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입었던 옷을 첫째가 입었다

21.06.13(주일)

by 어깨아빠

어제 먹고 남은 삼계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약하나 마땅한 이름이 없으니 이렇게 부르기로 한다) 국물은 오늘 아침의 소중한 재산이 되었다. 살짝 데워서 밥을 말아줬다. 셋 모두에게. 앞으로 초간단 삼계탕을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까지 이렇게 귀한 양식이 되다니. 아침 준비에 관한 걱정이 없어서 그랬는지 서윤이 점심으로 먹일 걸 전혀 준비하지 않고 집에서 나왔다.


주일 아침에는 언제나 정신없이 바쁘다. 내 나름대로는 좀 일찍 준비하고 먼저 애들을 데리고 나가서 아내를 기다리려고 했다. 마음만 그렇지 준비하는 과정에서 아내의 도움이 없으면 안 되니까 자꾸 아내를 불렀다.


“여보. 애들 옷은 뭐 입히지?”

“이거 입히면 되나?”

“서윤이는?”


아내가 설명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먹지 못하니 결국 아내가 와서 꺼내 주는 것도 많다. 그러다 보니 나랑 애들은 준비를 모두 마쳤는데 아내는 여전히 어제 잘 때 입었던 옷 그대로였다.


“소윤아, 시윤아. 나가자. 우리 먼저 나가 있자”

“나도 같이 나갈 거야”


아내는 순식간에 옷만 갈아입고 나왔다. 거울 보며 단장하고 꾸밀 겨를도 없이. 뭔가 안쓰러웠다.


서윤이는 예배 중간에 잠들었다. 잘 놀다가 졸려서 징징거리길래 바로 로비로 데리고 나갔는데 많이 졸렸는지 너무 시끄럽게 울어서 애를 좀 먹었다. 크게 두 번 정도 울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하게 손가락을 빨며 잠들었다.


예배가 끝난 뒤 다시 소윤이와 시윤이를 만났다. 시윤이는 오늘도 예배 시간에 뭔가를 해서 젤리를 포상으로 받았나 보다. 그걸 설명하려고 하는데 너무 시끄럽기도 하고 시윤이도 시원하게 설명을 못하고 버벅거렸다.


“시윤아. 이따 집에 가서 꼭 얘기해 줘”


모르긴 몰라도 시윤이가 요즘 많이 느끼는 감정이 ‘답답함’일 거다. 생각의 넓이는 이제 누나 못지않거나 어떨 때는 누나도 못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은데, 표현력이 그걸 받쳐 주지 못한다. 나중에 설명해도 상관없는 일도 있지만 그 순간에 생생하게 전달해야 맛이 사는 일도 많다. 부족한 표현력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게 얼마나 많을까. 옆에서 누나는 따박따박 자기 생각을 속 시원히 말하는 것처럼 보이니 더 그럴 거고. 결국 집에 가서도 시윤이는 누나의 힘을 빌렸다.


“아, 아빠. 시윤이가 뭘 해서 받았냐면 예배드리고 방에 들어가잖아여. 그때 앞에 나가서 말씀 암송 찬양 있잖아여. 그걸 해서 받은 거에여”

“누나. 보고 있었쪄?”


이 장면이 왜 이렇게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자기랑 떨어져 있었던 누나가 그걸 어떻게 봤는지 놀라기도 하고 은근히 좋기도 한 시윤이의 모습도. 알게 모르게 동생이 뭘 하나 보면서 신경을 쓰는 소윤이의 모습도. 어찌나 흐뭇하던지.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아내와 나의, 매주 반복되는 고민이 또 시작됐다.


“점심은 또 뭘 먹지”


둘 중에 한 명이라도 먹고 싶은 게 분명하면 고민이 좀 덜 할 거다. 그렇지 않기도 하고 애들이 함께 먹을 것도 생각해야 하니 은근히 매주 고민이다. 게다가 오늘은 서윤이가 먹을 것도 따로 준비하지 못했다.


