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화탕과 한약

21.06.16(수)

by 어깨아빠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뭔가 딱 느낌이 달랐다.


‘뭐지? 좀 찌뿌둥한데?’


그냥 기분 나쁜 정도의 몸살 기운이었다. 백신 주사를 맞지 않았으면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이게 지난 월요일 놀이공원 피로 때문인지 아니면 어제 맞은 백신 주사 때문인지 헷갈렸다. 아무래도 백신 주사를 맞은 다음 날이기도 했고 후유증을 겪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 백신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타이레놀 네 알을 챙겨서 집에서 나왔다.


오늘도 사무실 근처에 차를 대고 바로 뻗었다. 혹시 잠깐이라도 눈을 더 붙이면 나아질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더 심해질지도 모르니 예방 차원에서 잤다고 해야 할까. 자고 일어났지만 상태는 비슷했다. 사무실에 가서 타이레놀 한 알을 먹었다. 아내도 나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틈이 날 때마다 이전과 비교해 몸 상태가 어떤지 확인했다.


점심시간 즈음이 가장 힘들었다. 엄청 졸리고 기운이 없고. 딱 몸살 초기 증상이었는데 그렇다고 앉아 있지도 못할 만큼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더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기는 했는데 오히려 아예 더 아팠으면 휴가 내고 집에서 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점심 먹고 나서도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다.


늦은 오후쯤 되니 약발이 받는 건지 몸 상태 자체가 나아지는 건지 오전보다는 훨씬 괜찮아졌다. 다행이었다. 이 정도로 아프고(?) 끝나는 게 딱 적당했다. 의학적 근거는 전혀 없지만 뭔가 항체도 생기는 듯한 느낌이니 찝찝하지도 않고, 너무 많이 아프지도 않고. 그래도 한 시간 정도 일찍 퇴근했다. 사무실이라는 공간 자체가 정신력을 발휘하도록 만드는 곳이니 그곳에서 나와 봐야 좀 더 정확한 자체 진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은 하지 않고 집으로 갔다. 마지막으로 연락이 됐을 때


“이제 나간다”


는 소식까지 받았다. 장도 보고 바깥공기도 쐴 목적으로 잠깐 외출한다는 말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차가 주차장에 있는 걸 확인하고 아내와 아이들의 동선을 예상해 움직였다. 놀이터, 롯데슈퍼, 한살림 등의 순서로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지 살펴봤다. 아내와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동네 외출의 90% 이상은 그 동선으로 움직이는데 보이지 않으니 의아했다. 아내랑은 연락이 되지 않으니 일단 집에 들어가야겠다 싶어서 발길을 돌렸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어, 나 이제 출발하려고”

“아, 근데 애들 소리가 엄청 시끄럽네?”

“그러게. 오늘 애들이 많네? 여보는 어디야?”

“나 롯데슈퍼야”

“아, 그렇구나. 알았어. 이따 집에서 봐”


아내는 오늘도 속아 넘어갔다. 회사에서 막 출발하는 척하고 롯데슈퍼 쪽으로 갔다. 아내와 아이들이 막 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내 쪽으로 오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조심조심 다가가서 놀랬다.


“워!”


아내는 꺄악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이 시간에 왜 아빠가?’ 라는 표정으로 놀라서 쳐다봤다. 서윤이는 마냥 좋다고 막 웃어댔다. 놀라게 하는 재미가 있는 아내랑 살아서 너무 좋다.


“여보. 몸은 좀 어때?”

“그래도 많이 나아졌어. 거의 정상인 느낌인데?”


그래도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하기 위해서 한살림에 가서 쌍화탕을 샀다. 자기 전에 타이레놀이랑 먹고 백신의 여파를 떨쳐낼 생각이었다.


어제 설거지를 나도 아내도 안 해서 오늘 아침에 싱크대에 잔뜩 쌓여 있었다. 아내가 그걸 하는데 1시간 가까이 걸렸다고 했다. 아내가 나한테 뭔가 부담을 느끼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었지만 괜히 미안했다. 오늘은 저녁 먹고 아내가 애들을 씻기는 동안 부지런히 설거지를 해 놨다.


내일 집에 손님이 온다고 했는데 화장실 타일에 언제인가부터 곰팡이가 껴서 거뭇거뭇했다. 아내는 나에게 이야기했다.


“여보. 오늘 밤에 내가 화장실 청소 간단하게 할 건데 여보한테 부담 느끼라고 그러는 거 아니니까 나 신경 쓰지 마. 알았지?”


이것도 아내의 진심이었지만 신경이 쓰였다. 사실 이전에 몇 번 아내가 견디다 못해(?) 화장실 청소를 하고 그러면 괜히 미안해서 아내에게 툴툴거리며 내가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으니 아내는 미리 나에게 말을 해 둔 거다. 헌법에 규정된 건 아니지만 화장실 청소는 암묵적으로 남편의 몫인 경우가 많고 우리 집도 그렇다. 성실히 이행하든 하지 않든 늘 마음의 부담이야 있다. 공부 못한다고 공부 스트레스가 없는 게 아닌 것처럼.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간 사이에 새로 산 락스 세정제로 화장실 바닥을 열심히 문질렀다. 그렇다고 세세하게 화장실 청소를 한 건 아니었고 그냥 곰팡이 때만 없애는 정도였다. 아내가 나와서 마무리를 했다. 락스 냄새가 진동을 했지만 세척력 하나는 기가 막혔다. 물론 사람 특히 우리처럼 아이가 많은 집에 적합한 청소 방법은 아니지만 묵은 때를 벗겨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아내는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와서 바닥에 드러누우며 얘기했다.


“아. 의욕이 없네. 그냥 이렇게 있어야겠다. 집이 그렇게 더러운 것도 아니고”


의욕이 없기는. 하루 종일 의욕적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까지 했는데. 의욕 발휘는 오늘도 충분했다.


“여보. 몸은 어때?”

“괜찮은 것 같아”

“그래도 이거 먹고 자”


타이레놀 한 알과 아내가 데워 준 쌍화탕을 먹었다. 쌍화탕의 효과 여부를 떠나서 너무 맛있었다. 혓바닥을 자극하는 ‘맛있음’이 아니라 ‘몸에 좋은 맛’이 몸으로 들어가는 쾌감이랄까. 이럴 때 점점 나이가 들어간다는 걸 실감한다. ‘몸에 좋은 무언가’를 먹어서 건강을 영위할 수 있다는 이론(?)에 굉장히 회의적인 사람인 내가, 오늘 쌍화탕을 먹으면서 ‘아, 진짜 쓰고 좋은 한약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명분이 없다. 기력이 달리는 것도 아니고 몸이 허한 것도 아니고 식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보. 내가 한약을 먹을 명분은 딱 하나야. 다이어트 한약. 그래서 못 먹어. 슬프다”


아내는 ‘그냥 먹으면 되지’라고만 말했지 딱히 부인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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