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5.25(화)
아내가 아침부터 고단함을 토로했다. 뭐 어떤 뚜렷한 계기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었다. 어제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을 육아의 일상이 그냥 좀 질리는 날이 있다. 마음이 조금 넉넉한 날에는 그냥 넘어가기도 하고 좀 넉넉하지 못할 때는 마른 가을 낙엽 위에 떨어지는 담뱃불처럼 번지기도 하고. 받아주지 못하면 대체로 받아치게 된다. 문제는 그 뒷맛이 너무너무 텁텁하고 개운하지 못하다는 거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잘못이었는지와는 상관없다. 쏟아낸 감정이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마음을 꽉 붙잡는 느낌이다.
아내가 오늘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상쾌한 느낌은 아니었다. 오전까지 우중충하게 비가 내리더니 점심시간쯤부터 구름이 싹 걷히고 파라 하늘이 드러났다. 하늘이 드러나기 전의 날씨와 아내의 마음이 비슷하지 않았을까. 아내는 스스로 ‘저기압’, ‘냉전중’이라는 표현을 쓰며 현재 상태를 알렸다.
“휴. 그러게. 또 점심시간이네”
점심시간 직전, 아내의 상황이 고스란히 반영된 한 문장이었다. 아내에게 샌드위치 세 개와 라떼 한 잔을 기프티콘으로 보냈다.
“오늘 오후에는 날씨가 좀 쌀쌀하긴 해도 맑대. 애들이랑 나가는 게 더 일이 될지도 모르지만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시의적절한 기프티콘 한 방으로 ‘스윗’의 칭호를 얻었다.
“스윗하네 우리 남편”
두 가지 정도의 장애물(?)이 있었다. 오후에 기도 모임(온라인)이 있어서 시간이 좀 촉박하다는 것과 점심으로 먹일 서윤이 밥이 없다는 것. 서윤이 밥은 한살림 햇반과 김, 계란으로 해결하는 게 어떠냐는 나의 제안에, 아내는 얼마 전에 서윤이 똥에서 현미 껍질이 많이 발견됐다고 했다. 현미 껍질이고 뭐고 그걸(똥) 그렇게 유심히 봤다는 게 놀라웠다. 난 그런 거 없다. 변기통에 떨구고 뒤처리하는 것만 해도 고역이다. 막내딸이 아무리 예뻐도 똥까지 예쁘지는 않다. 아내도 예뻐서 보는 건 아니고 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숨을 꾹 참고 본다지만, 그것도 대단하다.
서윤이 밥을 어찌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아내는 나가서 점심을 먹었고 나간 김에 근처에 사는 지인의 집에도 갔다고 했다. 저녁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집에 오느라 오후의 행복했던 외출(실제로는 행복했는지 고단했는지 물어보지 못했지만)의 기쁨이 희미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외출했다 돌아올 때 상황이 안 좋아지는 흐름은 항상 비슷하다. 아내가 들어가자고 하면 ‘못 놀았다’, ‘아쉽다’ 이러면서 울며 징징거리기 시작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보기가 힘들 때가 많다(이런 걸 방지하기 위해서 미리 ‘30분 전에’, ‘20분 전에’, ‘10분 전에’ 알려 주고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하지만 소용없을 때도 많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열에 여덟, 아홉은 이런 모습을 보게 되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아내의 몫이다. 내가 퇴근했을 때는 아이들의 그런 감정이 모두 정리가 되고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경우가 99%라서.
화요일에는 바쁘다. 나도 목장 모임이 있고, 아내도 성경 공부가 있다. 덕분에 애들도 덩달아 바쁘다. 그래도 아내는 성경 공부가 시작되는 9시까지 꽉 채워서, 애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방에서 기다려 주다가 나온다. 물론 그때까지도 잠들지 않는 누군가가 있을 때도 많다(그 ‘누군가’는 그때그때 다르고).
성경 공부까지 마치고 나면 이제 드디어 아내의 시간이다. 자정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아내는 미처 못한 집안일을 하거나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거나 친구랑 카톡을 하거나. 아니면 지난 낮의 자신의 과오(라고 느끼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닌)를 반추하거나.
이게 2021년 니네 엄마의 하루다 이 녀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