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울산에서, 여름 휴가 1일차

21.07.03(토)

by 어깨아빠

오랜만에 굉장히 넓게 잤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다른 방에서 잤고, 아내는 바닥에 누운 서윤이 옆에서 잤고. 큰 침대에 나 혼자 누워 걸리는 것 없이 편하게 잤다. 당연히 아이들이 먼저 일어나서 놀고 있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잘 잔 것 같았다. 시윤이가 자다 말고 누나 옆에서 자겠다며 1층으로 내려왔다는 이야기를 얼핏 듣기는 했는데 큰일은 아니었던 것 같았다.


남의 집에서 기거할 때 가장 미안한 것이 끼니를 챙겨 받는 일이다. 특히 아침에는 더더욱.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아침을 오히려 남의 집에 가면 챙겨 먹게 된다. 게다가 이제 입이 다섯 개나 되어서 우리 한 식구 챙겨주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게 됐다. 미안하지만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구운 통밀빵과 루꼴라, 야채샐러드, 왠지 몸에 좋을 것 같은 시리얼 등이 아침 식사였다. 다들 잘 먹었다. 나도 잘 먹었다. 우리는 원래 아침을 안 먹으니 아침은 신경 쓰지 말라는 지난밤의 언행이 다 거짓인 듯 잘 먹었다. 원래 내 일생이 그런 걸 뭐. 싫어하지만 있으면 잘 먹고 웬만한 사람이 좋아하는 것보다 더 잘 먹고, 아침은 원래 안 먹지만 막상 있으면 잘 먹고 저녁처럼 잘 먹고.


아침 먹고 나서 집 앞의 태화강 공원으로 나갔다. 이번 울산 휴가의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날씨였다. 우리가 울산에 머무는 내내 비 예보가 있었다. 장마였다. 남부 지방부터 서서히 위로 올라온다고 했고, 우리가 딱 그 전선에 걸쳤다. 오늘 오전에는 웬일로 비가 오지 않길래 서둘러 강변으로 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사람이 바글바글했을 텐데 날씨가 안 좋다고 하니 다들 안 나왔는지 평소에 비해 한가한 편이라고 했다.


Y는 원터치 텐트를 폈다. 사실 그 텐트 안에 머문 시간은 매우 적었지만 텐트 자체가 주는 안도감이 있었다. 엉덩이 붙일 곳 없는 길바닥에서 원하면 언제든 쉴 곳이 있다는 든든함 같은. 아이들은 풀밭과 모래밭을 오가며 놀았다. Y의 첫째(아들, 8살)는 메뚜기를 잡겠다며 거침없이 풀밭에 들어갔다. 고향은 울산이지만 도시인의 삶을 사는 소윤이와 고향마저도 도시인 시윤이는 행동에 주저함이 있었다. 선뜻 풀밭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Y 주니어가 잡아온 메뚜기도 쉽게 손으로 잡지 못했다. 사실 아내나 나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워낙 벌레, 곤충을 무서워하고 난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무 거리낌 없이 막 잡을 만큼 많이 접하지 않고 자랐다. 삭막한 도시의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아주 생경한 시간이었다(울산도 물론 도시지만 수도권에 비하면 훨씬 자연친화적인 도시임에는 틀림없다).


언니와 오빠들이 신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는 동안 서윤이는 통밀빵에 집중했다. 통밀빵이 너무 맛있었나 보다. 거의 계속 한 손에는 통밀빵 쪼가리를 쥐고 있었다. 평소에도 빵을 보면 참지를 못한다. 감히 주지 않고서는 달래기가 어려울 정도로. 어미의 뱃속에 있을 때도 어쩌면 밥보다 더 많이 먹은 음식이 빵일지도 모르는 걸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팥 심은 데 팥 나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빵 심은 데 빵순이 나오는 거다.


갑자기 비가 후두둑 떨어졌다. 아이들은 좋아했다. 보통 비가 오면 외출이 종료되고 집에 들어가야 하니 아쉬워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비가 오기 전에도 이런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아, 도대체 비가 언제 오는 거야”


태화강 공원에 놀이터가 있는데 비가 오는 날에 우비를 입고 놀면 워터파크가 따로 없다는 이야기를, 울산에 오기 전에 L(Y의 아내)이 아이들에게 미리 해 줬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큰 기대를 품었고, 아침부터 온다던 비가 오지 않자 오히려 비를 기다렸던 거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가슴장화와 우비를 챙겨 입었다. 이 순간을 위해서 무려 가슴장화까지 챙겨왔다. 우비를 챙겨 입히고 다시 나올 때는 나랑 Y만 나왔다. 아내들은 집에 남았다. 서윤이도 집에 남았다. 낮잠을 잘 시간이라 아마 아내들에게는 잠시나마 휴식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아이들은 우비를 입었고 어떻게든 비를 더 맞으려고 난리였지만, 나와 Y는 그럴 수 없었다. 우산을 쓰고 아이들을 쫓아 걸었다. 비는 생각만큼 많이 쏟아지지 않았다. 커다란 분무기로 뿌리는 것처럼 부슬부슬 내렸다. 아이들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비가 더 세차게 내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 비가 왜 이렇게 조금 오는 거야”