“생선구이?”


애들이랑 같이 먹기에 꽤 괜찮은 음식이다. 서윤이 주기에도 좋고. 다만 꽤 바쁘다. 서윤이랑 먹으면 안 그런 음식이 없긴 하지만 생선류는 특히 더 그렇다. 그래도 집에서 먹는 것에 비하면 훨씬 낫다. 냄새도 안 나고.


소윤이가 오늘 아내 옷을 입었다. 아내랑 내가 연애 초창기에 자주 입었던 티셔츠였다. 좀 크긴 했지만 그렇다고 엄청 어색할 정도로 크지는 않았다. 놀라웠다. 그 옷이 아직도 있다는 것과 소윤이가 그 옷을 입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아내가 그 작은 옷을 입었다는 게. 소윤이가 컸다 컸다 했어도 이렇게 진짜 많이 컸을 줄이야. 그 옷을 입은 아내랑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명분일 뿐, 실상은 데이트)하고 신림역 사거리에 있는 훌랄라 치킨에서 저녁 먹었던 풋풋한 시절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그 옷을 강소윤이 입다니. 앞으로 이런 할아버지 같은 감정을 느끼는 날이 더 많아지겠지?


오후에 소윤이, 시윤이와 나갔다 오는 동안 아내는 서윤이 재우면서 좀 잤다. 진작부터 졸리다고 했다. 자고 일어나서는 서윤이 때문에 꽤 힘들었다고 했다. 언니와 오빠가 없으면 아내에게 매달리는(?) 것도 심해지고 칭얼거리는 것도 심해진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다시 집에 돌아올 때, 확 달라지는 걸 보면 분명하다.


“아이구 우리 막내. 오늘 기분이 왜 이렇게 좋아?”

“여보. 이렇게 된 게 얼마 안 됐어. 나 힘들었다”

“아, 그래? 소윤이랑 시윤이 없어서 그런가?”

“어. 확실해. 완전히 달라”


‘차라리 셋이 덜 힘들다’라는 말은 다 이런 순간에서 비롯된 거다. 하나만 봐야 하는 수월함과 함께 하나만 봐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셋이나 봐야 하는 고단함과 셋이나 있는 든든함이 있고. 아무튼 서윤이는 혼자 남았을 때와 같이 있을 때가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애들은 어제도 샤워를 했지만 오늘도 샤워를 했다. 오늘도 어제 못지않게 더웠고 애들도 밖에서 노느라 땀을 뻘뻘 흘렸다. 매일 샤워를 해야 하는 계절이 왔고 이건 꽤 고단한 일이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기가 씻길 테니 서윤이랑 좀 놀고 있으라며 날 배려해 줬다. 샤워에서 열외 시킨 것도 배려, 서윤이랑 놀게 해 준 것도 배려였다.


서윤이가 자기도 씻으러 가겠다고 하거나 엄마가 없어져서 슬프다면서 막 울까 봐 지레 겁을 먹고 모닝빵 한 조각을 꺼내 들었다.


“서윤아. 아빠랑 이거 먹을까?”


서윤이는 내 배 위에 앉아서 떠나지 않고 한참 동안 잘 받아먹었다. 절반쯤 먹고 나서는 한 조각 먹고 가서 놀다가 다시 와서 또 한 조각 먹고 다시 가고를 반복했다. 빵 한 조각 덕분에 아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


애들을 모두 재우고 찾아온 주말의 마지막 밤. 사실은 주말의 마지막 밤이 아니었다. 내일 연차를 냈다. 하지만 아내와 나는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여보. 내일 우리 괜찮겠지?”

“각오해야지”

“여보도 신나?”

“뭐 힘들긴 하겠지만 그래도 애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나도 재밌을 거 같긴 한데”

“그래?”


아내는 나만큼은 아닌 듯했다. 아마도 서윤이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든든한 지원군 한 명이 출정을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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