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하게 머리만 자르러 갔다가

21.06.12(토)

by 어깨아빠

아침 일찍(주말 치고는 일찍) 미용실에 예약을 해 놨다. 나랑 시윤이만 머리를 자르기로 했다. 아내에게도 머리도 자르고 펌도 하라고 했는데 아내는 뭔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내키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냥 서윤이 때문에 부담스러웠는지 아무튼 다음에 하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자기는 머리를 안 잘라도 따라가겠다고 했다. 머리 자르는 건 금방이고 예약도 했으니 그리 오래 걸릴 것 같지 않아서 서윤이도 데리고 갈까 했다. 마침 유모차에서 잠들기라도 하면 더할 나위 없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그러다 행복 회로 가동을 잠시 멈추고 불행 회로를 돌려 봤다.


가는 길에 차에서 잠들어서 푹 자다가 도착했더니 깼는데 잠이 부족했는지 기분이 안 좋아서 계속 울고 안아줘도 울고 내 차례가 되어서도 울고 안고 앉았는데 더 울고 머리는 영구가 되고.


“여보. 아무래도 서윤이는 못 데리고 가겠다”

“그래”


결국에는 다 같이 가게 됐다. 아내가 우연히 알게 된 짬뽕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그게 미용실 근처였다. 서윤이는 가는 길에 잠들었고 도착해서도 깨지 않았다. 아내는 서윤이와 함께 차에 남아서 기다렸고 나랑 소윤이, 시윤이만 미용실에 들어갔다. 언제나 머리를 자르고 싶어 하지만 아무래도 시윤이보다는 머리 자를 기회가 적고, 가끔 있더라도 자기 고모부가 잘라 줄 때가 많은 소윤이는 동생과 아빠가 머리 자르는 걸 재밌게 지켜봤다.


머리 자르는 건 금방이었다. 점심을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일러서 근처의 공원에 가기로 했다. 날은 무척 더웠다. 더운 걸 모르고 간 건 아니지만 막상 그늘 하나 없는 운동장에 발을 딛고 서니 더위가 피부로 느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자전거와 킥보드를 꺼냈다. 소윤이는 오랜만에 두 발 자전거를 탔다(처음 타고 이번이 서너 번째 정도?). 마지막으로 탔을 때보다 오히려 균형도 잘 잡고 앞으로 나가는 것도 잘했다. 커다란 운동장을 두 바퀴나 돌았다. 이제 방향 전환이랑 출발, 멈춤만 능숙하게 하면 완전히 잘 탈 것 같았다. 소윤이가 두 바퀴를 도는 동안 나도 옆에서 같이 뛰었다. 마치 훈련하는 선수 옆의 코치처럼. 이 더운 날.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옷은 금세 땀이 스며들었다.


“하아. 여보 덥다”

“그러게. 엄청 뜨겁네”


시윤이가 자전거 탈 때는 시윤이랑 같이 돌아주고. 둘이 같이 돌 때도 같이 돌아주고. 서윤이가 유모차에서 내려 이것저것 만지며 걷겠다고 할 때도 옆에 바짝 붙어서 따라다니고. 너무 더웠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얼굴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내는 나보다 훨씬 바른 속도로 체력을 소모하고 있었다. 난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몰라도 더위 자체에 금방 지치는 편은 아닌데 아내는 땀이 없어서 그런지 더위로 느끼는 열을 온몸에 가두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훨씬 금방 지친다. 아, 물론 그렇다고 내가 안 지쳤다는 건 아니다. 난 소윤이랑 두 바퀴 돌았을 때 이미 사점(death point)을 넘어서 그 뒤로는 포기하고 묘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장인어른, 장모님 집도 근처라 아내가 점심을 같이 드시자며 연락을 했다. 장모님, 장인어른과 짬뽕집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는 장모님, 장인어른과 함께. 아내와 나는 서윤이와 함께. 오늘도 서윤이는 양호한 편이었다. 서윤이의 ‘양호함’을 위해서 역시나 바쁘고 부지런하게 밥을 떠서 먹여줬다. 조금만 지체해도 빽빽 소리를 지른다. 말도 못 하는 주제에.


그냥 가기 아쉬우니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계속 할머니 집에도 잠깐 들르자고 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집에 들어가는 순간 ‘잠깐’은 무효화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늘어짐’을 향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아내와 나에게 공통적으로 작용한 듯했다. 카페에 있다가 장모님이랑 애들이 잠깐 밖에 가서 바람을 쐰다며 나갔다. 장모님과 아이들은 아까 우리가 갔던 공원에 있는, 지붕이 있어서 그늘지고 바닥에는 인조잔디가 깔려 있어서 서윤이가 걷기에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카페에 있다가 거기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도 꽤 앉아 있었다. 간단하게 머리만 자르러 갔다가 꽤 오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출발할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기도 했고, 소윤이도 내심 기대했을 거다.


집에 올 때 시윤이와 서윤이가 잠들었는데 기왕 잠든 거 조금 더 재우고 싶었다. 지상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랑 소윤이만 잠깐 내렸다. 운동 기구도 하고 잠깐 앉아서 바람도 쐬고 그랬는데, 소윤이가 얘기했다.


“아빠”

“어?”

“꼭 아빠랑 데이트하는 거 같아서 좋아여”

“어, 그러네? 데이트 하는 거 같네?”

“이런 게 첫째라서 좋은 점이에여”

“왜?”

“동생들이 다 잘 때 엄마나 아빠랑 이렇게 놀 수 있는 거”


운동 기구에 올라서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좋아하는 소윤이를 보면서, 또 묘한 감정이 스쳤다. 요즘 소윤이를 볼 때는 ‘잘 키워야 할 텐데’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 경험의 기회가 너무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든다. 뭐 엄청난 게 없어도 그저 아빠, 엄마랑 잠깐 바람 쐬는 게 첫째의 특권이라고 여겨 주는 소윤이가 고맙기도 했다.


아내랑 소윤이가 먼저 집으로 올라가고 난 남아서 시윤이와 서윤이가 깨기를 기다렸다. 나도 차에 앉아서 같이 졸다가 시윤이가 깨는 소리에 깼다. 그때 서윤이도 깼고.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저녁은 또 뭐 먹이지?”

“그러게”

“닭이나 한 마리 사서 삶아줄까?”

“오, 괜찮네”


아내와 나는 점심을 너무 든든히 먹었는지 배가 많이 고프지 않았다(이것은 오늘 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암시하는 클리셰와도 같은 문장이랄까). 작은 닭 한 마리를 삼계탕용 재료 팩과 함께 삶아서 먹였다. 간단한 과정에 비해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 셋 모두에게 먹일 수 있고 무더운 날씨에 보양까지 하는 듯한 효율성 좋은 음식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서윤이도 너무너무 잘 먹었다. 별거 없는데 애들한테 엄청 좋은 걸 주는 거 같아서 뿌듯했다.


“소윤아, 시윤아. 원래 덥고 땀 많이 흘릴 때는 이런 것도 한 번씩 먹어야 돼”

“왜여?”

“땀 흘리면 지치고 그러니까 고기도 먹고 뜨끈한 국물도 먹고”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아내가 나에게 카톡을 보냈다.


“여보여보. 배가 고파오네. 갑자기”


말은 아내가 꺼냈지만 나도 마찬가지였다. 익숙한 전개였다. 아내와 나는 또 파전을 주문했고 내가 찾으러 다녀왔다. 그 사이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왔고(시윤이는 집에 올 때 푹 자서 안 자고 있었지만) 아내와 나의 수다 야식회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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