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 너도 힘들지

18.12.03(월)

by 어깨아빠

고요한 방에 알람이 울리면 화들짝 놀라서 최대한 빠르게 끈다. 딱 한 번 울리고 껐는데도 시윤이가 그 소리를 듣고 뒤척였다. 아내도 깬 게 느껴졌다. 바로 움직이면 시윤이한테 걸리니까 시윤이가 다시 잠들 때까지 잠시 자는 척을 하다가 시윤이의 움직임이 없어지고 나서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아내가 카톡을 보냈다. 자기도 일어났는데 시윤이가 뒤척거려서 일어나지 못했다며 월요일부터 혼자 보내니 마음이 안 좋다고. 점점 익숙해지고 있어서 괜찮다. 카톡 하고 나서 금방 전화도 왔다.


"아빠"
"어. 소윤아"
"어디에여?"
"아빠. 지하철이야. 출근하는 중이지"
"아빠. 나 핫초코 못 먹었는데여"
"아. 핫초코? 이따 저녁에 아빠 퇴근하면 그때 먹으면 되지"
"아니야. 저녁은 너무 길어"
"아. 그러면 엄마랑 얘기해 보고 시간 날 때 마셔"

어제 내 말을 듣고 고분고분 새싹꿈나무에 가겠다는 소윤이가 너무 예쁘고 기특해서 핫초코를 사주겠다고 약속했었다. 원래 어제 사줬어야 하는데 어쩌다 보니 흐지부지 됐고 소윤이는 그걸 말하는 거였다. 홈스쿨 모임에 가야 해서 아침에 바쁠까 봐 섣불리 아침에 먹으라고 안 하긴 했는데 괜히 또 아내를 힘들게 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됐다.

오늘은 처음으로 원흥역으로 가는 버스도 타고 대화역에서 200번 타이밍도 잘 맞아서 평소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아내는 시안이네서 홈스쿨 모임이 있었다. 내내 잘 있다가 다 마치고 나올 때쯤 소윤이는 집에 가기 싫다고 막 울고 시윤이는 졸려서 막 우는 통에 좀 힘들었다고 했다. 아내가 차에 타서 나한테 전화를 했는데 시윤이가 가장 먼저 나를 불렀다.

"압빠아아"
"어. 시윤아"

그러고 나서 아주 잠깐 소윤이랑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대박"
"왜?"
"시윤이 잠들었네?"
"아. 진짜? 그 새 잠들었다고?"
"어. 엄청 졸리긴 했나 보네"
"그러게"

채 1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잠들었다. 아내는 집으로 가지 않고 스타벅스로 갔다. 다행히 오늘은 초코 스콘과 핫초코를 사 줘서 소윤이 기분이 괜찮았다. 아내는 나의 초특급 야근을 방지하기 위해 중간에 시윤이도 깨웠다. 1시간이 지났는데도 전혀 깰 기미가 안 보이길래 깨워서 마들렌을 먹이는 것으로 입막음을 했다.

오후에 일이 밀려서 평소보다 30분 정도 늦게 퇴근을 했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데다 안개도 잔뜩 껴서 안 그래도 늦은 퇴근 시간이 더욱 정체되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삼송역에 내려서 버스까지 잘못 탔다. 삼송역 5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서 15분 정도 걸려서 맞은편 삼송역 4번 출구에 도착했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짓인지. 하아. 거의 2시간을 퇴근에 허비하니 진이 다 빠져나갔다. 출근할 때 그렇게 아귀가 잘 맞더니 첫 끗발이 개 끗발이구만.


집에 들어갈 때 가급적이면 티를 안 내려고 하는데 오늘은 몸이 반응하지 않았다. 달려드는 소윤이, 시윤이가 그렇게 버거울 수가 없었다. 애들은 저녁까지 다 먹고 잘 준비도 거의 다 한 상태였다. 아내는 자유를 찾아 떠나고 난 애들을 재우러 방에 들어갔다. 시윤이가 늦은 오후에 낮잠을 잤으니 야근을 각오하기는 했지만 몸이 너무너무 지쳐 있어서 그냥 자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소윤이는 책 읽고 바로 잠들었고 시윤이도 의외로 소윤이 책 읽을 때부터 눈을 부비적거리는 게 졸려 보였다.

'연기일지도 모른다. 속지 않겠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정신 차리고는 애 먹인 게 한두 번이 아니라 쉽게 마음을 놓지 않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시윤이는 그대로 잠들었다. 사실 아내도 굉장히 지쳐 보였는데 내가 너무 진이 빠져서 들어온 터라 내색도 못하고 오히려 나를 격려(?)하는 카톡을 보내고 그랬다.

아내는 살 게 있어서 롯데몰에 갔다가 장까지 보느라 자유시간의 대부분을 거기서 보냈다. 그냥 오기 아쉬우니 집 앞 이디야에 잠깐 앉았다 들어왔다.

"이디야에서는 뭐 했어?"
"졸았어"

그래. 여보도 힘들지. 우리 다 힘들지.

나만 힘들다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
너도 힘들지

어찌 보면 애 키우는 건 늘 힘들다. 각자 어떤 태도를 취하고 또 상대의 어떤 태도와 마주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뿐이다. 가능하면 최악의 조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거고. 가장 아름다운 조합은 [너도 힘들지 X 너도 힘들지]일 텐데 오늘 아내와 내가 그랬다.


집에 돌아온 아내랑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또 덜컥하고 문이 열렸다. 강시윤이었다. 시윤이는 희한하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 안에서 운다. 문을 활짝 여는 것도 아니고 살짝, 한 뼘 정도 열어 놓고 그렇게 운다.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자기 누나가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있는 아기 중에 하나를 꼭 끌어안고 나왔다. 나한테는 절대 안 오고 아내한테 폭 안겨서 손가락을 쪽쪽 빠는 게 꼭 갓난아기 같았다. 아내가 화장실에 다녀오는 동안에도 나한테는 안 오고 차라리 바닥에 누워 있겠다는 듯 인형 옆에 누워서 아내를 기다렸다. 우는 게 귀여워서 일부러 서너 차례 울린 다음 아내가 데리고 들어갔다.


"시윤아. 잘 자. 여보도"
"응. 여보도 너무 늦게 자지 말고"

내심 아내에게 고맙다. 나의 무기력함을 기꺼이 받아 주고 토닥여준 게 참 고맙다. 나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 않았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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