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4(월)
연차를 냈다. 미리 일기예보까지 보면서 맑은 날을 골라서.
소윤이와 시윤이가 얼마 전부터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소윤이는 4살, 시윤이는 2살일 때 한 번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때는 둘 다 너무 어려서 제대로 타지 못하고 그냥 갔다는 것에 의의를 뒀다. 그 뒤로는 간 적이 없다. 언제 한 번 가야지 하면서 벼르다가 오늘 가기로 한 거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대신 무척 덥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해서 더 무서운 도전을 앞두고 다소 긴장했다. 어제 아니 그전부터 아내와 서로 다짐했다.
“여보. 우리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돼. 그날 엄청 힘들 테니 우리의 마음을 잘 지키도록”
날은 덥고 몸은 힘들고, 아주 작은 불씨에도 폭발하기 딱 좋은 환경일 테니 미리미리 단속을 잘 해두자는 뜻이었다. 한편으로는 기대도 됐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얼마나 신나게 놀며 좋아할지 상상하면 내가 다 기분이 좋았다.
든든한 지원군 한 명이 우리와 동행하기로 했다. (내) 엄마가, 놀이공원에 간다는 이야기를 듣더니 함께 가시겠다고 했다. 어젯밤에 결정된 일이었고 놀이공원에 가서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비밀로 했다. 하지만 곧 탄로 났다. 아내가 아침에 이것저것 준비하다가
“어머님도 드시려면…”
이라고 말실수를 했다. 눈치가 100단이 된 소윤이는 아내의 말을 놓치지 않고 바로 되물었다.
“엄마. 어머님이 무슨 말이에여?”
아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내가 돕겠다고
“아, 엄마가 주셨다는 걸 잘못 말한 거 아니야?”
라고 받아쳤지만, 소윤이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실토했다. 소윤이 앞에서는 숨 쉬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아내는 어젯밤에 오늘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미리 만들어 뒀다. 과일도 준비하고, 여러 간식과 물도 준비했다. 흡사 전쟁을 앞둔 군인처럼 차근차근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그렇게 챙기고도 혹시 뭐 빠진 게 없나 불안해했다. 놀이공원에 가는데 빠질 게 있어 봐야 뭐가 있겠나 싶지만, 처음이나 마찬가지라 준비에 준비를 거듭해도 불안했나 보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너무너무 신나고 기대가 된다며 아침 일찍부터 일어났다. 그 마음 충분히 이해가 된다. 놀이공원에 가는 날 어찌 늦잠을 잘 수 있으랴. 원래 우리의 목표는 8시 30분 출발에 10시 도착이었다. 빨리 가서 퇴근 시간에 걸리기 전까지 실컷 놀고 올 계획이었다.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출발했다.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서두르지는 않았다.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사인과도 같은 커피 한 잔을 사서 출발했다.
목적지는 서울랜드였다. 우리 애들 또래가 놀기에 딱 좋다는 후기가 많았다. 요금도 저렴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는 차 안에서도 기대와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나도 아이들의 장단에 맞추기 위해 장난도 많이 치고 기대도 더 부풀게 했다. 오늘이 마지막은 아닐 테지만 자주 가지는 못할 테니 한 번 갈 때 행복하고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오늘을 잊지 못하게.
차가 많이 막히지는 않았지만 워낙 멀어서 예정대로 1시간 30분이 걸렸다. 꽤 긴 시간이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조금도 힘들어하지 않고 가는 내내 즐거웠다. 시원한 차에서 내리니 후끈한 공기가 코와 목으로 훅 넘어왔다.
“와. 여보 오늘 덥긴 덥다”
“그러게. 엄청 덥네”
(내) 엄마는 놀이공원 안에서 만났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할머니를 무척 반가워했지만, 사실 아내와 나도 아이들 못지않게 반갑고 든든했다.
“엄마아아아아”
하고 가서 안을 뻔했다.
문 연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아직 운행하지 않는 놀이기구가 많았다.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구경도 하고 파악도 할 겸 한 바퀴 쭉 돌면서 운행하는 것 중에 탈 수 있는 건 타고 그랬다. 30분도 안 돼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입고 간 티셔츠가 땀으로 젖기 시작했다. 서윤이는 유모차에 잘 앉아 있었다.
