서윤이도 정말 잘 먹었다. 고기의 양이 꽤 많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자기 몫을 싹싹 비웠다. 서윤이도 육식파인가.
밤에 깨지 않고 자기 시작한 기특한 서윤이는, 자기 전 수유(하루의 유일한 수유)도 안 하고 자기도 한다. 오늘도 그랬다. 심지어 큰 저항이나 슬픔의 분출 없이, 기분 좋게 손가락 빨며 뒤척이다가.
언젠가는 끝이 난다. 아무리 길고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은 시간도 결국에는 끝을 보게 된다. 육아의 진리랄까. 서윤아, 나중에 너도 일기 꼭 봐. 엄마와 아빠가 400일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