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의 맛

21.06.03(목)

by 어깨아빠

저녁에 집에 손님이 오기로 했다. 저녁 식사로 보쌈을 대접하기로 했고 아내는 그걸 준비하기 위해 잠시 장을 보러 나갔다 왔다. 이게 오늘 아내와 아이들의 유일한 외출이었다. 가끔씩 통화할 때 들었던 아내의 목소리가 막 엄청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지난 월요일처럼 감추려고 해도 감추지 못하고 드러나는 날이 있고, 실제로는 힘들지만 잘 감춰서 안 힘든 것처럼 보이는 날이 있고, 실제로 안 힘든 날이 있다고 치면 아마 두 번째랑 비슷한 날이 아니었을까 싶다. 실제로 안 힘든 날은 아마 거의 없을 테니까.


저녁에 손님이 오기로 했고 저녁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으니 아내의 마음이 엄청 분주했을 거다. 1분이라도 빨리 집에 도착하기 위해 애를 썼다. 뭐 내가 애쓴다고 달라지는 것보다 교통 상황이 어떤가가 더 중요하긴 하다. 다행히 오늘은 차가 많이 안 막혀서 조금 일찍 도착했다.


서윤이는 이제 내가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만 들려도 엄청 좋아한다. 다른 걸 하다가도 현관문 앞으로 헐레벌떡 와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반가움의 소리를 지른다. 문을 열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잘 때도 일할 때도 생각나는 마성의 웃음과 함께 나에게 달려온다(속도는 걸음이지만 마음은 뜀박질). 아빠가 내민 입술 위로 자기 입을 벌려서 침 세례나 마찬가지인 뽀뽀까지. 강아지가 달려와서 반겨줘도 그렇게 예쁘고 귀엽다고 하던데, 하물며 내가 낳은 자식들이 와서 그러는 건 상상 그 이상이다. 진정한 퇴근의 맛이랄까.


도착하자마자 보쌈 고기 썰기에 투입되어서 열심히 고기를 써는데, 손님(가족)도 도착했다. 함께 저녁도 먹고, 회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애들은 애들끼리 잘 놀았다. 10시가 조금 넘어서 모임을 마치고 헤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야 놀 때는 피곤한 걸 잊는 게 당연한 일인데, 서윤이도 그 늦은 시간까지 칭얼대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언니, 오빠랑 같이 어울려서 노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신나는 분위기를 타고 혼자 잘 놀았다. 너무 꼰대스러운 말이지만, 어린 아기를 돌보는 육아(옳은 것과 잘못한 것을 가르칠 필요가 없는)는 결국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새삼 느끼고 있다. 400일 이전의 서윤이와 그 이후의 서윤이가 마치 다른 사람 같다. 여전히 엄마에게 자석같이 붙어 지내는 걸 즐기기 때문에 아내의 느낌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 아빠인 내가 느끼기에는 훨씬 수월해졌다. 얘도 나랑 있을 때는 달라지나.


“여보. 지난주에 파전 못 먹어서 너무 아쉽다”

“그럼 내일은 미리 사 놔. 아니면 제일 늦은 시간에 배달 시키거나”


아내와 나는 내일이 금요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지난주에 먹지 못한 파전(파전만 못 먹었지 골뱅이무침이랑 치킨도 먹었다)을 먹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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