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7(월)
“여보. 어디신가요?”
“나? 이제 거의 다 왔어. 한 15분 정도?”
“아, 그래요? 여보 혹시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없나요?”
“먹고 싶은 거? 없는데. 아무거나 괜찮은데?”
“아, 그래도 혹시 먹고 싶은 거 생각해 보실래요? 사랑하는 여보?”
“왜 그래? 갑자기?”
“아, 제가 오늘 저녁을 준비를 못 해서 미안해서 그러죠”
“뭐래. 미안하긴 뭘 미안해”
아침은 안 먹고, 점심은 생존을 위해 먹는 남편을 위해 아내는 고맙게도 항상 정성스럽게 저녁을 차려 준다. 덕분에 우리 가족에게 저녁 식사 시간은 나름의 큰 의미가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아이 셋을 키우면서 시간에 맞춰 저녁을 딱딱 차려 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딱 하루만 체험해 봐도 알게 된다. 그래도 아내는 미안한가 보다.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멋쩍은 마음을 전달해 왔다. 아내는 점심에도 샌드위치를 배달시켜 먹었다고 했다. 오늘 밥하기가 정말 싫었나 보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아니, 그런 날이 허다한데 대부분 참고 하는 게 대단한 거지.
아이들이 먹을 비빔밥과 아내와 내가 먹을 알밥, 얼큰한 소고기 뚝배기를 포장해서 왔다. 서윤이가 먹을 건 없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을 비빔밥에서 야채를 조금씩 건져서 반찬 삼아 줬다. 썩 잘 먹지는 않았다.
소윤이는 오늘도 나에게 편지를 썼다. 매일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엄마에게, 아빠에게 편지를 쓴다. 그냥 편지를 쓰는 것도 아니고 나름 정성스럽게 종이접기로 뭔가를 만들어서 함께 주는데, 소윤이는 손재주가 좋아서 뭐든 꽤 그럴싸하다. 오늘도
“아빠. 저기 봐봐여”
라면서 자기가 쓴 편지를 넌지시 가리켰다. 매일 ‘아, 나도 답장 써 줘야 하는데. 소윤이가 좋아할 텐데’ 생각만 하고 쓰지 못하고 있다. 소윤이가 주는 편지와 종이접기들이 너무 귀해서 하나도 안 버리고 있는데, 막상 소윤이는 ‘아빠는 내 편지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무척 피곤했다. 밥 먹고 소윤이와 시윤이 씻기는 걸 아내가 맡아줬다. 별거 아니지만 피곤할 때는 참 성가신 일이 되기도 한다. 엄청 큰일도 아니고 짧은 시간이지만 아내의 배려였다. 그동안에라도 좀 쉬라는 달콤한 배려. 또 한 가지. 서윤이랑 시간 좀 보내라는 배려였다. 이제 정말 기분이 나쁘지 않고서는 나하고도 잘 노는 서윤이랑 많이(라고 해 봐야 재우기 전까지 한 20분 정도 될까) 놀라는 배려. 어제부터 숨바꼭질에 맛을 들인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책을 읽는 동안에도 자꾸 숨는 아빠를 찾느라, 눕기 직전까지 신나게 돌아다녔다.
아내도 바로 나오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나왔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금방 잤는데 소윤이가 늦게 자서 기다려 주다가 그렇게 됐다고 했다. 소윤이는 어제 봤던 ‘니모를 찾아서’의 무서운 장면이 계속 떠올라서 잠이 안 온다고 했다. 니모를 찾아서가 이렇게 공포스러운 영화였을 줄이야.
어제 더 볼 수 있게 잘 달래 주거나 무서운 걸 잘 공감해 줬어야 했는데. 무척 후회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