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5(화)
역시. 놀이공원의 후폭풍은 만만하지 않았다. 다년간의 사회생활로 얻은 자동 기상 생체 시스템 덕분에 알람 소리에 바로 일어나긴 했지만 묵직하게 내려앉는 피로감은 피할 길이 없었다. 원래 평소에도 혼잡한 시간을 피해 일찍 집에서 나가고 사무실 근처에 차를 대고 시간을 보내다 출근한다. 보통 성경도 읽고 라디오도 듣고 그러는데 오늘은 주차를 하자마자 의자를 뒤로 젖혀서 모자란 잠을 보충했다. 아니 모자란 잠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은 체력을 보충했다.
대표님에게는 죄송한 이야기지만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진정한 프로는 휴가와 복귀의 괴리감이 없다던데 역시 난 아마추어다.
안타깝게도 아내는 어제 놀이공원에 다녀왔나 싶을 정도로 큰 부침을 겪고 있었다. 아침부터 시윤이 때문에 한바탕 고생을 치렀는데 점심시간에도 2차로 진통을 겪었나 보다. 나만큼이나 아내도 어제의 후유증을 겪었을 텐데 거기에 시윤이까지 가세했으니 오죽할까 싶었다.
“정말 에너지도 없는데 탈탈 털린다”
아내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뭔가 의견을 보태도 이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데다가 결국에는 아내와 시윤이의 시간이었다. 지혜로운 아내가 또 나름대로 잘 타개해 나갈 거라고 믿었다. 어제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으면, 그렇게 좋은 추억을 하나 쌓았으면 오늘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 꼭 그렇지가 않다. 마치 재부팅을 한 것 같은 날도 많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모인 우리가 잘못하거나 뭔가 심했을 때도 아이들은 새 날은 새 기분으로 우리를 맞아준다. 아내에게 후자와 같은 날은 굉장히 드물고 전자와 같은 날이 수두룩하다는 게 문제지만.
아내랑 구글 포토로 애들 사진을 공유하는데, 오늘은 애들 사진이 없었다. 현관까지 나가 놀고 있는 서윤이를 찍은 사진이 유일했다. 이게 아내의 오늘 하루, 혹은 아내의 마음의 여유를 추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사진 한 장 남길 수 없을 만큼 바빴거나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거나.
저녁에는 갑작스럽게 백신을 맞게 됐다. 많은 국민의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는 잔여 백신 예약을 얼떨결에 성공했다. 사람의 심리라는 게 참으로 오묘한 것이, 알람이 몇 번 울려서 들어갔는데 이미 예약 마감이 된 걸 몇 번 보고 나니 투지가 불타올랐다. 결국 예약에 성공했다.
집에 가는 길에 병원에 들러서 백신 주사를 맞았다. 온 세계가 코로나 때문에, 백신 때문에 난리인 것치고는 굉장히 허무하게 10여 분 만에 끝났다. 어느 동네의 아주 허름하고 오래된 병원에서 곧 은퇴할 듯한 연배의 의사 선생님이 아무런 긴박감 없이 놔 주는 그 주사가 코로나 백신 주사라니.
아내와 아이들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돌아온 아빠를 보고 놀라기도 하고 반가워하기도 했다.
“아빠아. 오늘 왜 빨리 온 거에여어?”
“아, 아빠 코로나 예방 주사 맞았거든”
저녁에는 목장 모임이 있었다. 아내는 성경 공부가 있었고. 애들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각각 목장 모임과 성경 공부까지 마치니 굉장히 늦은 시간이었다. 맞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백신 주사의 여파는 느껴지지 않았다. 맞고 나면 식욕이 폭발한다는 낭설이 있던데, 그게 나의 유일한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었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평생 백신 주사 맞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살아왔지만.
아무튼 자기 전에 타이레놀을 한 알 먹고 잤다. 세 아이를 둔 회사원 아빠의 삶을 살기 시작한 뒤부터는 ‘아프면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산다.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나도 모르게 정신력이 발휘된다고 해야 하나. 주변에서 주사 맞은 다음날 아프다는 사람을 하도 많이 봤다. 타이레놀의 힘을 빌려 부디 아무 여파 없이 지나가길 바라며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