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떠나기 위한 준비

21.07.01(목)

by 어깨아빠

아내는 이른 아침부터 체력이 고갈되었다며 자신의 육아를 ‘극한직업’이라고 칭했다. 아내의 카톡에 나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시윤? 서윤? 둘 다?”


용의선상에 소윤이가 포함되는 일은 거의 없다. 다행히(?)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다시 말해, ‘육체적’으로만 힘들다는 뜻이었고 그건 감정의 소모가 덜하다는 얘기였다. 그렇다고 몸만 힘든 게 수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서윤이는 내내 업혀 있고 시윤이는 똥 싸는 게 힘겨웠고, 또 내가 듣지 못한 일이 즐비하다. 아내의 몸을 한시도 쉬지 못하도록 하는 다양한 일상이 촘촘하게 준비되어 있다. 게다가 아내의 몸 상태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기분 나쁜 두통과 왠지 모르게(사실 ‘왠지 알 것 같은’이지만) 처지는 체력이 아내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특별히 바쁜 일정이 없었는데도 남긴 애들 사진이 별로 없었다. 그만큼 고됐다는 거다.


하긴 당장 오늘은 별일이 없었지만, 해야 할 일은 꽤 많았다. 그게 몸과 마음에 부담을 더해서 머리도 아프고 진이 빠지는 것도 같다고, 아내가 말했다. 내일은 처치홈스쿨 모임(명칭은 모임이지만 실제로는 가르침의 시간이 많다)을 준비도 해야 하고, 또 아이 셋을 데리고 멀리 가야 하고. 게다가 내일 밤부터 시작되는 이른 여름휴가 준비도 해야 했다.


오늘도 낮에 장모님이 오셨다. 덕분에 아내는 장거리 여행을 위한 짐을 틈틈이 쌌다. 그래도 애들 재우기 전까지 모두 끝내지는 못했다. 아내는 저녁 먹고 나서 남은 짐을 싸면서 소윤이에게도 짐을 챙기라고 했다.


“소윤아. 소윤이 가방도 챙겨”

“엄마 뭐 챙길까여?”

“소윤이 마가복음 필사책도 챙기고 성경책도 챙기고 공부할 것도 챙기고”

“왜 마가복음 필사책을 챙겨여?”


나도 의아했다. 소윤이는 지금 ‘룻기’를 필사하는 중이다. 그런데 왜 굳이 마가복음 필사책을 챙기라고 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금방 아내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룻기’ 필사는 아내가 직접 써 주면 소윤이가 따라 쓰는 ‘자체 제작 필사’인 셈인데, 마가복음 필사책은 그렇지 않았다. 인쇄되어 있는 성경 구절을 따라 쓰는, 구매한 필사책이라 아내가 미리미리 쓸 필요가 없었다. 여행 기간에는 미리 필사를 해 놓을 자신이 없는 아내의 포석이었다. 왜 마가복음 필사책을 챙기냐고 물어봤던 소윤이는 한 5초 만에 다시 아내에게 말했다. 음성은 없었고 표정으로.


“아…”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해했다는 듯한 눈 찡그림과 함께. 아마 소윤이는 아내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했을 거다. 공부할 책을 챙기던 소윤이가 아내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엄마. 워크북은 안 챙겨도 되져? 집에서도 안 하는데 굳이?”


소윤이는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겠지만, 아내는 세게 한 대 맞았다. 이런 게 진정한 팩트 폭행이다. 아내와 나는 소윤이의 촌철살인에 웃음이 터졌다.


저녁 먹을 때 즉흥적으로 아이들에게 선언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아빠랑 자자”


당연히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쉬워했지만 금방 납득했다. 여행을 향한 기대감 덕분에 마음이 굉장히 넓어져 있기도 했다. 서윤이는 낮잠을 늦게 자서 일찍 잠들 것 같지 않았다. 아예 데리고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애들을 재우는 동안 아내는 짐 싸는 걸 마무리했다. 서윤이의 방해 때문에 더디긴 했지만 어쨌든 끝내긴 했다.


아내의 몸 상태는 차도(?)가 없었다. 오히려 더 안 좋아진 듯도 했다. 이러다 여행 가서 병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아내는 짐 싸기를 마치고 일찍 자러 들어갔다. 서윤이도 엄마를 따라 들어갔다. 남은 나의 임무는 아내가 싸 놓은 캐리어를 비롯한 짐을 차에 옮겨 놓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차에 자리도 마련해 놓고. 원래 가기 전에 세차도 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고이 포기했다.


내일 아침에 당장 떠나는 게 아니고 출근해서 정상 근무를 하고 난 뒤에 떠나는 건데 마음은 이미 휴가였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이 아니면 취침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하는 편인데 오늘은 예외였다. 이미 떠나버린 마음을 굳이 추스르지 않고 오히려 몸을 맡겼다. 엄청 늦게 잤다.


내일은 퇴근과 동시에 휴가가 시작된다는 걸 끊임없이 떠올리며 버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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