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그렇게 좋으면

21.06.06(주일)

by 어깨아빠

아내는 어제 다짐하며 잠들었다.


“내일은 진짜 일찍 일어나야지”


그래도 요즘은 예배 시간에 잘 맞춰서 갔다. 아내의 말의 의미는 ‘늦게 일어나서 애들 재촉하지 않고 여유 있게 아침 시간을 보내야지’였다. 그러기에는 어제 너무 늦게 잤기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내는 의지를 발휘해 제법 부지런히 일어났다.


애들 아침을 먹이면서 점심 먹일 걸 고민해야 한다. 특히 서윤이 점심을. 주일에는 점심을 밖에서 먹을지도 모르기 때문에(어차피 아내랑 내가 결정하는 거지만 그렇다고 아침부터 외식을 할지 집에서 먹을지 미리 정하지는 않는다) 준비를 해 놔야 한다. 아내는 애들 아침을 차려 주고 곧장 서윤이가 점심에 먹을지도 모르는 야채볶음을 만들었다.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준비해도 출발 시간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아내와 내가 마음속에 정해 놓은 ‘출발 시간’을 당기지 않는 이상 거의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다. 참 신기하다. 오늘은 조금 빠르게 출발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변수가 발생했다. 진짜 ‘변’수가.


“어? 뭐지? 서윤이 똥 쌌나 보다”


아내가 말하기를 방구는 ‘똥인가? 방구인가?’ 헷갈리는데, 똥은 헷갈리지 않는다고 했다. 똥의 향은 다르다고 했다. 정말 그렇다. 서윤이는 푸짐하게 한 판을 쌌고, 아내가 서윤이를 받아서 씻겼다. 그래도 다행이다. 차에서 쌌거나 그때 알았으면 답도 없다. 대신 예배 시간 내내 자서 수월하게 예배를 드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월한 만큼 졸기도 했다. 서윤이가 우리를 힘들게 해야 졸지도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설교도 잘 듣는 면도 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2층으로 올라갔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소윤이랑 시윤이가 앞에 나가서 발표했어요”


어떻게 보면 주일 예배드릴 때가 유일하게 소윤이, 시윤이가 아내 혹은 나랑 떨어지는 시간이다. 궁금하다. 아내와 내가 없는 곳에서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떤 모습일지. 어찌 보면 언젠가 다가올 ‘떨어질 시간’에 제대로, 잘 살라고 이렇게 붙어서 가르치고 있는 거다. 뭘 발표했는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해서 소윤이랑 시윤이한테 막 물어봤다. 5월에 암송한 말씀 노래를 나가서 부른 모양이다. 아내는 시윤이가 그 노래를 외웠다는 게 놀라웠나 보다.


“시윤이도 그 노래 알아? 그거 불렀어?”

“네에. 저도 알아여어”

“그래? 한 번 불러 줄 수 있어?”


어설픈 듯 꽤 정확하게 따라 부르는 시윤이의 모습에 아내도 나도 절로 미소가 가득가득 찬다. 요즘은 소윤이도 우리(아내와 나) 쪽에 설 때가 많다. 아내와 나처럼 동생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웃곤 한다.


역시나 점심은 밖에서 먹었다. 지난번에 갔던 국수 가게에 갔는데 지난번보다 만족도가 더 높았다. 음식도 맛있었고 서윤이도 얌전했다. 밥 먹고 카페에 들러 커피도 한 잔씩 샀다. 사실 이 커피가 밥보다 더 고팠다. 아침에는 바빠서 여유롭게 마실 시간이 없었다. 커피 생각이 간절했지만 냉수 마시듯 호로록 먹기 싫어서 꾹 참았다. 아내는 어제도 제대로 된 커피를 한 잔도 못 마셨다. 커피가 없었으면 내 육아 이력이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었을 거다.


시윤이가 뜬금없이 집에 가면 영화를 보자고 했다. 늘 보는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여 주려고 했는데 아내가 넷플릭스 구독이 끝났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네이버에 있는 것 중에 골라야 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애들이 좋아할 만한 애니메이션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후보가 거론된 끝에 ‘니모를 찾아서’를 골랐다.


아내와 내가 세운 나름의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바람직한 내용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나도 본 적이 없었다. 아내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지듯 바닥에 눕더니 잠들었다. 서윤이는 다행히 엄마를 깨우지 않고 혼자 잘 놀았다. 언니와 오빠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데도 거기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자기 혼자 놀았다.


