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하루와 김치찌개

21.06.29(화)

by 어깨아빠

아침 첫 통화를 할 때부터 시윤이의 징징거리는 소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완화된 표현이다. 시윤이는 일부러 듣기 싫은 소리를 내곤 한다. 자주)가 휴대폰을 타고 넘어왔다.


“시윤이는 왜 그래?”

“아, 콧물 나오는 거 힘들다고. 아 정말 듣기 싫다”


거기에 히잉히잉 하는 서윤이의 울음소리까지 더해졌다. 아직 나의 정식 업무 시간도 되기 전이었다. 부디 오늘도 그야말로 아내의 ‘건투’를 빌었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시윤이랑 잘 해결(?) 했냐는 나의 카톡에 아내는 답장이 없었다. 한참 지나고 나서 아내는 서윤이 사진을 보냈다. 안전장치가 하나도 없는, 언니와 오빠가 앉는 높은 식탁 의자에 앉아서 엄청 신난 모습이었다. 사진이었지만 서윤이의 모습이 영상으로 그려졌다. 아내와 나의 분석으로는 서윤이가 셋 중에 가장 겁이 없다. 겁이 없다기보다는 언니와 오빠가 하는 건 뭐든 자기도 하려다 보니 위험한 줄 모르고 덤비는 게 많다. 아내와 나도 소윤이 때에 비하면 굉장히 무뎌졌다. 소윤이 때는 떨어지는 먼지에도 다칠까 봐 그야말로 호들갑이었는데 그에 비하면 서윤이는 거의 방임에 가깝다.


아내는 행복한 서윤이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내고 곧바로 이런 카톡을 보냈다.


“근데 너무 힘들다. 계속 안아 달라 그러고 뭘 못하게 하네”

“엄마만 보면 안기고 싶나 봐”


이것 또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다. 나랑 있을 때는 거의 그러지 않는다. 엄마 이외의 존재, 부재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엄마가 있으면, 엄마한테 착 달라붙는다. 왜 그럴까. 소윤이는 엄마가 없으면 엄청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오래 돼서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윤이도 그랬던 것 같다. 서윤이는 아니다. 엄마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다. 엄마가 있으면 아무렇다(?). 가끔 아내의 괴로운 장면을 목격할 때가 있는데 정말 아내 말대로 ‘아무것도’ 못하게 한다. 조금 극단적이긴 해도 육아를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표현하는 뭇 엄마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어느 정도냐면 아내가 서윤이의 손 닿을 거리에 마주 앉아 있다가 잠깐 옷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가기만 해도 운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눈에 보이는 곳인데도 운다. 그렇다고 뭔가 일관성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오늘 저녁에는 내가 목장 모임을 해야 해서 아내가 대부분의 마무리를 담당했다. 서윤이는 아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막 울더니 막상 자자고 방에 들어오라고 하니까 혼자 거실에 나와서 나한테 애교도 부리고 언니 책상 주변의 잡동사니를 만지며 놀았다. 엄마가 오라고 해도 안 가고. 그냥 상전이다. 아내와 나는 거의 까라면 까는 수준으로 상전을 모시고 있다.


애들이 잘 준비를 모두 마치기 전에 목장 모임을 시작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와 서윤이는 내가 노트북만 켜면 무슨 구경이라도 난 듯 몰려든다. 잠시 화면에 함께 나오다가 아내가


“자, 이제 자자. 들어와”


라고 하면 한 명씩 나에게 뽀뽀를 건네고 방으로 들어간다. 소윤이는 이제 ‘찐하게’ 해달라고 해도 그렇게 안 해 준다. 나의 애간장을 녹이는 정도의 뽀뽀만 하고 돌아선다. 시윤이는 아직 내 요구대로 해 준다.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가 아빠에게 뽀뽀하는 걸 보면 자기도 하겠다고 입술을 쭉 내밀고 다가온다. 일단 언니와 오빠가 하는 건 뭐든 다 하고 본다. 서윤이는 사정 봐 주고 그런 거 없다. 그냥 내 마음대로 한다. 충치고 뭐고 그냥 흡입이다.


아내는 10주간의 성경 공부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애들이랑 들어간 시간이 꽤 늦기도 했지만 성경 공부 시작 시간이 다 되어도 나오지 않았다.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봉봉?”

“응. 셋 다 안 자네”

“듣고 있어?”

“응”

“내가 들어갈까? 이제 곧 끝날 거 같은데”

“이제 거의 잠들었음”


아내는 곧 나왔고 열심히 강의를 들었다. 난 목장 모임을 마친 뒤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가 많지는 않았다. 아내가 오늘, 어제 미룬 설거지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다고 얘기했는데 괜히 미안했다. 물론 아내는 조금도 그런 의도는 없었다. 그래도 괜히 미안했다. 게다가 아내는 계속 정상 상태로 올라서지 못하고 있다. 몸이 아파서 체력이 달리는 건지 체력이 달려서 몸이 아픈 건지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굉장히 지쳐 있었다.


이런 아내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에게 일일이 다 말하지 않는 아내의 하루가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 본다. 아내가 오늘 저녁을 차리면서 유독 이런 말을 많이 했다.


“여보. 오늘은 아무것도 없어”


반찬은 김치찌개 딱 하나였다. 냉장고에 남아 있던 묵은(갓 싱싱함을 잃은)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였다. 아내는 오늘의 저녁상이 뭔가 초라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애들도 그냥 밑반찬이었다. 김치찌개 자체가 진짜 맛있기도 했지만 아내의 감춰진 하루를 상상하면 감히 불평할 수 없는 맛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진짜 맛있게 드시지? 엄마는 아빠가 이렇게 드시는 거 보면 기분이 너무 좋아”


물론 연출은 전혀 없었다. 난 정말 맛있었고, 또 아내의 표현에 의하면 ‘전혀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도 내가 먹는 걸 보면 괜히 한 번 먹어 보고 싶게 만드는’ 능력을 소유했다. 거기에 이 김치찌개’라도’ 준비하기 위해 애를 쓴 아내를 생각하니, 진짜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여보. 난 밥에 김만 있어도 얼마든지 돼지고기 아니 맛있게 먹을 수 있어. 김치찌개에는 참치보다는 돼지고기 아니 참치가 짱이지. 여보는 양 조절만 풍성하게 아니 정말 최고의 요리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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