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8(화)
새벽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깼는데 그때 서윤이도 깼다. 바깥이 아직 어두운 걸로 봐서는 깊은 새벽이었던 것 같다. 화장실에 갔다 와서 자리에 누웠는데 서윤이가 일어나서 침대 위로 올라 오려고 하다가 모든 길이 막혀 있으니(소윤이와 시윤이가 서윤이가 올라올 만한 길목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앉았다. 누운 게 아니라 앉았다. 앉아서 한참 동안 소윤이도 보고, 시윤이도 보다가 누웠다. 서윤이가 나름대로 골똘히 생각하고 행동하는 느낌이었다. 난 자는 척하면서 흥미롭게 보고 있었는데, 그러다 잠이 좀 깼다. 갑자기 애들 옆에서 자고 싶어서 바닥으로 내려갔다.
시윤이는 갑자기 일어나서 자기 옆으로 온 아빠를 반갑게 맞아주긴 했지만, 스킨십은 허용하지 않았다. 손을 잡아도, 발을 잡아도, 살짝 대기만 해도
“아아아아”
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내 옆을 떠나지는 않았다. 서윤이도 잠이 좀 깼는지 한참 못 자고 이리저리 뒹굴었다. 내가 먼저 살짝 잠이 들려는 찰나에 갑자기 서윤이가 나한테 와서 뽀뽀를 했다. 그러더니 태연스럽게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누웠다. 이런 게 꾸준한 학습의 효과인가. 충치 발생의 위험을 무릅쓰고 뽀뽀를 강제로 시행하는 이유가 다 이런 거다.
아내는 아침부터 무척 바빴다. 아침 일찍, 주일에 교회에 가는 시간에 나가야 했다. 나랑 같이 준비하는 것도 언제나 빠듯한데 그걸 혼자 해야 하니, 안 봐도 훤한 일이었다.
“잘 갔습니까?”
“아뇨. 시윤이와 서윤이의 콜라보로 늦었음. 내 꼴이 너무 추레하네”
나갈 때마다 아내의 뚜껑이 열리게 만드는 시윤이와 바쁘고 정신없을 때마다 싸지르는 서윤이의 합작으로, 아내는 이른 시간부터 많은 체력을 소모했다. 꾸미고 단장할 시간은커녕 옷 갈아입기도 바빴을 거다.
가서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괜찮았지만 오늘따라 서윤이가 사정없이 울어댔다고 했다. 아기띠를 해도 울면 답이 없다. 안아 줘도 우는 서윤이 덕분에 아내는 제대로 밥도 못 먹다가 마지막에 거의 들이키듯 식사를 마쳤다고 했다. 한 숟가락을 먹어도 한 땀 한 땀 갖춰서 먹는 즐거움을 누리는 아내인데, 애 앞에서는 장사 없다. 서윤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고 했다. 졸려서 그렇게 울었나 보다.
아내가 저녁으로 월남쌈을 준비했다. 소윤이를 위한 저녁이었다. 월남쌈을 너무 좋아하는 소윤이는, 요즘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기만 하면 월남쌈을 얘기했다. 소윤이의 강력한 바람과는 다르게 월남쌈은 쉽게 먹기 어려운 음식이다. 밖에서든 집에서든. 밖에서 먹기에는 정신이 없고 집에서 먹기에는 준비하는 게 손이 너무 많이 가고. 어제도 아내가 뭘 먹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역시나 월남쌈 이야기를 했다. 얘기만 하면 월남쌈을 말하는 소윤이에게 아내도 살짝 짜증이 났고, 어제는 좀 매정하게 ‘이제 월남쌈 얘기는 그만해’라고 얘기했나 보다. 소윤이도 무척 섭섭해했고. 아내는 하루 만에 월남쌈을 준비했다. 사랑하는 첫째를 위해.
집에 왔더니 정말 분주하게 고기를 볶고 있었다. 다른 야채는 이미 어느 정도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여보. 배고파?”
“나? 그냥 조금? 왜?”
“아, 막상 하고 보니까 양이 너무 적은 거 같아서”
‘뭐 적으면 그냥 적은 대로 먹지 뭐’ 라고 생각했다. 얼른 밥을 달라고 호통에 가까운 소리로 칭얼거리는 서윤이를 달래며 저녁을 기다렸다. 드디어 월남쌈이 모두 차려졌고 모두 식탁에 둘러앉았다.
흠칫 놀랐다. 양이 ‘정말’ 적었다. 초고급 베트남 식당에서 엄청 비싼 코스 요리를 시키면 나올 법한 양이었다.
“여보. 이게 다야?”
“어, 너무 적지. 라면이라도 끓일까?”
“됐어. 그냥 먹으면 되지 뭐”
소윤이는 정말 잘 먹었다. 나랑 아내가 함부로 가세하기 어려울 정도로.
