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픈 이들의 하루

21.05.31(월)

by 어깨아빠

아주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그 시간에 연락이 오는 경우는 많다. 다만 오늘은 내용이 조금 심각(?)했다. 시윤이와 아침부터 씨름하는 경우도 많은데 오늘은 시윤이의 행동이 그 어느 때보다…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음, 그 어느 때보다 좋지 않았다고 해야 되나. 시윤이의 행동을 마주한 아내도 도대체 이걸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나에게 전화를 한 거였다. 시윤이의 행동을 전해 들은 나도 당황스러워서 한참을 생각했다. 아내에게 이렇게 저렇게 해 보라고 조언을 하긴 했지만, ‘물을 마시니 목이 마르지 않았다’처럼 뻔한 소리였다.


아내는 ‘허탈해서 눈물이 난다’라면서 화장실에 가서 몰래 울었다고 했다. 아내가 말하는 ‘허탈’의 감정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시윤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가 문득 나도 살면서 우리 엄마를 얼마나 많이 허탈하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꽤 긴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상황은 정리되었다고 했다. 아내의 감정, 시윤이의 감정은 어느 정도까지 정리가 됐을지 궁금했다. 그 와중에 월급이 입금돼서 아내에게 월급 명세서를 보냈다. 착한 아내는 또 그 와중에, 한 달 동안 고생한 남편을 격려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쓰며 ‘밝게’ 카톡을 보냈다.


나도 하루 종일 정신없이 보내느라 그 뒤로는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아내의 속은 하루 종일 제 속이 아니었을 거다. 아내는 퇴근하는 나에게 전화해서 얘기했다.


“여보. 도저히 저녁은 못하겠다”

“그래. 그럼 내가 뭐 사 갈까?”

“그냥 탕수육 하나 사서 밥이랑 같이 먹을까?”

“그래”


탕수육 찾아서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마치 나를 위한 연극을 하는 것처럼 다들 멀쩡했다. 소윤이도, 시윤이도, 서윤이도 언제나처럼 환하게 아빠를 맞아줬다. 아내도 피곤하지만 밝은 얼굴로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나를 안아줬고. 그냥 다들 짠해 보였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온 나만큼이나 치열하게 살았을 아내와 아이들이 오늘따라 다르게 보였다.


탕수육은 양이 굉장히 조금이었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언제나 그렇듯 내가 달려들기에는 적은 양이었다. 먹는 건 좋아하지만 식탐은 없어서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항상 지금 먹는 양의 두 배씩 사야 했을 거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맛있게 먹는 것도 모자라 서윤이까지 가세한 걸 보는 즐거움이 꽤 크다.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는 마법 같은 일은 없지만 안 먹어도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는 건 경험하고 있다.


자기 전에 소윤이가 골라온 책을 읽어줄 때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모두(나와 서윤이를 제외한)에게 마지막 웃음을 선사하기 위해. 책 내용에 오늘 하루의 아내와 아이들의 삶을 삽입하고 각색해서 읽었다. 전략이 먹혔는지 소윤이도 시윤이도, 그리고 아내도 나의 책 읽기에 웃음이 터졌다.


소윤이는 외출이 고프고, 시윤이는 사랑이 고프고, 아내는 여유가 고프고. 서윤이는 뭐가 고플까. 그래, 서윤이는 언제나 엄마가 고프고. 난 주말이 고프고. 부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서로의 주린 것들을 잘 채워주는 하루가 되길.


얘들아, 아빠는 돈이 고픈 통장을 위해 열심히 일 할게. 엄마 조금만 덜 힘들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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