소윤이는 혼자 탈 수 있는 게 더 많았고 시윤이는 대부분 보호자가 같이 타야 했다. 그거랑 상관없이 대부분같이 탔다. 내가 타든 아내가 타든 엄마가 타든. 엄마가 지원군으로 온 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 엄마가 없었더라면 아내나 나 중에 한 명만 같이 탈 수 있었을 테고, 소윤이와 시윤이 중 누군가 한 명은 혼자 앉아야 했을 거다. 어른이 한 명 늘어난 덕분에 짝수로 탈 수 있었다. 그리고 심지어 나랑 아내 둘이 탄 것도 있다. 청룡열차(는 아니지만 고유명사나 마찬가지니까)도 타고.
중간에 앉아서 싸 가지고 간 샌드위치도 먹고 과일도 먹고 음료수도 먹고 간식도 먹었다. 땀은 여전히 삐질삐질 아니 뻘뻘 흘렀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고 땀을 흘렸다. 밖에서 놀기 만만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밥 먹고 나서도 부지런히 놀았다.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엄마는 오후에 일이 있어서 중간에 가셨다. 엄마가 가고 나서 아내와 다시 한번 결의를 다졌다.
“여보. 아직 괜찮지? 이제 진짜 시작이야”
이미 그때도 엄청 힘들었다. 이게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날이 무척 덥고 계속 걸어야 하고. 게다가 놀이기구도 계속 타야 하고. 왜 이렇게 빙빙 도는 놀이기구가 많은지. 난 무서운 건 타도 어지러운 건 못 탄다. 멀미가 나서. 덕분에 아내가 많이 고생했다. 썩 타고 싶지 않지만 타야 했고 기왕 탔으면 아이들 기분에 맞춰 주기 위해 소리도 지르고 그래야 했다.
그래도 서윤이가 정말 오랫동안 유모차에 앉아 있었다. 서윤이가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의 여정은 백 배 정도 힘들어졌을 거다. 한계에 도달했을 때는 잠깐 내려주기도 하고 간식도 주고 그러면서 기분을 잘 달래줬다.
원래 우리의 계획이었던 퇴근 시간 전에 돌아오는 건 진작에 포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깜깜해질 때까지 놀아도 되니까 마음껏 타”
나의 선언에 아내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금방 흘러서 계획한 시간에 돌아온다고 하면 아이들이 아쉬워할 게 분명했다. 나중에는 지리를 거의 외울 정도로 여러 번 돌았다. 탔던 것도 또 타고, 재밌는 건 여러 번 타고. 사람이 없어서 별로 기다리지 않으니 그건 좋았다.
소윤이가 정말 잘 탔다. 조금도 지치거나 무서워하는 것 없이 무한 체력인 듯, 쉬지 않고 탔다. 그에 비해 시윤이는 아직 어린 티가 났다. 무서워서 안 타겠다고 하는 것도 많았다. 그래도 누나가 있어서 대부분 다 타긴 했다. 막판에 급류타기(나무 보트 타고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를 탔는데 나랑 소윤이, 시윤이 이렇게 셋이 탔다. 시윤이는 자기가 맨 앞에 앉겠다고 했다. 시윤이는 그 놀이기구가 어떤 건지 전혀 몰랐다. 조금 걱정이 되긴 했다. 시윤이가 무섭다고 할 건 분명한데 그게 너무 심해서 타고 나서 계속 울거나 많이 놀라면 어떻게 하나 싶었다. 그래도 또 혹시 의외로 좋아할지도 모르고.
시윤이는 타고 나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아직 애기다.
“시윤아. 재미없었어?”
“하나도 재미는 없고 무섭기만 했어여”
그에 비해 소윤이는 너무 재밌다면서 아내랑 한 번 더 탔다.
