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4(월)
아내는 오늘 큰일을 치렀다. 건조기를 수리(고장은 나지 않았지만 더 나은 성능을 위한 정비랄까)를 예약했고, 기사님이 오늘 가지러 온다고 하셨다. 건조기가 빠지려면 베란다를 정리해야 했다. 건조기가 없는 동안 베란다에 빨래를 널어야 하려면 또 깨끗이 치워야 하고. 이게 그냥 자기 위치 찾아주는 정리의 수준이 아니라 입주 청소 수준의 환골탈태였다. 아내가 보내 준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무 깨끗해져서. 점심시간을 넘겨서까지 베란다 청소에 전념했다고 했다.
점심에 추어탕을 먹었는데 아내랑 애들 생각이 많이 났다. 아내가 대부분의 국밥류는 안 좋아하는데 그나마 잘 먹는 게 추어탕이다. 보양식이라고 생각하고 먹기도 하고, 그나마 입에 맞는 것 같다. 아내랑 와서 먹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 근처에 있는 식당이고, 가끔 아내와 아이들이 사무실 근처에 온다고 해도 그런 걸(?)로 식사를 때우지는 않겠지만.
퇴근해서 직접 본 베란다는 더욱 놀라웠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불 깔고 자도 될 정도였다. 베란다의 청결도와 아내의 피로도는 정비례 관계였다. 아내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아니, 지쳐 보였다. 사실 베란다 정리도 정리지만 항상 반복되는 작고 사소한 일의 누적도 무시 못한다. 티끌 모아 태산이 아니라 티끌 모아 초특급 피로다.
저녁은 청국장과 병어구이였다. 지난 주말 시윤이와 서윤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새삼 느꼈다. 아내가 매일 이렇게 정성스럽게, 꼭 뭔가 하나씩 만들어서 저녁을 준비한다는 게 얼마나 몸과 마음을 써야 하는 일인지. 아마 나였으면 이랬을 거다.
“아우 오늘 저녁은 계란밥 먹자”
“아빠. 계란밥 아침에도 먹었잖아여”
“아, 그런가? 그래. 그럼 참치도 넣자. 참치 계란밥이야. 맛있겠지?”
“계란밥 지겨운데”
“뭐든지 감사함으로 먹으세요”
왼손에는 비닐장갑을 끼고 오른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큰 수술을 하는 의사처럼 신중하게 병어의 가시를 발랐다. 서윤이에게 줄 생선살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발라줄 때도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둘은 이제 어느 정도 가시를 걸러낸다. 서윤이는 아직 그럴 능력이 없고, 혹시라도 가시가 걸리면 큰일이 나니까 아주 조심스럽게 보고 또 봤다. 누누이 말하지만 난 원래 이런 일과 맞지 않는 사람이다. 원래대로면 대충 입에 털어 넣고 씹다가 오물오물 가시를 발라내거나, 발라지지 않으면 그냥 뭉텅이로 뱉는 사람이다. 부모는 자녀를 기르고 자녀는 부모를 바꾼다. 아이 셋을 기르며 그전에 없던 자아를 많이 발견한다.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 서윤이는 아주 잘 먹었다. 서윤이도 밥 자체를 싫어하거나 먹는 데 흥미가 없는 아이는 아닌 것 같다. 가끔 먹다 말고 짜증을 내기는 하지만 그건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고, 그런 게 아니면 먹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다행이다. 보고 있으면 속이 다 시원하다. 이도 없이 잇몸으로 얼마나 열심히 씹는지.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는 애들을 재우기 전보다 더 지쳐 보였다. 함께 어둠 속에 있다가 살짝 수면의 세계에 다녀와서 그랬을 거다. 거실에 나와서도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아내의 임신 초기에 잠깐 제 역할을 하다가 방치되다가 베란다 대청소 때 또 갈 곳을 잃고 거실로 들어선 바디필로우를 베고 누웠다.
“아, 왜 이렇게 졸리지”
“왜 졸리긴. 한 게 많으니까 그렇지”
“아, 너무 졸리다”
“그럼 그냥 거기서 눈 좀 붙여”
“아, 그래도 자기는 싫은데”
“왜. 좋지. 얼마나 달콤한데”
아내는 금방 잠들었다. 환한 곳에서 잠깐 눈 붙이듯 자는 잠의 매력이 또 있다. 아내는 그렇게 1시간 넘게 잤다. 진짜로(?) 자러 들어가기 위해서 아내를 깨웠다.
“아, 너무 잘 잤다”
“좋지?”
“어. 엄청 잘 잤어”
잠깐 양치만 하고 곧장 방에 들어갔는데, 아내는 또 곧바로 잠들었다. 나보다 더 빨리. 아직 월요일인 게 가슴이 좀 아프지만, 부디 아내의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덜 피곤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