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1(화)
아내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그런 날은 오늘 말고도 허다하다). 잠깐이라도 나갔다 오려는 마음은 굴뚝같았겠지만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었을 거다. 아내가 게을러서 그럴 리는 만무하고 오히려 한시도 쉬지 않았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일에 치여서 그랬을 거다.
“아, 오늘 잠깐이라도 나가려고 했는데 못 나갔네”
아내가 나에게 하는 말을 소윤이가 들었다.
“아빠. 어디라도 나가자여”
발달의 측면에서 보자면 하루에 최소 한 시간 이상은 밖에 나가서 뛰어야 원활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게 꼭 육체의 발달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거다. 나가서 바깥공기도 좀 쐬고 숨도 크게 들이 마시고 온몸에 흐르는 혈중 산소를 새것으로 교체도 하고 그러면, 스트레스도 풀릴 거고. 정신 건강에도 분명히 이로울 거다. 애들이라고 스트레스가 없지는 않을 테니.
어떻게든 기회를 잡아 나가려는 소윤이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마음이야 바로 ‘그러자’하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저녁에 아내의 성경 공부가 있었다. 원래 나도 목장 모임을 해야 했지만 취소되었다. 아주 잠깐, 혼자서라도 애들을 데리고 나갔다 올까 고민했지만 사실 나도 엄청 피곤했다. 바빠서 그런 건지 오락가락하는 날씨 때문인지 어제, 오늘 유독 피곤했다. 혼자서 데리고 나갈 엄두는 나지 않았다.
“오늘 엄마 목장 모임이 있으셔서 시간이 안 될 거 같은데”
“아빠는여? 아빠는 괜찮아여?”
“아빠는 엄마가 된다고 하면 괜찮지만 아마 엄마가 시간이 너무 촉박할 거야”
소윤이는 저녁 준비를 하는 아내에게 계속 ‘잠깐이라도 나가자’며 졸랐다. 아내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며 ‘내일은 꼭 나가자’는 약속으로 소윤이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했다. 소윤이는 엄마와 아빠의 상황을 이해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컸는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난 피곤해서 지쳐 있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가지 못해 유쾌하지 않은 데다가 피곤하기도 엄청 피곤했다. 나도 애들도 약간은 정상이 아니었다(?). 밥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물을 달라고 했다. 아내는 컵 하나에 물을 따라서 둘 사이에 놓았다. 소윤이, 시윤이 둘 다 먼저 먹겠다고 서로의 손을 밀치며 컵을 잡으려다가 물을 조금 쏟았다. 나중에 마신다고 물을 못 마시는 것도 아닌데 그걸 가지고 다투듯 ‘먼저’를 차지하려는 두 녀석의 ‘꼴’이 매우 거슬렸다. 그래도 나름대로 잘 참고 얘기했다.
“둘 다 물 마시지 마. 밥 다 먹고 마셔”
소윤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여기서는 더 참지 못했다. 물을 영영 마시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잠시 밥 먹는 동안만 참으라는 건데(그것도 자기들이 한 일 때문에 그러는 건데) 그게 그렇게 울 일인가 싶었다. 여기서부터였다. 오늘 저녁 시간 전반을 지배한 어두운 기운이 등장한 게. 소윤이는 밥 먹는 내내 우울했고 나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옆에 앉은 서윤이에게 밥을 먹여주느라 눈을 마주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무장해제가 되어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막내에게만 관대하고 웃음이 후한 아빠로 보일까 봐, 괜히 소윤이와 시윤이의 마음을 더 상하게 할까 봐 기를 쓰고 웃음을 단속했다. 물론 그래도 티가 났겠지만.
애들이 자러 들어갈 때까지 그런 기운은 계속되었다. 애들 씻겨주는 것까지만 하고 자기 전에 기도하는 것, 뽀뽀하며 인사하는 것 모두 하지 않았다. 아내도 나의 상태를 간파했는지 알아서 내 역할을 대신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내가 좀 과했다. 혼자 소파에 앉았을 때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걸 보니 틀림없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에게 달려들어 안기던 아이들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소윤이는 어떤 기분으로 누웠을까’
특히 소윤이한테 많이 미안했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바로 성경 공부에 참여했다. 방에 들어가서 성경 공부를 하던 아내가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얘기했다.
“하아. 나 졸았어. 대박”
“화면 켜져 있었어?”
“어. 아, 왜 이렇게 피곤하지”
그러게. 왜 이렇게 피곤한 거야. 서윤이는 이제 깨지 않고 쭉 잔다. 덕분에 나머지 가족도 한결 질 좋은 수면의 시간을 확보했다. 그런데 왜, 도대체 왜 더 피곤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