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구속

21.05.30(주일)

by 어깨아빠

언제나 그렇듯 아이들은 아내와 내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일어나서 아침도 먹었다. 심지어 서윤이까지. 평소에는 먹지 않는 주일 아침 식사까지 융숭하게 대접받았다.


“오늘은 서윤이 덕분에 반찬이 엄청 많네? 서윤이 때문에 밥 먹었다. 평소에는 라면 끓여 먹어야 되는데”


뼈가 담긴 아빠의 말에 엄마는 딱히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


예배는 원래 우리가 가는 교회에 가서 드렸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일부러 미리 말했다. 주일 아침 일찍 헤어지게 될 테고, 그래서 토요일에 일찍 가는 거니 헤어질 때 울고 징징대면 안 된다고. 엄마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샤워를 했는데 샤워를 하고 나오니 엄마와 소윤이, 시윤이는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마지막까지 어떻게든 놀아보려는 소윤이와 시윤이의 절박함이 엿보였다.


“자, 이제 가자”


아내의 말 한마디에 소윤이의 눈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미리 얘기를 해 놨지만 이런 상황도 어느 정도 예상을 했기 때문에 의연하게 받아줬다. 소윤이는 차에 타서도 울적한 기분을 떨쳐 내지 못하고 말없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소윤이의 슬픔은 시윤이가 깼다. 아는 찬양을 부르기는 하는데 음과 박자를 이상하게 부르거나, 혼자 읊조리는 것처럼 괴상한 가사를 지어서 부르거나. 그게 너무 웃겼나 보다. 소윤이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평소에 드리는 예배의 다음 시간 예배를 드렸다. 그 시간에는 소윤이, 시윤이의 어린이 예배가 없는 시간이라 다 함께 어른 예배를 드렸다. 서윤이는 자다 깨서 기분이 좋았다. 예배 드릴 때는 기분이 좋아도 문제다. 너무 시끄럽다. 울고 짜증 내는 소리가 아니라 듣기에 거슬리는 건 아니지만 정숙한 분위기에는 너무 튄다. 서윤이를 안고 로비로 나가서 내려줬더니 신난다고 잘 돌아다녔다. 목사님 한 분이 서윤이를 보고 나에게 물어보셨다.


“안으면 울까요?”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나도 궁금했다. 목사님이 서윤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들어 올리는 순간 서윤이 얼굴이 일그러졌다. 구해달라는 듯 나를 쳐다보며 울기 직전에 목사님의 손에서 탈출했다. 나에게 안기더니 바로 손가락을 빨았다. 이 은근한 뿌듯함이란.


‘이 녀석. 그래도 아빠를 알아보는구나’


오늘은 조금 두려운 날이었다. 아내가 오후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서윤이는 데리고 가겠다고 했는데 내가 호기롭게 괜찮으니까 다 두고 가라고 했다. 다들 홀몸으로 나오는데 아내만 혹(?)을 달고 가게 하기 싫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건데 완전히 자유롭게 실컷 놀고 오게 하고 싶었다. 그건 진심이었다. 막상 당일이 되니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내가 점심까지는 같이 먹었다. 생선구이를 먹었는데 오늘도 서윤이가 아무 탈 없이 잘 먹어줬다. 생선을 너무 잘 먹어서 굉장히 바쁘긴 했지만 서윤이의 기분이 틀어지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작은 뒤틀림 한 번이 오늘 하루를 꼬아버릴지도 모르니 서윤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항상 그렇긴 하지만.


