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과 꿈의 숲

21.05.26(수)

by 어깨아빠

아내는 오늘 또 거대한 일정이 있었다. 아는 언니와 함께 강남에 간다고 했다. 거기 무슨 카페를 간다고 했다. 얼핏 들으면 고작 카페 하나 때문에 강남까지 간다는 게 참 이상해 보이지만, 그렇게 안 나가면 또 언제 시내를 나가보겠나. 아내에게 그 무엇보다 퇴근 시간에 걸리지 않도록 귀가하는 게 오늘 일정의 핵심이라고 안내를 했다. 그러려면 아침에도 부지런해야 했다. 모든 일상이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상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더 바빠야 할 거라고 얘기해 줬다.


과연 아내는 무사히 집을 나섰는지 궁금했는데 갑자기 행선지가 변경되어 성수동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최종 목적지는 북서울 꿈의숲이라고 했다. 아내가 과연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올지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느낄 시간을 보내고 올지 궁금했다. 한편으로는 아내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평일이라지만 애 셋을 데리고 뜨겁고 뜨겁다는 성수동이라니.


밤늦게 아내의 무용담을 전해 들었다. 역시나 출발부터 녹록하지 않았다고 했다. 평일 낮이었는데도 차도 많이 막혔고. 북서울 꿈의숲에 가기 전에 두 곳의 카페에 들렀다고 했다. 한 곳은 망원에 있었을 때는 종종 가던 곳, 또 한 곳은 아내가 늘 가고 싶지만 너무 멀리 있어 가지 못했던 곳. 그 두 곳을 들르기 위해 아내는 적잖은 고생을 감수했다고 했다. 차를 몇 번을 왔다 갔다 하고 애들을 몇 번이나 태웠다 내렸다 하고. 무엇보다 자기가 마치 외국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고 했다. 아내처럼 애를 줄줄이 달고 온 사람이 없었고 다들 때 빼고 광낸 젊은이들이었다고 했다. 아내도 ‘엄마’ 카테고리에서는 나름 ‘젊은 엄마’인데.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삼아도 그럴 테고. 성수동에서는 아니었나 보다.


북서울 꿈의숲도 만만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소 자체는 너무 넓고 푸르고 좋았는데 상황이 정신이 없었다고 했다. 그럴 만하다. 돌아올 때는 예상보다 자꾸 늦어지는 출발 시간에 마음이 초조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좋았나 보다. 하긴 안 좋을 이유가 없지. 퇴근해서 보니 아내가 사 온 빵과 쿠키가 한가득이었다. 나를 위한 것도 많았다. 망원에 있었을 때 종종 가던 곳에서 파는 비스코티는 오랜만에 먹어도 그 맛이었다.


퇴근했을 때 소윤이는 이미 저녁을 다 먹었고 시윤이만 식탁에 앉아서 힘겹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저녁을 다 먹으면 낮에 사 온 빵을 먹기로 했는데 식사 태도가 영 좋지 않고 진도가 지지부진해서 위기 상황이었다. 큰 이유는 없다. 그냥 밥 먹을 때마다 너무 졸리고 힘들어서 그런 거다. 시윤이의 고질병(?)이랄까.


난 아이들에게 간단히 인사만 하고 금방 나갔다.


“안녕. 소윤아, 시윤아. 엄마 말 잘 듣고 밥 얼른 열심히 먹고 빵도 먹고”


다행히 시윤이는 무사히 밥을 먹었고(혹은 아내가 자비를 베풀었고) 빵도 먹고 잤다고 했다.


“여보. 괜찮았어? 애들 다 기분 좋게 잤어? 여보도 괜찮았고?”

“어, 다들 기분 좋았어. 나 애들 셋 다 샤워시켰잖아”

“진짜? 와, 여보 대단하다”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아주 크게 달라진 게 있다. 서윤이가 이제 안 깨고 잔다. 감히 이제 ‘통잠을 자는 아이’라고 정의해도 될 정도다. 자기 전 마지막 수유도 없다. 즉, 하루에 한 번도 수유를 하지 않으면서도 밤과 새벽에 깨지 않고 아침까지 잔다는 말이다. 작은 듯 작지 않은 큰 변화가 아내와 나의 밤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아, 깨지 않고 자다가 깨는 게 이런 느낌이었지’


를 며칠째 느끼고 있다. 나도 이런데 아내는 오죽할까.


* 아내가 방문했던 곳은 그냥 ‘서울숲’ 이라고 한다. 난 왜 자꾸 북서울 꿈의숲과 헷갈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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