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시작이 아주 찐하네

21.06.21(월)

by 어깨아빠

서윤이는 콧물이 났다. 열은 안 났고 노는 것도 잘 논다고 했다. 코가 흐를 뿐이었고 다행이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아내에게 다시 카톡이 왔다.


“근데 재보니 미열이 있네. 37.6도”


어제 잘 때 뭔가 많이 칭얼거리고 깨는 것 같더니만 몸이 안 좋아서 그랬나. 게다가 시윤이도 콧물이 난다고 했다. 시윤이도 콧물 나는 것 말고는 다 멀쩡했다. 콧물이 났다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사그라들지도 모르고 이게 시작이 되어서 큰 감기의 파도가 밀려올지도 모른다.


아내가 낮에 시윤이가 그린 그림이라며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아내의 뱃속에 있는 서윤이를 그린 거라고 했다던데 그림이 제법 그럴싸했다. 그린 이의 해설이 없으면 그저 무질서한 선과 도형의 난무로 오해받기 좋은 그림에서, 뭔가 형태가 보이고 추측이 가능한 그림으로 발전했다. 그림의 주제도 참 우리 아이들다웠다. 엄마 뱃속에 있던 동생이라니.


이건 오전이었다. 오후에는 아내가 전화를 해서 시윤이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루를 볼 것도 없다. 몇 시간 아니 몇 분 만에도 수도 없이 장르가 바뀌곤 한다. 그래도 이른 오후였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나아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중간에 아내랑 통화를 하기도 했고.


퇴근하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굉장히 희미하게 들렸지만, 직감했다.


‘이거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사실 직감이랄 것도 없다. 내가 알기로는 우리 층에 사는 이웃 중에 아이를 키우는 집이 없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 집에서 그렇게 크고 괴상한 소리가 날 일은 없다. 이전에도 비슷한 상황이 몇 번 있었지만 백이면 백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였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커졌다.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인 건 틀림이 없는데 대체 무슨 소리인지는 파악을 하지 못했다. 애들이 일부러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장난치는 것 같기도 했고, 누군가 떼를 쓰면서 내는 소리 같기도 했다. 무슨 소리인지 궁금했는데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소리가 그쳤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내가 황당함과 분노가 섞인 표정으로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아내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시윤이가 서 있었다. 바로 상황을 이해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아내가 시윤이에게 잠시 가서 가만히 서 있으라고 했지만 시윤이가 그걸 거부하고 반항(?)의 태도를 보인 거다. 그러면서 아까 그 ‘요상한 소리’를 계속 내다가 내가 오자 바로 멈춘 거다. 이미 그전에도 감정이 펄펄 끓은 아내는 그 모습을 보자 어이도 없고, 허탈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그랬던 것 같다. 충분히 그럴 만하다.


아이들이 보이는 말과 행동의 연료 내지 먹이는 분명히 부모인 우리가 줬을 거다. 알고 줬든 모르고 줬든 간에.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나. 우리가 풀어야지. 그렇다 하더라도 당장 ‘아빠 앞에서’는 교묘하게 연기를 시도하고 자기의 악행(?)을 은폐하려는 아들을 보면,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거다. 내 느낌에 아내의 표정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나마 ‘엄마’여서 참은 거지 아니었으면 진작에 울었든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지르든 했을 거다.


아무튼 집안의 분위기가 영 별로였다(…별로라는 말 대신 개ㅍ…을 쓰고 싶네). 잠시 소파에 앉았다. 시윤이에게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내와 시윤이의 시간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모든 걸 다 보고 아는 소윤이와, 아무것도 모르는 서윤이가 나에게 와서 말도 걸고 장난도 쳤다. 그걸 받아주기는 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지금 나는 뭘 해야 할까. 아니면 뭘 하지 말아야 할까’