나랑 소윤이, 시윤이만 앉아서 영화를 봤다. 한 20분쯤 봤을까, 니모가 잠수부에게 잡혀 아빠와 헤어지는 장면이 나오자 소윤이가 오열하기 시작했다. 너무 슬프다고 했다. 참 순수하기도 하고 소윤이답기도 했다. 시윤이는 누나처럼 울지는 않았지만 슬픈 표정이었다. 그러고 나서 또 한 5분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상어가 니모의 아빠를 잡아먹으려고 난리 치는 장면이 나왔다. 소윤이는 계속 울었고, 시윤이도 계속 울었다. 금방 지나가고 계속 나오는 건 아니니까 조금만 참고 보자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뭐 슬프고 무서워서 우는 건데 그럼 그냥 받아주면 될 일이었다. 보기 싫다고 하면 끄면 될 일이었고. 막상 그 순간에는 짜증이 났다. 기껏 재밌게 영화 보자고 틀어줬는데 계속 울기만 하고 금방 지나가는 건데 그걸 못 참는 게 답답하기도 하고. 나도 짜증을 팍 내면서 노트북을 꺼버렸다. 앞으로는 영화 보자고 하지 말라는 신경질이 가득 섞인 엄포와 함께(사실 글로 쓴 것보다 훨씬 더 격했다).


거실에 누워 자던 아내는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그야말로 자다가 날벼락 맞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르니 상황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그렇게 주일 오후의 영화 관람은 종료됐다. 니모는 영영 찾지 못할 것 같다.


도대체 나는 왜 화가 난 건지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 됐다. 아마 시작해서부터 울기 시작해가지고 그치지 않는 게 좀 짜증이 났나 보다. 애들은 잘못한 게 없었고 난 잘 한 게 없었다. 마음이 너무너무 찜찜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또 미안하다고 하기에는 내가 너무 괴팍해 보였다. 장면의 전환이 일어날 때를 기다렸다.


옷을 갈아입고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나왔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사과를 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까 아빠가 너네한테 그렇게 한 건 아빠가 잘못한 거야. 소윤이랑 시윤이는 사실 잘못한 게 없어. 아빠가 미안해. 그건 아빠가 정말 잘못한 거야. 혹시라도 다음에 또 영화 보거나 그러다가 무서운 장면이 나오거나 슬픈 장면이 나오면 울어도 돼. 아빠가 오늘 이렇게 했다고 억지로 안 참아도 돼. 오늘은 아빠가 잘못한 거니까. 알았지? 그런 건 안 참아도 되는 거야. 소윤이랑 시윤이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 아빠가 미안”


차에 탈 때까지 계속 얘기했다. 그만큼 진짜로 미안했다.


“아빠. 괜찮아여. 우리는 이제 괜찮아여”


예수님이 왜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했는지, 애들을 키우다 보면 골백번도 더 깨닫는다.


아내는 우리(나, 소윤, 시윤)가 없는 동안 친정에 다녀왔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소윤이와 시윤이의 방해(?)없이 온전히 서윤이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의 시간이다. 아내와 서윤이가 우리보다 먼저 집에 돌아왔으니 아주 잠깐 있다 온 거다. 소윤이는 이렇게 표현했다.


“아빠. 엄마는 우리 없을 때는 꼭 할머니 집에 가네?”


소윤이와 시윤이는 무더운 날씨 속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잘 뛰어 놀았다. 도저히 샤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날씨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한 명씩 차례대로 샤워를 시켰다. 오늘도 소윤이 몸을 닦아주며 ‘이것도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드니 괜히 혼자 시큰해졌다. 아직 아빠 앞에서도 훌렁훌렁 옷을 벗는 소윤이를 볼 때마다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소윤이 옆에 기웃거리는 늑대같은, 나같은 놈들(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존재일 뿐인)을 생각만 해도 절로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된다.


애들한테 자주 하는 소리가 있다.


“그러게 엄마가 그렇게 좋으면 엄마 말도 좀 더 잘 듣고, 엄마 좀 덜 힘들게 해 줘”


아마 애들도 나한테 이렇게 얘기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우리가 그렇게 좋으면 좀 더 다정하게 상냥하게, 우리가 덜 속상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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