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엉덩이가 무거워

21.05.29(토)

by 어깨아빠

(내) 엄마 집에 가기로 했다. 난 몰랐는데 지난번에 (내) 엄마랑 소윤이랑 약속을 했다고 했다. 오늘 할머니 집에 가기로. 소윤이 나름대로는 오늘을 학수고대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다른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큰일 날 뻔했다. 다행히 미리 알게 돼서 계획은 수정했다.


아침 먹고 부지런히 출발하려고 했는데 역시나 말처럼 쉽지는 않다. 뭐 서두를 이유가 없었지만, 내일 예배 시간에 일찍 와야 하니 최대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시간을 많이 주려고 그랬다. 그래도 엄청 늦은 건 아니었다. (내) 엄마 집에 가서 점심 먹을 정도의 시간이었으니까.


서윤이는 가는 길에 푹 잤다. 꽤 긴 시간을 잘 잤는지 덕분에 오늘 내내 기분이 좋았다.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를 향한 낯가림은 아예 없다. 도착하자마자 내려놔도 아무렇지 않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안아도 아무렇지 않다. 물론 유효 시간은 매우 짧다. 그래도 소윤이가 아주 오랫동안 할머니들에게만 마음을 열었던 것에 비하면 서윤이는 만인에게 열려 있다.


(내) 엄마 집에는 아주 오랜만에 가는 거였다. 이전에 갔을 때만 해도 서윤이가 못 걸었다. 막 잡고 설 때쯤이었다. 이제는 자유롭게 걸어 다닌다. 부모님만 사는 집이니 서윤이의 손이 닿는 곳 여기저기에 만져서는 안 될 물건이 즐비했다. 온갖 곳을 다니며 다 헤집고 다니는 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서윤이는 걷기 실력만큼이나 소통 능력도 향상됐다.


“안 돼”


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한다. 반대로 어떤 게 되는지도 확실히 안다. 안 된다고 하면 애교를 부리다가 진짜 안 되는 거 같으면 입을 삐죽거리며 울음 시동을 건다. 그때


“이리 와. 아빠가 안아줄게”


하면 쪼르르 와서 나에게 안긴다. 소윤이 때도, 시윤이 때도 못 해 본 경험이다. 소윤이나 시윤이나 기분이 안 좋으면 항상 엄마를 찾았다. 서윤이도 다르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에게 오기도 한다. 입을 삐죽거리는 게 보고 싶어서, 나한테 와서 안기는 걸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안 되는 걸 만들곤 한다. 거절감으로 인한 부정적인 정서의 발달이고 뭐고 양 입꼬리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나에게 안기겠다고 걸어오는 걸 한 번 경험하고 나니 끊을 수가 없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서윤이의 방해를 받지 않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놀기 위해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우리 가정의 가장 상위법에 ‘어떤 경우에도 동생을 따돌리거나 외면하지 않는다’가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정상참작을 해 줬다. 그간 피하고 싶어도 피할 곳 없어서 서윤이의 방해를 꿋꿋이 버텨냈던 소윤이와 시윤이의 수고를 치하하는 의미였다. 서윤이는 이제 그런 눈치도 다 생겼다. 방 문 앞에 가서 열어 달라고


“마아아아”


하며 여러 번 소리쳤다. 그러다 포기하고 아내나 나에게 와서 놀다가 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리면 또 가서 소리치고. 서윤이도 불쌍했지만 오늘은 언니와 오빠를 위해 서윤이가 좀 양보해야 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소윤이와 시윤이는 선을 넘기 시작했다. 배려 받는 것을 망각하고 동생을 향한 배려도 상실했다. 이미 충분한 시간을 격리되어 놀기도 했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방 문 닫지 말고 서윤이도 같이 놀아야겠다”


막상 열어줘도 서윤이가 오래 앉아 있는 건 아니다. 자기도 재미가 없겠지. 요즘 서윤이에게 제일 재밌는 건 뚫어져라 자기만 보면서 자기를 웃겨 주는 사람이랑 노는 걸 텐데.


아무튼 편하게 있었다. 잠깐 침대에 누워서 쉬려고 갔다가 잠이 들어서 꽤 단잠을 잤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신경을 덜 썼다. 애들도 날 안 찾았고. 무엇보다 서윤이가 울거나 떼를 쓰지 않고 잘 있어서 아내도 편했고 나도 마음이 편했다. 저녁을 밖에서 먹었고 심지어 불판에 고기를 굽는 곳이었는데, 거기서도 제법 무사히 식사를 마쳤다.


“밥 잘 안 먹어도 고맙다 서윤아. 그냥 앉아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


정말 그랬다. 안 그랬으면 내 앞에 불타고 있는 숯불보다 뜨거운 시간이 됐을 거다.


“여보. 움직일 일 있으면 여보가 좀 움직여요. 난 몸이 무겁네. 어머님한테 너무 죄송하다. 여보가 좀 움직여요. 알았죠?”

“움직일 일? 알았어”


머리는 알았는데 몸은 몰랐나. 엉덩이가 삼백 톤이었다. (내) 엄마는 소시서 3남매를 씻기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머리만 안 감았지 엉덩이까지 씻기는 준 샤워 수준이었다.


서윤이는 아내가 재우러 들어갔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내) 엄마가 재우러 들어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이제 할머니랑 자는 걸 당연하게 생각한다. 책을 여섯 권이나 골라왔길래 두 권을 반려했다. (내)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들의 피로를 생각해서 네 권만 남겼다. 무의미한 일이었다. 책을 다 읽고도 할머니랑 이야기하며 떠드느라 엄청 늦게 잤다. 아내가 서윤이를 재우고 나온 뒤에도 한참 있다가 잠들었다.


사랑하는 세 자녀를 아내와 엄마가 재우는 동안 아빠와 앉아서 TV를 봤다. 이제 부모님 댁에 가도 옛날만큼 안 편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막상 실상을 보니 그렇지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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