아내는 격해진 감정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다. 나도 위험했다. 퇴근하자마자 마주하는 풍경과 분위기가 오늘과 같은 날일 때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일 때가 있다. 특히 몸이 피곤하면 더 그렇다. 육체의 피로를 잊게 만드는 마음의 평안을 기대하며 퇴근했는데, 마음의 평안도 없고 육체의 피로는 더 선명해지고. 까딱 잘못하면 누구에게서든 불이 붙기 딱 좋았다. 나도 정말 위기였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내는 시윤이를 불러서 방으로 들어갔다. 자기감정은 정리가 안 되었지만 ‘이 상황’은 정리를 하고 어쨌든 마침표를 찍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 아내와 시윤이가 방에 들어가 있는 동안 소윤이에게 ‘무슨 일 때문에 이런 거냐’라고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잠시 후 시윤이가 먼저 방에서 나왔다. 아내는 조금 더 있다가 나왔다. 몰래 울었거나 기도를 했거나 그랬을 거 같다. 시윤이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히려 보란 듯이 금방 웃고 장난도 치고 그랬다. 아내가 방에서 나왔지만 표정은 아까랑 다를 바 없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더 안 좋아진 것 같기도 했다.


난 그냥 평소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어쩌면 평소보다 더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을 먹다가 시윤이가 나에게 물었다.


“아빠. 오늘 엄마 아빠는 별일 없져?”

“아니 있는데”

“뭐여어?”

“엄마는 이따 나가실 거야”


시윤이에게 대답하는 거였지만, 사실 아내에게 말하는 것이기도 했다. 여전히 이게 내가 아내에게 내밀 수 있는 최선 아니 최대한의 방안이다. 바깥공기 테라피라고나 할까.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코로나 시국이라 그나마 미미하던 효과마저 급감했을지도 모른다. 공간에서의 해방이 마음의 해방까지 이어지길 바라는, 아내를 향한 남편의 노력으로 이해해 주면 더할 나위 없다.


갑자기 날벼락(잠들기 전에 엄마가 나간다는 상황 자체가 싫은)을 맞은 소윤이가 밀려드는 슬픔을 꾹 참는 게 보였다. 소윤이는 이제 다 아는 거다. 다 알지만 그래 봐야 일곱 살이고,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게 이상할 나이도 전혀 아니다. 아빠도 이해한다는 표정과 토닥거림으로 소윤이를 위로했다.


아이들이 잘 준비를 마쳤을 때, 아내는 아직 나갈 준비를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나갈 준비라고 해 봐야 옷 갈아입고 가방 챙기면 끝이었다. 설거지든 집 정리든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일단 나가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아, 그전에 아내는 서윤이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잠시 집에서 나가는 연기를 했다. 엄마는 나가고 없다’는 걸 보여 줘야 빨리 포기하고 잠을 청한다. 밖(거실)에 엄마가 있다는 걸 알면 자꾸 엄마에게 가려고 하고.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서윤이는 금세 포기하고 자리에 누웠다. 서윤이는 코막힘이 매우 심했다. 손가락을 빠니까 입과 코가 모두 막혀서 숨 쉬는 데 어려움이 생길 정도였다.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어려움은 당연히 아니고 그냥 본인이 힘들고 괴로워했다. 그래도 금방 잠들었다.


거실로 나와서 부지런히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를 마치고 잠시 앉아서 쉬는데 서윤이가 깨서 울었다.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게 아니었다. 좀 기다려 볼까 했는데 엄청 소리를 지르면서 울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갔는데, 서윤이는 내 얼굴을 보고는 바로 울음을 멈추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날 혼자 두고 나가지 마’라고 말하는 듯했다. 서윤이가 깊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나왔다. 조금 쉬다가 노트북을 켰는데, 서윤이가 또 깨서 울었다. 아마도 코막힘 때문에 깊이 잠들지 못하는 듯했다. 다시 방에 들어갔더니 아까처럼 또 바로 다시 누웠다. 한 번 더 나왔는데 서윤이가 또 깼다. 안쓰러웠다. 괜히 불쌍했다. 깨서 엄마를 찾는 것도 아니고 아빠 얼굴만 봐도 안심하고 다시 자는데,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기를 쓰고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을 접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다시 나갈 생각이 없었다.


낑낑대며 힘들어하는 서윤이를 내 옆에 눕혔다. 휴대폰 화면을 켜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봤다. 세상모르고 평안하게 자고 있었다. 아내는 뭘 하고 있을지, 마음은 좀 추슬렀는지 궁금했다. 퇴근하고 와서 아무것도 못하고 수발만 들다 끝난 나의 하루도 떠올랐다. 출근도 퇴근도 없이 내가 너고 너가 나인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내의 하루도 떠올려 봤다.


요즘 내가 만지는 것 중에 가장 부드러운 서윤이의 선과 발을 만지작거리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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