그렇게 돌고 돌고 또 돌고, 타고 타고 또 타고. 일곱 시가 다 되도록 놀았다. 소윤이는 가장 재미있었던 놀이기구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탔는데 그게 하늘에 매달려서 빙빙 도는 거였다. 소윤이는 그걸 타고 난 뒤
“엄마. 속이 울렁거려여”
라며 멀미를 호소했다. 아내가 화장실에 데리고 가 보기도 했지만 결국 토하지는 못했다. 역시 사람은 욕심이 지나치면 안 된다. 소윤이 기분 좋으라고 마지막까지 꽉 채워서 타게 했는데 그렇게 됐다.
정말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하루 종일, 정말 하루 종일 즐겁게 놀았고 아내와 미리 다짐했던 것처럼 감정도 잘 지켰다. 사실 그걸 지켜야 할 만한 순간도 없었다. 애들도 노느라 기분이 좋았다.
어차피 늦었으니 저녁 먹고 아예 퇴근 시간을 지나서 출발하기로 했다. 하루 종일 땀으로 범벅이 되고 무더위 속에 고생을 해서 그런지 시원한 냉면이 먹고 싶었다. 전혀 모르는 동네라 어디가 맛있는지 몰랐다. 근처에 냉면 파는 가게 중에 평이 괜찮은 곳을 찾아서 갔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였는데 시윤이는 그 짧은 거리에도 버티지 못하고 잠들려고 했다. 소윤이는 속이 안 좋아서 울상이었다. 차에 타기 전에 비닐봉지를 하나 주고 토해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식당에 도착했는데 소윤이가 갑자기 울면서 자기는 안 내리겠다고 했다. 속이 많이 울렁거려서 그랬는지 안 나오겠다며 말이 안 되는 고집을 부렸다. 이때는 나도 아내도 쥐어 짜내고 있었다. 위기였다. 나 대신 아내가 소윤이를 잘 다독여서 내렸다. 소윤이는 식당에 가자마자 화장실에 갔고, 토하고 나왔다. 다행이었다. 토하고 나와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대충 아무 데나 골라서 간 식당이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냉면도 갈비탕도 각종 밑반찬도. 거기다 친절하기까지 하셨다. 서윤이 먹이라고 사골 국물을 그냥 주셨는데 웬만한 곳에서 파는 것보다 훨씬 더 맛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 피곤한 와중에도 아주 잘 먹었다. 서윤이도 잘 먹었다. 아내도 나도 너무너무 피곤한 상태였는데 마지막 한 끼 덕분에 집에 갈 체력을 회복했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집에 오는 길에 잠들었고 소윤이는 혼자 살아남았다. 하루 종일 땀으로 범벅이 되기는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윤이랑 시윤이는 너무 깊이 잠들어서 깨워도 깰 거 같지 않았다. 찝찝하긴 해도 어쩔 수 없이 그냥 재워야 했다. 소윤이라도 씻겨야 했는데 손가락 하나 까닥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체력이 모두 소진된 상태였다. 그냥 간단히 손과 발만 씻겨서 재우려고 했다.
“아빠. 저는 아빠만 괜찮으면 샤워해도 괜찮아여”
“그래? 그럼 그냥 샤워하고 잘까? 그게 개운하겠지?”
그렇게 땀을 흘렸는데 안 씻고 자면 얼마나 찝찝할까 싶어서 비누 칠까지 해서 씻겼다. 대신 머리는 안 감겼다. 머리만 안 감아도 50% 이상은 노동의 강도가 줄어든다. 아내는 마지막까지 소윤이의 좋은 기분을 잘 지켜주기 위해서 소윤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아내가 들어가고 나서 난 편의점에 다녀왔다. 초코 우유를 하나 샀다. 그야말로 당이 당기는 느낌이었다. 초코우유를 들이켜고 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재우러 들어갔던 아내도 다시 나왔고 오늘 찍었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예상했지만 예상한 것보다 훨씬 힘들고 고됐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아주 강렬하고 좋은 기억을 만들어 준 하루였다. 다만 육아 강도로 따지자면 아내와 나의 육아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힘들지 않았나 싶다.
“여보. 내일 또 휴가 내고 싶네”
“그러게. 그러면 좋겠다”
“내일 진짜 피곤하겠다”
아빠는 개미니까, 내일 또 나가서 열심히 일해야 다음에도 놀이공원 갈 수 있으니까, 아무튼 출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