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04(화)
새벽에 소윤이가 아내를 깨웠다.
"엄마. 엄마"
"어. 소윤아"
"바지에 쉬 했어여"
"아 그래? 알았어. 이리 나와 봐"
나도 잠이 깼다. 그러고 보니 어제 자기 전에 소윤이 소변보는 걸 깜빡한 것 같았다.
여보, 미안.
시윤이도 깼다. 그 와중에 아내한테 이것저것 얘기하고 물어보는 소윤이의 말투와 목소리가 참 듣기 좋았다. 공손함과 애교가 적절히 섞여 있었달까. 시간을 보니 5시 무렵이었다. 아 직 2시간을 더 잘 수 있다는 안도감과 혹시 얘네가 쉽게 잠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동시에 안고 다시 잠을 청했다.
잠깐 눈 감았던 것 같은데 훌쩍 2시간이 지나고 알람이 울렸다. 다들 곤히 자고 있었다. 어제랑 다르게 오늘은 다 조금씩 안 맞았다. 삼송역에서도 막 지하철이 떠났고 대화역에서는 버스 정류장에 갔는데 휴대폰이 없길래 대화역 고객지원실에 가 봤더니 거기 보관 중이었다. 앉아 있을 때 주머니에서 떨어졌나 보다. 200번 버스도 방금 막 떠났는지 20분 후 도착이었다.
'그래. 출근길에 이러니 퇴근길은 편하겠지'
어제 갑작스럽게 우리 집으로 목장 모임 장소가 바뀌었다고 했다. 집이 그리 깨끗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 아내도 분주한 아침을 보냈을 거다. 아내랑 애들은 꽤 늦게까지 자고 일어났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목장모임을 잘 마치고 나서는 계속 집에 있었다. 날이 갑자기 추워지기도 했고 공기질도 별로였다.
아침부터 왼쪽 뒤통수에 두통이 살살 오더니 그게 왼쪽 뒷목으로 옮겨 가고 나중에는 왼쪽 쇄골 쪽으로 지금은 오른쪽 쇄골로 이동했다. 이런 류의 통증은 거의 없는 편인데 스스로도 굉장히 생소했다. 열심히 스트레칭도 하고 그랬지만 쉽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퇴근해서 버스 정류장으로 갔는데 눈 앞에서 200번이 떠나고 있었다. 마침 신호에 걸려 멈춰 있길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부지런히 뛰어봤지만 내가 버스에 닿기도 전에 신호가 바뀌어서 버스는 떠나갔다. 한 15분을 기다려야 다음 버스가 온다길래 다른 경로를 찾아봤다. 금촌으로 버스를 타고 가서 거기서 우리 집까지 버스로 가는 방법이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유사시를 대비해 다른 길로 가보기로 하고 평소랑 다른 버스를 탔다.
평소에는 [버스-지하철-버스]고 [버스-버스 ]니까 갈아타는 횟수는 오히려 한 번 줄었다. 피로도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컸다. 역시 버스를 오래 타는 건 생각보다 고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어제와 비슷하게 몸이 녹초가 되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다짐했다.
'내일은 차 타고 갈 거야'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집에 들어섰다. 아내도 소윤이도 어제보다 좋지 않았다. 소윤이는 무지하게 졸린 탓에 말도 안 되는 떼와 고집을 부리다가 아내한테 한소리 듣는 중이었다. 아내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게 보였다. 시윤이만 정상이었다. 이래서 막내 막내 하는 건가.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서 피어 오른 한송이의 화려한 꽃처럼 시윤이는 외로이 긍정 분위기를 퍼뜨리고 있었다. 엄마한테 혼난 소윤이는 혼자 방으로 들어갔다. 눈치 없는 시윤이도 따라 들어갔다.
"나가아아아. 강시윤 나가아아아"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서 알짱거리는 시윤이 덕분에 소윤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앙. 나가아아아아아아"
어쩔 수 없이 내가 들어갔다.
"소윤아. 시윤이 나갔으면 좋겠어?"
"응"
"왜?"
"나 혼자 있고 싶어"
"알았어. 아빠가 데리고 나갈 게. 문은 잠그지 말고 기분 풀리면 나와?"
네 살 짜리도 정말 혼자 있고 싶은 기분을 느끼나. 소윤이는 금방 다시 나왔다. 졸려도 너무 졸려서 눈이 꿈뻑꿈뻑 느리게 움직였다. 아내는 어제보다 더 힘들어 보였는데 슬라임처럼 흐물딱거리는 나 때문에 티도 못 내고 혼자 열심을 냈다. 퇴근해서 내가 한 육아활동이라고는 마음껏 밟고 오르도록 아주 잠깐 시윤이에게 몸을 내어 준 것과 시윤이를 씻긴 것 말고는 없었다.
여보, 미안.
"여보. 여보는 운동하러 가. 알았지?"
"아니야. 괜찮아"
"튕기지 말고 가. 알았지?"
아내는 홀로 애들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삼송의 잔다르크인가. 뭐지 이 듬직함은.
배려 넘치는 아내 덕분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운동을 끝내고는 카페에 왔다. 두통은 좀 없어진 것 같은데 오른쪽 쇄골이 여전히 뻐근하다. 어제, 오늘 출퇴근에 너무 진을 뺀 게 원인 같다. 그래도 아내 덕분에 이렇게나마 해소할 수 있으니 감사하다.
여보, 진심이야.
내일은 다시 슈퍼맨이 되어 돌아올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