아내는 집에 들러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갔다. 우리(나, 소윤, 시윤, 서윤)도 함께 나갔다. 하필 교회에 휴대폰을 두고 와서 가지러 가야 했다. 아내가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곳도 교회 근처에 있는(매 주일마다 가는) 카페라 일단 아내랑 함께 가서 커피를 한 잔 샀다. 사실 점심 먹으러 가기 전에 이미 한 잔을 마셨지만 또 필요했다. 새참과 함께 마시는 막걸리의 취기를 빌려 오후의 밭일을 시작하는 농부의 심정이었다. 새로운 카페인의, 새로운 각성이 필요했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어디 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공원, 놀이터 등의 장소를 얘기했다. 조금 더 나들이 기분이 나도록 기꺼이 공원에도 갈 생각이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놀이터로 의견을 모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차를 대고 놀이터로 갔다. 이때 오늘의 첫 번째 승부처가 등장한다. 서윤이가 잠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들었고 유모차에 옮겼는데도 깨지 않았다. (내) 엄마 집에서 교회로 갈 때 이미 한 번 잤는데 또 잠든 거다. 막내딸이 나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었다. 서윤이가 깨어 있다고 무조건 힘든 건 아니다. 다만 해결해 주지 못하는(때로는 파악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을 들이밀며 울기 시작하면 그것만큼 고된 일이 또 없다. 잔다는 건 그럴 가능성이 ‘0’이라는 거다.


덕분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조금 더 집중할 수 있었는데, 시윤이는 지난번에 혼자 왔을 때에 비하면 훨씬 재밌게 놀았다.


“시윤아. 시윤이는 누나가 같이 있기만 해도 훨씬 재밌지?”

“네. 누나랑 노는 게 제일 재밌어여”


시윤이는 괜찮았는데 의외로 소윤이가 뭔가 흥이 없었다.


“소윤아. 재미없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너무 더워여”

“아, 더워서 그래?”

“네. 아, 너무 덥다”


덥긴 더웠다. 소윤이가 더위에 약한 편은 아닌데 너무 갑작스럽게 맞이한 더위라 그런지 체력이 달렸나보다. 영 못 놀았다.


“아빠.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여”

“그래. 아이스크림도 이따가 먹자”


서윤이는 계속 잤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무더위와 싸워가며 놀았다. 난 배가 아팠다. 참다 참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지점까지 도달했다.


“아우 소윤아, 시윤아. 안 되겠다. 아빠 배가 너무 아프다. 일단 집에 가서 아빠 화장실 좀 갔다가 아이스크림 사러 다시 나오자. 어때?”

“그래여”


둘 다 노는 게 벅찼는지 바로 수긍했다. 서윤이는 집에 도착해서도 깨지 않아서 유모차에 눕힌 채로 현관에 뒀다. 왠지 화장실에 있을 때 깰 거 같았는데, 예상이 적중했다. 이제 좋은 시간은 가고 서윤이의 울음과 싸워야 하는 시간이 온 건가 하고 걱정했는데, 서윤이는 바로 웃으며 멀쩡해졌다. 엄마가 없다는 건 아예 잊은 듯 너무 잘 놀았다.


나가기 전에 밥을 했다. 저녁으로 먹일 게 딱히 없어서 일단 계란밥으로 계획을 했는데 밥이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르는 동안 밥도 안치고 소파에 쌓인 빨래도 갰다. 평소에 아내가 빨래를 개면 서윤이가 와서 그렇게 방해를 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관심도 없었다.


밥도 다 되고, 빨래도 다 갠 뒤에 다시 나갔다. 두 시간이나 잔 서윤이가 불쌍해서 힙시트를 하고 바깥을 보게 해 줄까도 고민했지만, 허리를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유모차에 태워 보고 울면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유모차에 또 잘 앉았다. 뭐 유모차에 앉아서도 바깥 구경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긴 고민 끝에 빠삐코를 골랐다. 소박하기 짝이 없는 녀석들이다. 오랜만에 바이킹이 있길래 나간 김에 바이킹도 태워줬다. 소윤이만 탔다. 엄청 좋아했다.


집에 와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야채 참치를 넣은 계란밥, 서윤이에게는 그냥 계란밥을 해 줬다. 참치를 넣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오늘은 건강보다는 맛을 택했다. 서윤이는 저녁도 잘 먹었다. 내심 놀라웠다. 엄마가 없어도 이렇게 멀쩡하다니. 오히려 소윤이랑 시윤이가 엄마를 더 그리워했다.


“아. 엄마 보고 싶다”

“엄마 맨날 보잖아”

“아빠. 그러니까 맨날 보다가 안 보니까 더 보고 싶져”

“그런가?”