워터파크 같은 놀이터를 기대했지만 그냥 축축한 놀이터 수준이었다. 아이들도 놀이터에서 노는 건 금방 흥미를 잃었고 오히려 모래 놀이를 더 많이 했다. 나와 Y는 편하게 있었다. 의자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며 건조한 듯 건조하지 않은 듯한 대화를 듬성듬성 이어갔다. 아이들이 많이 크기도 했고 가르침의 방향이나 가치관이 거의 비슷해서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다들 잘 크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꽤 한참을 놀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터라 배가 많이 고팠다. 아이들도 배가 많이 고팠는지 이제 정리하고 가자는 말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털고 일어섰다. 물어보지 않았는데 배가 고프다는 말도 먼저 많이 했다. 비가 많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쉬지 않고 부슬부슬 내렸기 때문에 은근히 축축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옷이 젖은 게 아니라 그런 기운을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배고픔과 함께 갑자기 피로가 확 느껴졌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Y의 첫째가 나에게 물었다.


“삼촌. 삼촌은 이렇게 비 오는 날에는 무슨 음식이 땡겨여?”


글로는 표현하지 못하지만 경상도 억양이 묻어 있었다. ‘땡기냐’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그러게. 이런 날에는 무슨 음식을 먹으면 좋을까? 00이는 먹고 싶은 거 없어?”

“저는 꽃마루 가고 싶어여(나중에 알고 보니 꽃마름이었다)”

“꽃마루? 거기가 어딘데?”

“아, 샤브샤브 먹는 곳이여”

“샤브샤브 좋지. 00이 샤브샤브 좋아하는구나. 또 다른 건 먹고 싶은 거 없어?”

“초밥이여. 울산초밥에 가면 회전초밥이 나오는데 그거 좋아해여”

“아, 그렇구나. 삼촌이 꼭 사 줄게”


Y는 나지막이, 하지만 진심 어린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아, 라면 같은 거 진짜 먹고 싶다”


곧 아내와 통화가 됐다.


“여보. 우리 이제 가고 있어. 점심은 어떻게 해? 애들이 엄청 배고프다던데”

“아. L이 생선 굽고 있어. 미역국이랑 생선 먹이면 될 거 같아”

“아, 그래? 알았어. 여보는 잘 쉬었어?”

“우리? 그럼. 아주 잘 쉬었지”

“점심은 아직 안 먹었지?”

“아, L이랑 나는 라면 끓여 먹었어”

“그래? 대박이네. 얼마나 여유로웠으면 둘이 라면까지 끓여 먹고”


Y에게 아내들의 라면 취식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들은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서윤이는 내가 따로 거실에 앉아서 먹였다. 의자에 앉혀 놓고 먹이지 않으니 계속 돌아다니고 장난치느라 먹이는데 오래 걸렸다. ‘밥은 돌아다니지 않고 한자리에 앉아서 먹어야 한다’는 대원칙 따위는 없었다. 막내의 또 다른 이름을 ‘원칙 파괴자’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아내나 내가, 막내가 원칙 파괴자가 되도록 방관 아니 오히려 돕는 면이 있다. 막내의 힘이다.


오후에는 K(내일 밤부터 신세를 지기로 한 또 다른 집)네 가족도 놀러 왔다. 그야말로 아이들이 ‘바글바글’했다. 고작 세 가정이 모인 건데 다들 저출산 시대를 역행하는 고출산의 삶을 사는 집들이라 순식간에 인구 밀도가 높아졌다. 아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쉬지 않고 놀았다. 1층이라 층간 소음 걱정이 없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공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침대에 가서 놀기도 하고 블록을 쌓기도 했다. 각 집의 첫째들은 자기들끼리 잘 어울려 놀았고, 시윤이는 첫째 무리에 속해서 놀다가 힘에 부치면 떨어져 나와 놀기도 했다. 둘째들끼리 어울려 노는 건 많이 못 봤다. 오히려 각 집의 둘째들이 막내들 때문에 민원을 제기하는 일은 많았다. 아직 말이 통하지 않는 파괴왕 서윤이 때문에 괴로운 시윤이의 민원도 많았고, 말은 충분히 통하지만 막내의 횡포에 시달리는 Y의 둘째(딸, 6살)의 민원도 많았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색종이로 딱지를 접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다들 딱지 접기에 집중했다. 그걸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나도 딱지 하나를 접어서 아이들에게 외쳤다.


