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7(목)
코로나 백신의 후유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다행이다. 이 정도로 끝난 게.
아내는 무척 바빴다. 오전에는 집에 지인이 잠깐 온다고 했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집을 슥 둘러 봤는데 내 눈에는 엄청 깨끗했다. 항상 내 기준보다는 아내의 기준이 훨씬 더 엄격하기 때문에 내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이 아내의 눈에는 보일 테지만, 그래도 막 엄청 할 일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손님이 온다는 건 알게 모르게 바쁘게 만든다. 내가 모르는, 아내만 알고 있는 집안일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을 거고.
어떤 날은 우리 집으로 와 주는 게 좋을 때가 있고, 또 어떤 날은 차라리 내가 가는 게 나을 때도 있고 그렇다.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 아내는 오늘 후자를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오전 모임을 마치고 나서 오후에는, 아내가 또 다른 지인의 집에 가야 했다. 저녁 먹기 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 먹기 전에 온다고 했다. 과연 말처럼 될까 의심스러웠는데 역시나.
“여보. 어디야?”
“아, 나 지금 여기서 저녁 먹고 있어”
“아, 그래? 오늘 괜찮았어? 안 힘들었어?”
“어, 괜찮았지”
“애들은 어땠어?”
“애들? 어. 뭐. 그렇지. 뭐”
애들이 바로 옆에서 듣고 있으니 적나라하게 오늘의 상황을 말하지 못했지만,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너무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런 건 아니었고, ‘이야기도 잘 나누고 좋은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월한 건 아니었다는 걸 알아 두길 바란다’ 이런 느낌이었다.
“아, 서윤이가 대박이었어. 너무 힘들었어”
아직 말을 못 알아 듣는 서윤이 얘기만 여과없이 전했다.
나는 퇴근해서 바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아내와 애들을 만나지 못했다. 잠깐이라도 애들 얼굴을 못 봐서 아쉬웠지만(진심임) 대신 외출에 대한 부담은 없어서 좋다. 편안한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열심히 뛰고 있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 가는 길에 잠시 운동장에 들렀다.
“아빠”
마침 쉬는 시간이라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에게 달려왔다. 밤에 이렇게 만난 건 처음이었다. 한 5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척 반가웠다. 안타깝게도 서윤이는 차에서 자고 있어서 그냥 자는 것만 봤다.
“여보. 잘 하고 와요”
다시 애 셋을 데리고 커다란 9인승 차를 몰고 가는 아내를 보며 왠지 모를 든든함을 느꼈다. 이게 그 순간에 적절한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랬다. 일 하는 것도 노는 것도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건 저 큰 차를 아무렇지도 않게 운전하고 주차하는 아내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아내의 가정 운영(?)이나 자녀 양육에 관해 의심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신뢰를 잃어 본 적도 없었고. 아내도 나의 결정이나 의견을 불신하지 않는다. 이게 그나마 우리가 아이들한테 자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우리 엄마, 아빠는 사이가 너무 좋아’라는 생각은 할 거 같다. 다행이다.
“여보. 몸은 괜찮아?”
“나? 당연하지”
얀센 백신의 유일한 부작용, 식욕 폭발이 뒤늦게 몰려왔다. 애써 모른 척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여보. 치킨 진행시킬까?”
평일 밤에 치킨을 먹는 건 거의 1년도 넘은 일이었다. 치킨은 아주 늦은 시간에 도착했고, 평일이었지만 내일이 금요일이라는 핑계로 아내와 나는 아주 늦은 시간까지 대화를 나눴다. 막상 치킨은 많이 먹지도 않았다. 이게 다 얀센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