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22(화)
잠을 엄청 설쳤다. 콧물을 줄줄 흘리는 서윤이가 걱정되는 마음에 뭔가 깊이 잠들지 못한 것 같다. 수시로 서윤이의 이마를 짚어서 열이 나는지 확인을 했다. 다행히 뜨겁지는 않았다. 서윤이도 많이 깼다. 코가 막히니까 숨을 쉬기가 힘들었는지 잠을 깊게 못 자는 듯했다. 바깥공기 테라피를 마치고 돌아온 아내가 어느샌가 방에 들어왔고 서윤이는 엄마 품으로 향했다. 잠결에도 느껴졌다. 이 녀석이, 아빠의 밤을 버리고 너를 위해 헌신했건만 역시 엄마는 엄마구나.
서윤이가 너무 많이 깨고 또 많이 울어서 아내는 서윤이를 데리고 거실로 나갔다. 그때도 잠이 깼다. 밖이 너무 환해서 일어날 시간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고 휴대폰을 봤는데, 알람이 울리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은 때였다. 다시 잠을 청했고 한 시간은 10분처럼 흘렀다.
아내랑 서윤이는 거실에 누워서 자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광경도 오랜만이다. 쪽잠 서윤이 시절에는 종종 목격하던 광경인데, 통잠 서윤이 되고 나서는 정말 드문 모습이었다. 아내와 서윤이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정말 신경 써서 움직였다. 발소리가 나지 않게 걷는 건 물론이고 씻을 때도, 옷을 갈아입을 때도, 짐을 챙길 때도 적진에 침입한 첩자처럼 신중을 기했다.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결국 아내를 깨우고 말았다. 다 챙겨서 집에서 나왔는데 책 하나를 안 챙긴 게 생각이 났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에 아내가 깼다.
“여보”
아내는 신음인지 말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부디 소윤이와 시윤이가 일찍 깨서 거실로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아내에게 손을 흔들고 다시 집에서 나왔다.
그러고 나서는 낮에 연락을 많이 못 했다. 유모차에서 자고 있는 서윤이 사진과 함께 ‘일찌감치 밖에 나갔다 왔다’라는 소식 정도만 들었다. 사실 아내의 하루하루는 은근히 바쁘다. 세 아이를 돌보는 일 말고도 처치홈스쿨과 관련된 일도 있고, 목장 모임도 있고(일주일에 한 번이고 오늘은 아니었지만). 코로나와 함께 대대적인 ‘온라인 모임’의 시대가 열리면서 어떤 면에서는 더 바빠졌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가 엄마의 육아 이외의 일의 시간을 너그럽게 기다려 주면 너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아내의 시간표는 언제나 빡빡하다.
퇴근할 때, 정확히 말하면 퇴근하고 집에 들어설 때 긴장(?)을 많이 했다. 어제 아내와 시윤이가 겪은 극단의 상황과 아내의 바깥공기 흡입 시간 이후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잘 몰랐다. 오늘은 어땠는지, 아내는 어제보다 좀 나았는지 몰라서 문을 열기 전에 다소 두근거렸다(표현을 위한 과장이 아니라 정말 그런 기분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그 떨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빠”
“아빠아”
“마아아아아아”
세 녀석이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반기는 모습에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던 온갖 생각이 싹 사라졌다. 이제 뭔가 아기처럼 마냥 들러붙는 게 아니라 속 정을 건네는 듯한 소윤이의 인사, 역시 나의 에너지를 받아줄 사람은 아빠밖에 없다는 듯 달려와서 매달리는 시윤이의 인사,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지만 엄마를 빼면 내가 이렇게 반가워하는 건 아빠가 유일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소리 지르는(아빠를 부르는) 서윤이의 인사까지. 나의 하루에서 가장 소중한 1분을 꼽으라면 이때가 아닐까 싶다.
아내의 분위기, 시윤이의 분위기를 유심히 살폈다. 사실 평소에도 아내가 어제의 감정을 며칠은커녕 오늘까지 끌고 오는 일은 없다. 나랑 다툰 거면 몰라도 애들하고 관계에서 뭔가 마음이 상했을 때는 그런 일이 없다. 내가 보기에 아내는 참 건강하고 훌륭한 엄마다. 아내의 이 견고하고 변하지 않는 사랑 위에서 소윤이, 시윤이, 서윤이가 자란다는 걸 생각할 때마다 참 감사하다. 그때그때 집안의 기류와 분위기에 따라 예민해지기도 하고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근본적인 ‘아내와 아이들의 관계’에 관한 불안이나 의심은 1 아니 0.0001 도 없다. 어제의 고전은 잊고 의연하게 또 ‘오늘’을 사는 아내를 보며 다시 한번 느꼈다.
아내도 그렇게 열심히 살았으니, 나도 내 나름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 밥 먹고 씻기고 나서 아내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난 애들 책을 읽어줬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하루씩 번갈아 가면서 책을 고르는데 오늘은 소윤이가 고르는 날이었다. 소윤이는 처음에 골랐던 책을 슬그머니 책장에 다시 꽂더니 다른 책을 골라서 나에게 읽어달라고 가지고 왔다. 내가 아무리 잘 놀아줘도 아이들의 모든 기본값은 ‘엄마’다. 뭐든 ‘엄마가 해 주는 걸’ 더 좋아한다. 아주 드물게 ‘아빠가 해 주는 걸’ 더 좋아하는 것도 있는데 주로 노는 것이거나 웃긴 것과 관련이 있다. 오늘 소윤이가 골라 온 책도 같은 맥락이었다. 언젠가 재밌게 읽어줬던 모양이다. 사실 난 기억도 잘 안 났다.
“아빠. 저번처럼 재밌게 읽어주세여. 알았져?”
“소윤아. 아빠가 어떻게 읽었어? 기억이 안 나”
소윤이와 시윤이가 친절하게 어떻게 읽었는지 알려줬다. 기꺼이 소윤이와 시윤이의 코미디언이 되어서 최선을 다해 웃기게 읽어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진짜 웃길 때 나오는 웃음소리를, 대부분의 부모들은 안다. 아내랑 아이들 말고는 아무도 본 적 없을, 망가진 모습으로 읽는 노력(?) 덕분에 아이들의 웃음을 얻었다. 요즘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빠를 정의하는 표현으로 가장 많이 쓰는 게 있다.
“우리 아빠는 너무 장난꾸러기야”
난 이 칭호가 그렇게 좋다.
애들을 재우고 나온 아내가 나에게 인사했다.
“여보.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하긴, 정말 오랜만이긴 했다. 어젯밤에는 대화 한 마디를 제대로 나누지도 못했으니까. 그러고 나서 시간을 좀 보내고 자러 들어가서 누웠을 때 아내가 또 얘기했다.
“여보. 그러고 보니까 어제, 오늘 여보가 날 한 번도 안아 주지 않았네?”
“뭐 시간이 있어야 안아 주지”
내가 무슨 착한 일을 많이 해서 이런 가족들을 만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