“자, 삼촌한테 딱지치기 도전할 사람? 대신 삼촌이 이기면 그 딱지 삼촌이 갖는 거야. 반대로 삼촌을 이기면 삼촌 딱지 너희가 갖는 거고”


실력적으로 내가 더 우위에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난 그저 선언만으로 최고 권력자의 위치를 선점하고 아이들을 도전자로 만들었다. 다소 사행성의 기운이 있는 놀이라는 게 약간 마음에 걸렸지만 일단 애들이 좋아하길래 그대로 진행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일단 ‘지면 뺏긴다’는 규칙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시윤이는 ‘져도 빼앗아 가지는 않을 거죠?’라는 식의 자비를 기대했다. 소윤이는 머리로는 받아들였지만 마음은 그렇지가 못했다. 나에게 도전했다가 패배한 뒤 내가 딱지를 가지고 가니 울어 버렸다. 바로 다시 돌려줬다. Y의 첫째는 가장 많이 도전했고 가장 많이 잃었다. 급기야 가진 딱지를 모두 탕진하자 소윤이같은 딱지 자산가에게 대출을 시도했다. 대출받은 딱지도 곧 패배로 이어졌고 Y 주니어1 의 부채는 걷잡을 수없이 늘어났다. K의 첫째는 그에 비하면 신중한 편이었다. 도전을 하다가도 마지노선에 다다르면 멈춰 섰다. 그러면 Y의 첫째가 슬며시 다가가서


“00아 나 딱지 한 장만. 내가 이겨서 다시 찾아줄게”


라며 또다시 대출을 시도했다. 아이들은 딱지를 탕진하면서도 나의 과장된 몸짓과 음성에 즐거워했다. 역시 난 대중의 환호가 있을 때 힘이 나는 유형이다. 팔이 뻐근하고 땀이 주룩주룩 흐를 정도로 딱지치기에 힘을 쏟았다. 그렇게 한창 재밌게 놀다가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빠져나왔다.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다. 휴가였지만 꼭 해야 하는 모임이었고, 내가 맡은 게 있었다. 준비를 하기 위해서 잠시 방으로 들어왔다. 밖에서는 딱지 권력자의 퇴장을 아쉬워하며 언제 다시 등장하는지 궁금해하는 소리가 이따금씩 들렸다.


온라인 모임은 우리 아이들도 함께 참여해야 했다. 방에서 노트북을 켜고 진행을 했는데 시윤이는 낮에 다리에 모기 물린 곳이 너무너무 가렵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시윤이는 원래 가려움, 통증, 불편함 같은 걸 유독 못 참는다. 불편함은 어떻게든 해결해 주면 되지만 가려움이나 통증은 딱히 방법이 없을 때가 많다. 오늘도 그랬다. 그래도 보통은(아내랑 있을 때는) 짜증이나 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꾹 참았다. 꾹 참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기특했다. 아내도 시윤이의 태도를 알아차리고 아낌없이 칭찬을 했다.


온라인 모임을 마치고 나오니 Y의 아이들은 자러 들어가고 없었다. K네 부부도 집으로 돌아갔다. 딱지 권력자의 복귀를 간절히 기다리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자러 들어갔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도 잘 준비를 하고 아내와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울산으로 내려오기 전에, Y와 연락을 할 때 Y가 먼저 플스 이야기를 꺼냈다. 내려오면 플스방에 한 번 가자면서. 그게 오늘이었다. 어차피 애들은 다 자고 있었다. Y와 함께 플스방으로 갔다. 몇 년 만의 플스방인지. Y는 3-4년 전에 나랑 갔던 이후로 처음이라고 했다. 플스방에 ‘꼬라박은’ 돈을 모았으면 플스방을 차렸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친구들과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승부의 세계에 봐주기는 없다. 항상 최선을 다한다. 그게 상대를 향한 예의다. 아직 내 엄지와 검지가 죽지 않았다는 걸 느낄 만한 결과를 내고 돌아왔다.


아내와 L은 오랜만에 오붓하게 수다를 떨고 있었다(평소에도 카톡으로 수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지만 대면 수다는 또 특별하니까). 차를 다른 곳에 옮겨 대느라 잠시 나갔다 오자마자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왜 전화 안 받아. 계속했는데”

“아 그래? 왜?”

“아이스크림 좀 사 오라고 하려고 했지”

“아 그랬어? 나갔다 올까?”

“어”


기꺼이 귀찮음을 감내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났으니 둘러앉아 조금 더 대화를 나눴다. 중간에 서윤이가 깨서 울기도 했고 또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 아내의 말에 내가 들어가서 재우기도 했다. 서윤이는 아빠가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고도 순순히 다시 잠을 청했다. 이럴 때 기분이 너무 좋다. 소윤이, 시윤이가 어릴 때는 느껴보지 못한 아빠를 향한 수용이었다. 물론 서윤이는 오래가지 않아 다시 깨기는 했다.


“여보. 내가 서윤이 옆에서 잘게”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가 누운 좁은 침대 위로 갔고, 난 서윤이 옆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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