“여보. 안 되겠다. 라면 끓여야겠다”
결국 라면 두 개를 끓였다. 덕분에 엄청 오랜만에 라면을 먹었다.
“아빠아. 라면이 몸에 좋은 건 아니지만 조금 먹는 건 괜찮져어?”
이론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소윤이와 시윤이는 뭐가 안 좋은 음식인지 잘 알고 있다. 왜 어른들은 되고, 자기들은 안 되는지 논리적인 이해는 안 되더라도 대충 ‘어린아이들은 아직 더 몸이 소중해서’라는 정도로는 알고 있다.
그래, 시윤아. 그런데 오늘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어. 라면은 물론 맛있었지만 월남쌈의 양이 턱없이 부족했단다. 그래서 굳이 웰빙 월남쌈을 앞에 두고 정크 라면을 먹은 거란다.
아내는 자꾸 허탈한 듯 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꼭 계량의 실패만은 아니었다.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이것도 더 하고 저것도 더 하려고 했는데, 어느새 저녁 시간이 되어버린 거다.
“소윤아. 이제 월남쌈은 당분간 못하겠다”
“왜여?”
“너무 바빠. 아니면 아예 아빠랑 같이 있을 때 여유 있게 많이 하거나”
그래도 소윤이가 맛있게 먹었으니 됐다. 시윤이는 라이스페이퍼가 너무 쫄깃하다면서 뭔가 ‘맛없게’ 먹었다. 시윤이는 밥이랑 밑반찬 조금을 곁들여 배를 더 채웠다. 요즘 한창 고기에 맛을 들인 서윤이는 밥만 주면 안 먹고 고기를 얹어 주거나 고기만 주면 먹었다. 그 와중에 닭가슴살을 먹다가 오리 고기 맛을 한 번 보더니 닭가슴살은 거부하고 오리고기만 찾았다. 서윤이도 고기파인가 보다.
나는 저녁에 목장 모임이 있었는데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했다. 아내도 원래 성경 공부가 있었지만 뭐 사야 할 게 있어서, 애들 재우고 나면 잠깐 나갔다 온다고 했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바로 나갔다.
목장 모임을 시작한 지 한 30분쯤 지났을 때 방에서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요즘은 한 번 잠들면 깨는 일이 정말 드문데, 오랜만에 깨서 울었다. 그냥 두면 다시 자지 않을까 싶어서 기다려 봤는데 오히려 더 커지고 가까워졌다. 웬만하면 그러는 일이 거의 없는데,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혹시라도 진정이 되지 않으면 목장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니까 다급한 마음에 아내에게 연락했다.
“여보. 어디야?”
그러고 나서 바로 삭제했다. 놀러 나간 건 아니지만 어쨌든 맡기고 나간 아내에게 빨리 돌아오라고 얘기하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아내는 삭제하기 전에 카톡을 읽었는지 답장을 하긴 했다. 다행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는 못한 듯했다.
‘어떻게 되겠지 뭐’
잠시 화면에서 이탈해 방 문을 열었더니 서윤이가 아주 서럽게 울며 밖으로 나왔다. 당장은 안아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집 곳곳을 돌며 엄마가 없다는 걸 확인시켜줬다. 참 신기한 게 엄마가 없는 건 괜찮은데, 엄마가 있는데 안아주지 않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 서윤이는 엄마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 내 어깨에 고개를 떨구고 손가락을 빨았다.
다시 소파에 앉아 목장 모임에 참여했다. 서윤이를 안고. 서윤이는 중간에 잠들긴 했지만 혹시라도 눕혔다 깰까 봐 계속 안고 있었다. 앉아서 안고 있는 거라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색색거리며 따뜻한 숨을 내뱉는 걸 느끼니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하아 이걸 또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이 온전히 나에게 폭 기대서 세상모르고 자는 걸 느끼는 기분이란.
목장 모임 끝날 때까지 안고 있었다. 목장 모임이 끝나고 조심스럽게 방에 들어가 눕히고 나왔는데 아내도 딱 돌아왔다.
“대박. 타이밍 예술인데”
“왜?”
“서윤이 방금 눕히고 나왔거든”
“아 진짜? 그럼 목장 모임 할 때도 계속 안고 있었어?”
“어. 그래도 괜찮았어”
묘한 뿌듯함이 있다. 아내 없이도 혼자 서윤이를 잘 돌봤다는 뿌듯함. 거기에 서윤이가 아빠 품에서도 편안히 잠들었다는 뿌듯함까지. 한 시간 넘게 서윤이를 안고 있었는데 방에 눕힌 서윤이가 또 보고 싶었다.
와, 서윤아. 아빠 미쳤나 봐.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