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이 너까지

21.06.20(주일)

by 어깨아빠

다른 주일에 비해 여유 있게 아침을 보냈다. 아내가 부지런히 일어나서 일찍 시작한 덕분이었다(평소에 아내 때문에 늦는다는 뜻은 아니다. 나든 아내든 누구라도 한 명은 부지런을 떨면 되는데 난 여전히 누워 있을 때 아내가 먼저 일어났다는 말이다). 여유가 있었다고 해서 시간이 넘치도록 남았다는 건 아니다. 아이들에게 서두르라고 말하지 않아도 제시간에 딱 맞춰 준비할 수 있는 정도였다. “빨리해라”, “서둘러라”, “부지런히 해라”, “시간 없다” 이런 말을 안 하고 준비해도 늦지 않았다는 거다.


“아, 교회 갈 때 꾸미고 가고 싶다”


아내가 신발을 신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꾸미고 가면 되지”


무심결에 그렇게 말했지만 ‘되려면’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한 노릇이었다. 물론 그 협조는 내가 해야 한다. 일찍 일어나서 애들(서윤이도 포함이다) 밥도 먹이고 옷도 갈아입히고 설거지도 하고 그러면 된다. 물론 내가. 아내는 일어나서 자기 몸 씻기와 치장, 착장에 전념하도록. 다음 주일에는 꼭 그렇게 해야지.


오늘부터 서윤이도 마스크를 본격적으로 씌워 보려고 했다. 아내가 씌웠더니 바로 벗고 잡아채고 그러던 녀석이 내가 “아니야. 서윤아, 이거 써야 돼” 하면서 씌웠더니 가만히 있었다. 아내는 황당해 했다. 나도 신기했다. 뭐지. 소윤이나 시윤이는 그렇다 쳐도 왜 서윤이까지 이러는 걸까. 세 녀석 다 나랑 잘 놀고 장난도 잘 치는 걸 보면 왜곡된 공포심은 아닌 것 같은데. 왜 내 말을 더 잘 듣지?


아내는 오늘 점심에 먹일 서윤이 밥까지 미리 준비해서 보온통에 담아 놨다. 서윤이용 볶음밥이었으니 나름 품을 들여 준비한 거였다. 안타깝게도 집에서 나올 때 식탁 위에 고이 두고 나왔다.


“하아. 서윤이 밥 놓고 나왔다”


아내는 예배당에 앉자마자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리’ 준비한 수고와 뿌듯함을 앗아가는 ‘깜빡’이었다. 결국 서윤이는 점심때 맛없는 식당 밥과 함께 언니, 오빠의 돈까스를 나눠 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어제부터 마시지 못한 소중한 ‘남이 타주는 커피’를 한 잔씩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빠는 꼭 이때 화장실을 가더라여”


라고 할 정도로 주일 이맘때는 꼭 배가 아프다. 오늘도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에 들어갔다. 들어간 지 5분도 안 됐는데 시윤이가 문을 두드리며 얘기했다.


“아빠아. 똥 마려워여어”


하아. 명치끝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 어디선가부터 짜증이 올라왔다.


‘아니, 왜 꼭 너는 아빠가 들어오면 마렵니. 하아’


이건 단순히 싸는 시간을 방해받아서 그런 게 아니다. 배우자와 함께하는 육아 시간의 화장실은 배출의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해방의 공간이요, 탈출의 공간이요, 자유의 공간이요, 세상과의 만남의 공간이요, 쉼의 공간이다. 시윤이라고 마려운 걸 참다가 아빠가 들어갔을 때를 노려서 얘기한 건 아닐 테다. 그래도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다. 시윤이가 일을 보고 나서 다시 내가 들어가고 내가 나오고 나서 아내도 들어가고. 처음으로 (진짜 처음으로) 화장실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윤이랑 시윤이가 우노를 하자고 했다. 원래 어제도 하자고 했는데 어제는 서윤이가 뭔가 기분이 안 좋을 때였다. 그 앞에서 자기를 따돌리고 우노를 하는 걸 보면 더 폭발할 것 같았다. 오늘은 기분이 좋길래 조금 소외시켜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서윤이는 이제 우노의 판이 벌어지면 자기도 한자리 차지하고 앉으려고 한다. 서윤이용으로 내어준 카드 두 장을 들고 와서 내는 시늉 아니 진짜 낸다. 적당히 호응해 주면서 ‘너도 함께하는 거야’라는 생각도 심어주고 한편으로는 게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적당히 막기도 하는 게 중요하다. 다행히 오늘은 심하게 방해(서윤이 입장에서는 참여지만)를 하지도 않았고, 막혀도 기분이 좋았다. 나중에는 아예 다른 곳으로 가서 혼자 놀았다.


아내는 오늘도 나랑 애들(소윤이, 시윤이)이 나가면 장모님, 장인어른에게 갈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가서 한숨 자고 싶다고 했다. 서윤이의 눈치가 빨라진 건지 듣는 귀가 열린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한층 발전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옷을 갈아입거나 뭔가 나갈 채비를 하는 게 느껴지면 득달같이 현관으로 간다. 현관으로 가서 자기 나름대로 낑낑거리며 신발에 발을 집어넣고 그러다 잘 안되면


“마아아아아아아. 으으으으으으으”


소리를 내며 누군가를 부른다. 엄마나 아빠나 언니나 오빠를. 누구라도 와서 내 신발을 좀 신겨 달라고 하면서. 오늘도 소윤이와 시윤이가 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서윤이는 자기도 가겠다며 맨발로 뛰쳐나갔다. 안아서 다시 집 안으로 넣어 놓고 급히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다.


다 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어디야?”

“아, 나 지금 잠깐 장보러 나왔다가 들어가려고”

“아 장모님한테 안 갔어?”

“어”

“그럼 서윤이랑 좀 잤어?”

“어, 서윤이 잘 때 같이 좀 잤어”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제도 샤워를 했지만, 오늘도 샤워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는 아보카도 계란밥, 아내와 나는 라면을 저녁으로 먹었다. 서윤이는 아보카도도 엄청 잘 먹었다. 서윤이는 아직까지 먹기 싫다고(기호에 맞지 않는다고) 뱉은 음식이 없다. 가리는 것 없이 뭐든 잘 먹는 느낌이다. 게다가 많이 먹기까지 한다. 처음 떠 준 밥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꼭 더 먹는다.


샤워도 미리 하고 밥을 먹었으니 다 먹고 나서는 양치만 하면 됐다. 금방 끝나서 좋다고 생각하며 시계를 봤는데


“헐. 뭐야? 9시야?”


깜짝 놀랐다. 벌써 9시라니.


“여보. 이번 주말은 왜 이렇게 금방 지나간 거 같지?”

“그러게. 나도 그러네”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 유독 그랬다. 지난주말에는 월요일 연차라 하루 더 주말처럼 보내서 그런가. 지난 주 월요일, 놀이공원이 그토록 힘들었어도 월요일 출근에 비할 바는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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