“그렇져”

“그래. 그러니까 평소에 엄마 말씀 좀 잘 들어. 엄마가 성경 읽자고 하면 읽기 싫다고 짜증 내지 말고”

“제가여? 저 별로 안 그래여”

“뭘 안 그래. 엄마가 그러던데”

“그래도 맨날 그러는 건 아니에여”

“그래 맨날 그러는 건 아니지. 그래도 엄마 말 좀 더 잘 들으라는 말이야. 시윤이도 맨날 손 빨지 말고. 엄마 말씀 좀 잘 듣고”


“아빠아. 그런데에 우리가 맨날 그러는 건 아니지 않아여어? 말 잘 들을 때도 많지 않아여어?”

“아, 그건 그렇지. 우리 소윤이, 시윤이가 사실 엄청 잘 하긴 하지. 가끔 말 안 들을 때를 말하는 거지. 소윤이, 시윤이 정도면 엄청 잘하는 거지”


그러자 소윤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말이 싹 바뀌었네?”


이 말투와 표정이 너무나 절묘했다. 일곱 살짜리랑 대화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내가 막 웃었더니 소윤이, 시윤이도 따라 웃고, 서윤이까지 따라 웃었다. 밥 먹고 나서는 빠삐코를 줬다. 서윤이가 자기도 달라고 그러지는 않을까 긴장했지만 괜한 우려였다. 신경도 안 썼다. 시간이 갈수록 서윤이가 놀라웠다.


아이스크림까지 다 먹고 나서는 한 명씩 샤워를 시켰다. 소윤이부터 차례대로. 서윤이는 마침 이때 똥을 쌌다. 덕분에 홀딱 벗기고 아주 개운하게 씻길 수가 있었다. 비누를 안 쓰고 씻겼더니 냄새가 그대로 남은 게 좀 흠이었다. 서윤이는 샤워를 할 때도 기분이 좋았다. 오늘 아내랑 헤어지고 나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얘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드디어 긴 육아의 끝이 보이기는 했는데 한편으로는 또 두려웠다. 가장 큰 고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 남아 있었다. 엄마 없이 서윤이 재우기. 소윤이랑 시윤이는 너무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금방 잠들 게 분명했다. 서윤이가 관건이었다. 낮에 두 번이나 깊은 잠을 잤기 때문에 빨리 안 잘 것 같았다. 그러다 슬픈 감정에 꽂혀서 엄마가 없다는 걸 깨닫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두려운 마음을 안고 세 아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깜짝 놀랐다. 서윤이는 조금의 저항도 없이 순순히 자리에 누워 손을 빨았다. 누가 보면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아빠랑 산 아이처럼, 엄마의 부재가 그녀의 삶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완전히 잠들기까지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지만 혼자 이리저리 뒹굴뒹굴하며 나름대로는 자려고 노력했다. 옆에 누운 사람이 아빠라는 걸 확실히 알 정도로 눈도 마주쳤는데 오히려 안도하는 듯 다시 눈을 감기도 했다. 재우러 들어간 지 한 시간 정도 만에 다시 거실로 나왔다. 떨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수월한 하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실에 나오니 긴장이 풀리며 피로가 몰려왔다.


아내는 아주 늦게 들어왔다. 집합 금지 제한 시간을 꽉 채워서 놀고 들어왔다. 아내는 오늘 하루의 평안했던 무용담(?)을 듣고 깜짝 놀랐다.


“여보. 이제 나 자주 나가도 되겠네”

“그래. 서윤이가 아무렇지도 않네. 이제 자유롭게 나가도 되겠네”


또 한 단계, 새로운 경지에 진입한 느낌이다. 홀로 셋이라니. 한편으로는 엄마 없이 너무 잘 지내는 게 과연 나한테 정말 좋기만 한 일인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아내의 완전한 자유를 위해 기꺼이 완전히 구속되는 걸 감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의심을 떨쳐냈다. 그래 봐야 어쩌다 한 번인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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