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한 것도 없는데 하루가 갔네

21.06.05(토)

by 어깨아빠

늦게 늦게 아주 늦게까지 이불에서 뒹굴다가 몸을 일으켰다. 애들이 얼른 일어나라고 보채지도 않았다. 자기들끼리 거실에서 놀다가 방에 들어와서 놀다가. 서윤이도 언니와 오빠를 따라 열심히 왔다 갔다 했다. 이러다 소윤이가 조금만 더 크면


“소윤아. 동생들 아침 좀 차려줘”


라고 할 판이다.


간단하게 계란밥을 해 주려고 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 둘 다 토스트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일단 계란밥 먹고 토스트는 나중에 해 준다고 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거 뭐 어려운 일이라고. 집 앞 편의점에 가서 식빵을 사다가 계란물을 풀고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줬다. 역시나 만든 사람 보람차게 아주 잘 먹었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먹는 그걸 자기도 달라며 소리를 빽빽 질렀다. 우는 것도 아니고, 짜증 내는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고함이었다.


“에에에에에에”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막을 탁탁 때리는 카랑카랑한 목소리. 맨 식빵을 조금씩 떼어 주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사실 토스트까지는 크게 번거롭지 않다. 계란밥보다는 조금 손이 더 가도 할 만하다. 아내가 갑자기 얘기했다.


“여보. 그냥 새우도 아침에 구워서 줄까?”


빠른 시일 안에 먹으려고 냉장실로 옮겨 놓은지 이틀이 지난 새우가 있었다. 날이 더 지나면 그대로 상해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에 얼른 먹어야 했다. 아내의 말을 듣고 새우를 꺼내서 씻었다. 머리는 따서 버리고 몸통만 구웠다.


굽고 나서 먹기 좋게 껍질도 까 줬다. 껍질 까는 게 은근히 힘들었다. 고개도 계속 숙이고 있어야 하고, 구워 놓으니 껍질도 잘 안 까지고. 입맛이 싹 싸라지고 단 게 당겼다. 기껏 열심히 깠는데 정작 아이들은 토스트를 먹어서 배가 불렀는지 새우는 거의 안 먹었다. 서윤이 조금 주고 나머지는 내가 다 먹었다. 그럴 줄 알았으면 고생해서 껍질 안 까도 되는 건데. 그냥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고 버리면 되는데.


간만에 내려 마신 커피가 아주 맛있었다. 오늘의 첫 휴식. 잠시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아내의 하루를 떠올렸다. 매일 거르지 않고 출근하는 나도 대단하고 함께 해도 고단한 이 일상을 매일 소화하는 아내는 더 대단하고. 난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렇게 커피가 고픈데 아내는 어떻게 버티나 싶었다. 매일 퇴근 시간 무렵이 되면 커피를 갈망하는 아내의 심정이 새삼 이해가 됐다.


서윤이는 졸려 보였다. 갑자기 바닥에 누워 손가락을 빨거나 뜬금없이 짜증을 냈다.


“서윤이. 졸린가 보다. 금방 잘 거 같네”

“아, 여보가? 여보 금방 자겠다고?”

“아니야. 나 나올 거야”


아내는 안방차사였다. 주말에 서윤이 낮잠 시간마다 안방에 들어가면 깜깜무소식이다.


“아빠. 엄마는 또 주무시나 보네?”

“그러게. 많이 피곤하신가 보다”


소윤이, 시윤이와 레고를 했다. 지난 시윤이 생일 때 선물 받아서 조립하다가 중단했던 걸 이제서야 다시 꺼냈다. 난 설거지를 하고 소윤이가 조립을 했다. 선물의 주인인 시윤이는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시윤아. 시윤이 선물인데 시윤이는 하지도 못하네. 괜찮아?”

“아빠아. 저는 보는 것도 재밌어여어. 갖고 노는 것도 재밌고오”


다행히 시윤이는 누나가 만드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 소윤이는 덕분에 신나게 조립했고.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점심 먹을 때까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따로 밥을 주지는 않고 요거트에 과일을 넣어서 줬다. 그 즈음 아내가 먼저 깨서 나왔고 서윤이는 더 잤다.


차 전조등과 제동등을 갈아야 했는데 직접 갈기로 했다. 근처의 부품 대리점에 가서 등을 사 와야 했는데 소윤이, 시윤이를 데리고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신발을 신느라 정신없고 어수선할 때 아내는 서윤이도 데리고 가라고 했다. 깊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럴까’하고 대답했는데 아내가 바로 말을 바꿨다.


“아, 아니다. 서윤이 점심 안 먹어서 배고프겠다. 집에서 밥 먹여야겠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할 뻔했다.


날이 무척 더웠다. 등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쭈쭈바를 하나씩 사 줬다.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대고 등 교체를 시작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구경했다. 동시에 여러 군데가 나가서 은근히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게다가 다 갈고 마지막 한곳을 다시 조립하는데 도저히 제대로 끼워지지가 않았다. 한참을 씨름하다가 결국 억지로(대충 비스무리한 상태로) 조립하고 끝냈다.


아내와 서윤이도 나왔다. 저녁은 밖에서 사서 집에 가서 먹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죽이 먹고 싶다고 해서(정확히 말하면, 죽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해서) 죽을 샀고 아내와 나는 새로 생긴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를 샀다. 그전에 아내가 먹을 빵도 사러 갔다.


동네의 아주 가까운 곳들을 걸어서 순회한 건데 날이 더워서 그런지 은근히 고됐다. 아침, 점심 다 제대로 안 먹어서 배도 무척 고팠다. 집으로 돌아와서 바로 식탁에 사 온 음식을 펼쳐 놓는데 콜라와 사이다만 있고 햄버거와 감자튀김이 안 보였다.


“여보. 햄버거는 어디 갔어?”

“어? 없어? 놓고 왔나? 우리 음료수만 들고 왔나?”


향할 곳 없는 짜증이 샘솟았다. 내가 다시 햄버거 가게까지 가서 햄버거를 찾아왔다. 다녀오며 마음을 잘 다스렸다. 최악의 경우로 흐를 가능성도 다분한 순간이었다. 햄버거를 챙기지 않은 건 아내와 나 공동의 실수지만 아내가 들고 있었다는 이유로 아내를 힐난하고, 그럼 아내는 황당하고 기분이 나쁘고. 부부 싸움은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는 게 바로 이런 거다. 무엇보다 ‘고작’ 햄버거다.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아이들도 모두 참석해야 하는 모임이라 애들도 늦은 시간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서 모임에 참여했다. 시윤이는 중간에 졸기도 했고, 서윤이도 한계 시간이 넘었는지 다소 떼를 썼지만 무사히 마쳤다.


오늘 같은 날은 정말 별로 한 게 없는 것 같은데 하루가 후다닥 지나갔다. 자동차 등 교체하는 데 시간을 너무 오래 썼다. 그냥 카센터에 맡기고 차라리 그 시간에 애들이랑 자전거라도 한 번 탈걸. 평일에 그렇게 자전거 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애들 다 재우고 나서는 아내랑 오랜만에 영화를 봤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깨지 않았다.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쭉 봤다.


“여보. 서윤이 이제 정말 잘 자네”

“그러게. 이런 날도 오네”


사실 서윤이가 잘 잔 지는 꽤 됐다. ‘잘 안 잔’ 세월이 긴 만큼 아직도 아내와 내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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