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의 시간

21.06.30(수)

by 어깨아빠

오늘은 아내가 카톡으로 아침 시간의 고충을 토로했다. 사실 고충이라고 하기에는 훨씬 무게가 있었다. 중간에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아내의 이 카톡을 보고 나는 아내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 나 진짜 너무너무 괴롭고 힘들어”


서로 교감한 기간이 쌓이다 보면 문자로도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은 물론 이때가 승부처 혹은 적절한 순간이라는 직감이라는 게 생긴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화장실이라고 했다. 아내가 화장실에 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변의를 느껴서 혹은 몰래 울고 싶어서. 당연히 오늘은 후자였다. 오늘의 상대도 시윤이었다. 서로의 과실 범위를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시윤이가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됐고, 그걸 오롯이 홀로 받아내야 하는 아내의 심정 또한 이해가 됐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라지만, 시윤이를 붙잡고 일장연설을 늘어놓아 봤자 뭔가 바뀔 리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어른이자 부모인 아내가 실마리를 풀어야 했다.


사실 아내의 저 카톡을 받는 순간, 또 전화를 해서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일뿐이지만 어쩌면 아내는 이미 ‘숨이 가쁜’ 상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아내와 통화를 했다.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아내에게 굉장히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무리 아내의 심정을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이라고 해도, 겪어보지 않은 아내의 일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어렵다. 또 내 나름대로 도움이 되길 바라며 얘기하는 것들도 아내가 모르는 게 아니다. 알지만 아는 대로 실천할 상황과 여건이 따라 주지 않을 때가 너무 많다. 그래서 섣부르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시간이 지나면 이 시윤이가 몰고 오는 파도도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하긴 한다. 그래도 가끔씩 불안해지기도 한다. 혹시라도 아내나 내가 모르는 시윤이의 마음의 큰 구멍이 있는 건 아닐지, 아내나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시윤이는 세밀한 관찰과 사랑이 필요한 건 아닌지. 그걸 놓쳐서 나중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지. 언제나 사랑과 진심은 통한다고 믿지만, 문득문득 ‘혹시나’ 하는 불안이 찾아 오기도 한다.


“잘 이야기하고 마무리했어요”


아내는 점심시간쯤 이렇게 카톡을 보내왔다. 진짜 ‘잘’ ‘마무리’ 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목장 모임도 있다고 했는데 제정신(?)으로 참여했을지 모르겠다. 오후에는 장모님이 집에 오신다고 했다. 집에 오시는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아내는 아예 장모님을 모시러 갈까 싶다고 했다. 바람도 쐴 겸 괜찮은 선택인 듯했다.


퇴근해서 집에 가니 장모님과 친한 권사님도 함께 집에 계셨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역시나 평소보다 아드레날린이 많이 분비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아내의 얼굴에는 역시나 힘이 없었다. 꼭 입원한 환자가 병문안 온 사람한테 건네는 미소랑 비슷한 웃는 표정을 보였다. 오늘이 힘들어서 그랬을 수도 있고 또 한 번 떨어진 몸 상태가 쉬이 회복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장인어른도 오셔서 저녁을 드시고 가신다고 했다.


덕분에 평소에 비해 부담을 느끼지 않고 바로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 하긴. 지난주에도 아내가 친정에 가 있었구나. 아무튼 아내의 배려 덕분에 즐거운 수요일인데 이번 주도 부담을 덜고 출가했다.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데 아직 방이었다.


"여보. 나 이제 나가려고. 다시 전화할게"


아내는 저녁에 먹었던 쭈꾸미를 내 몫으로도 남겨 놨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배가 무지 고팠기 때문에 식탁에 앉아서 식사를 시작했다. 혼자 앉아서 밥 먹는 걸 싫어하는 나를 위해 아내는 기꺼이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내는 개야 할 빨래가 많다고 하면서도 내 앞에 앉았다.


"여보. 괜찮아. 빨래 개도 돼"

"아니야. 나도 여보랑 앉아서 얘기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역시. 아이들 없이 고요함 속에 아내와 나누는 대화 혹은 수다는 언제나 재밌다. 캠핑 가서 모닥불 피워 놓고 아내랑 늦은 밤까지 수다 떠는 게 나의 작은 목표다. 참고로 캠핑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또 막상 그런 상황이 되더라도 아내가 호흡하듯 하품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더 늙기 전에 조금이라도 젊음의 감성이 살아있을 때 아내와의 오붓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아니, 많이도 아니고 종종 아니 가끔 아니 가뭄에 콩 나듯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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