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19(토)
요즘은 주말에 아내가 먼저 일어나서 애들을 데리고 거실로 나갈 때가 많다. 친절하게 안방 문도 닫아주고. 조금이라도 더 자라는 아내의 깊은 배려다. 더 잘 때도 있고 깼지만 안 나가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도 있다. 오늘도 방에 누워 있다가 나갔다. 아침부터 시윤이가 말을 안 들었는지 분노가 실린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길래, 일부러 방에 조금 더 있었다. 내가 나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180도 바꿀 테니. 아빠 말을 잘 듣는 건 참 좋은 일이지만 엄마 앞에서의 태도와 차이가 너무 심하면 그건 또 안 좋은 것 같다. 이 이중성(?)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딱 내가 그랬다. 엄마한테는 그렇게 바락바락 대들었지만 아빠한테는 말대꾸 한 번을 안 해 봤다. 그렇다고 아빠가 날 때리거나 뭐 숨도 못 쉬게 공포감을 조성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아빠한테는 그랬다. 이걸 그대로 물려받았다니. 보면 볼수록 신비한 유전자와 DNA의 세계.
오후에는 잠시 지인의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거기 갈 때 가지고 갈 아기 옷과 과일을 사기 위해 집에서 조금 일찍 나왔다. 쇼핑몰 가는 길에 김밥 가게에 들러서 점심으로 먹을 김밥을 샀다. 아내만 선물로 살 옷을 고르러 갔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차에 남아서 김밥을 먹었다. 서윤이는 카시트에서 잠들었다.
옷이랑 과일을 사서 지인의 집에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역시나 한참 동안 말도 안 하고 수줍어했다. 이게 진짜 수줍은 건지 아니면 수줍은 척을 하는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척은 아니겠지만, 뭐랄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느낌이랄까. 하긴 이것도 나 닮았네. 나도 웬만큼 친하지 않고서야 말을 잘 하지 않는다. 애들이 수줍어하는 동안 나도 ‘의지적으로’ 할 말을 생각하고 대화를 이어 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야만 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그랬고, 평소대로라면 나도 그냥 입을 닫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마 1시간 정도 더 있었으면 입이 완전히 트였을 거다.
서윤이는 아까 자느라 밥을 못 먹었다. 서윤이도 먹이려고 주먹밥을 샀었다. 지인의 집에서 먹이려고 했는데 두 알 정도 먹더니 안 먹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뭔가 다른 거 원하는 게 있거나 짜증을 내는 건 아니었다. 배가 부르지도 않았을 테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먹기 싫다고 했다.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어쩔 수 없이 사긴 했지만 별로 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저녁에는 온라인 모임이 있어서 조금 서둘러 돌아오려고 했는데, 역시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온라인 모임을 준비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도 함께 들어야 하는 거라 모임을 시작하기 전에 다 씻기고 옷도 갈아입혔다. 끝나면 늦은 시간일 테니 바로 양치만 하고 잘 수 있도록. 서윤이도 깨어 있기는 했는데 모임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아내가 방에 들어가서 재우고 나왔다.
모임은 1시간 정도였는데 특히 시윤이가 졸려서 힘들어했다. 가뜩이나 졸릴 시간에 가만히 앉아서 강의를 들어야 하니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나도 무척 졸렸다. 아내는 나보다 더 심해 보였고. 모임이 거의 끝났을 때쯤 방에서 서윤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내는 한창 애들 양치 시키고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오예”
소윤이의 ‘오예’는 이런 뜻이었다. 서윤이가 자고 있으면 엄마가 자기랑 시윤이만 들어가서 자라고 했을 텐데, 서윤이가 깨는 바람에 자기들과 함께 방에 들어가게 된 게 좋다는 거였다. 그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건 예의가 아니었다. 꼭 윗사람이 아니더라도 바람직한 행동은 아니었다. 일부러 엄청 따끔하게 훈육을 했다. 소윤이 눈물이 쏙 빠지도록. 소윤이가 나쁜 마음을 먹고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다음에는 똑같은 상황이 와도 적어도 입 밖으로 표현하는 건 참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많이 서운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르쳐 줘야 한다. 소윤이한테 이런 걸 가르쳐야 할 때가 많아진다. 명백히 나쁜 일, 해서는 안 될 일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헤아린다면 하지 않는 게 좋을 일. 주변에 그렇게 하는 사람도 많으니 나쁜 일이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별로 좋지 않은 일. 뭐 이런 것들.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던 아내는 결국 한숨 깊게 자고 나왔다. 차라리 계속 그냥 자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시간에 다시 나왔다. 재우러 들어간 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만 해도 나랑 카톡을 했는데, 그때가 고비였나 보다.
아내는 오늘 맛있는(남이 타 주는, 남편이 타 주는 거 말고, 돈 내고 남이 타 주는) 커피를 못 마셔서 무척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