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울산에서, 여름 휴가 3일차

21.07.05(월)

by 어깨아빠

울산의 성자였던 K는 이제 인간계를 넘어 신계에 속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만삭인 그의 아내를 대신해 새벽부터 밤까지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일했다. 다들 경탄을 금치 못했다. 원래도 부지런하고 섬세한 사람이었지만, 1년 사이에 더 발전한 느낌이었다. 아이폰 6가 나왔을 때 ‘이제 스마트폰의 혁신과 발전은 더 이상 없다’라고 생각했는데 상상하지 못한 기술의 진보를 담은 차기작이 나왔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다.


끼니 때마다 애들 밥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밥까지 준비하고, 먹고 나서는 뒤치다꺼리도 하고. 끼니도 대충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는 구운 식빵과 베이컨, 베이크드빈에 커피까지 곁들인 미국식 정찬을 냈다. 참고로 미국 본토에는 가 본 적이 없어서 진짜 이렇게 먹는지는 모르겠다. 느낌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다. K는 정말 앉아서 쉬는 시간이 없었다. 먹고 나서 정리할 때도 그냥 대충 하는 게 아니라 언제든 쿠킹스튜디오 촬영이 가능할 정도의 상태로 되돌려 놨다. 백미는 아내들이 아이들 낮잠을 재우러 들어갔을 때였다. 한참 동안 주방을 정리하고 와서는 ‘그제서야’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잠시 후 소리가 들렸다. 몸을 닦는다고 하기에는 굉장히 거칠고 큰 소리였다. 낮잠을 자지 않고 거실에 남아 있던 K의 첫째에게 말했다.


“00아. 아빠 뭐하셔?”

“아빠. 청소하고 계셔여”


참 반성할 게 많은 휴가였다. 물론 나의 강점은 집안일보다는 아이들과 노는 데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뭔가 고개가 숙여지는 느낌이었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샤워 아니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나온 K는 곧바로 베란다로 나가더니 옷이 잔뜩 담긴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건조가 완료된 빨래였다. K는 아무렇지도 않게 앉아서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 사이에 빨래는 언제 돌렸다는 말인 거지? 아마 언젠가 기술이 정말 많이 발전해서 가사 로봇이 상용화된다면 이런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다.


K의 첫째(아들, 7살)만 낮잠을 자러 들어가지 않았다. 일종의 Home Advantage 같은 거였나. 아무튼 꽤 이른 시간(점심시간 전)에 엄마들이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들어갔다. 아내는 특유의 카리스마 혹은 능력을 소유한 L 의 힘을 빌려 소윤이도 낮잠을 자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여보. 그럴 리 없어. 소윤이가 이 시간에 잘 리가 없지”


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소윤이는 가장 먼저 방에서 나왔다. 한 30여 분이 지난 뒤긴 했다. 소윤이도 엄청 피곤해하면서 하품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잠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대신 L 이 먼저 잠들었다. 아내들도 애들도 모두(소윤이와 K의 첫째만 빼고) 낮잠을 잤다.


난 약간의 두통이 있었다. 뒷목부터 뻐근한 걸 보니 수면 부족이 원인인 듯했다. 다들 낮잠을 잘 때 조금이라도 잤으면 좋았을 텐데 돕는 것도 없이 괜히 미안해서 그러지도 않았다. 그냥 앉아서 K의 근면하고 자주적인 집안일을 대하는 태도에 감탄만 하고 있었다. 아주 기분 나쁜 은근하고 미세한 통증이었다. 타이레놀을 한 알 먹었다.


모두 깨고 나서 점심을 먹은 뒤에는 K가 다니는 교회에 갔다. 뭔가를 하러 간 건 아니었고 그냥 놀러 갔다. 비가 계속 내려서 어디 야외를 가는 건 어려웠다. 실내면서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좋은 곳을 고민하다 보니 고르게 된 장소였다. 작년에 울산에 왔을 때도 갔었다.


아내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남편들끼리 점심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김밥에 컵라면은 어떠냐는 이야기가 나왔고 다들 적극 찬성했다. 아이들에게도 김밥을 먹이기로 했다. 아내들도 컵라면에 좋은 반응을 보였다.


아주 넓은 공간이라 아이들이 뛰어놀기에 좋았다. 들어가자마자 잠시 공놀이로 아이들의 흥을 돋우어줬다. Y는 원래 출근을 해야 했지만 어제 늦은 취침으로 인한 피로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 오후에는 회의를 하러 나간다고 했는데 L(Y의 아내)의 부탁(혹은 압박)으로 화상 회의로 변경을 했다고 했다. 다시 한번 Y가 참 착하다고 생각했다. Y는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화상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2층의 별도의 장소로 갔다. 아내들이 김밥을 주문했고 난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사 왔다.


이미 점심시간이 많이 지난 때였고 Y가 얘기한 회의 시간이 되기는 전이라서, Y에게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컵라면을 갖다주려고 물을 미리 부었다. K가 Y에게 전화를 했는데 회의하기 전에 먹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다. 이미 물은 부어 놓았고 김밥은 오지 않았다. 김밥이 언제 올지 모르니 무작정 기다리면 라면을 불어 터질 테고. 어쩔 수 없이 그 라면은 내가 먼저 먹기로 했다. K와 나는 주방이었고 아내들과 아이들은 아직 옆 공간이었다. 주방에 서서 컵라면을 먹었다. 소윤이를 비롯한 아이들 몇 명이 와서 묻곤 했다.


“삼촌. 삼촌은 왜 혼자 먼저 먹어여?”

“아빠. 아빠는 왜 여기서 먹어여?”


아 그게 말이야 이게 사실은 Y 주려고 물을 미리 부었는데 회의 준비 때문에 바빠서 못 먹는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김밥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라면이 불어서 맛이 없어지니까 삼촌(아빠)도 사람들이랑 같이 먹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먼저 먹는 거야 심지어 이건 내가 고른 맛도 아니었어


라고 구구절절 설명할 수는 없었다.


“아, 라면 물을 미리 부어서”


정도로 간단히 설명했다. 라면을 다 먹었을 때쯤 김밥이 도착했다. 주방에 들어온 아내도 날 보며 이렇게 물었다.


“여보. 먼저 먹었어? 왜? 배고파서?”

“아니. Y 주려고 물을 부었는데 시간이 없다고 해서 불을까 봐 먼저 먹었어”


그래도 먼저 라면을 먹은 덕분에 아이들과 함께 앉아서 김밥을 먹으며 서윤이도 점심을 먹였다. 서윤이도 김밥이었다. 밥이랑 김, 당근 정도만 먹기 좋은 양으로 나눠서 먹였다. 이때도 두통은 여전했고 피로감은 아주 짙어졌다. 아이들은 3층에 올라가서 따로 놀았다. K와 내가 한 번씩 가서 잘 놀고 있는지 살펴봤는데 다들 큰 갈등 없이 잘 놀았다. 덕분에 다소 여유가 찾아왔다. 아내들은 쉼 없이 수다를 떨었고 나와 K는 한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K는 피곤을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았다. 그럴 만했다. 나도 졸았다. 아예 의지를 가지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이게 두통 완화에 꽤 큰 도움이 됐다.


탁구대가 있어서 탁구대를 펴고 잠시 탁구도 쳤다. 나랑 K도 치고, 회의를 마친 Y도 치고, L도 치고, Y의 첫째도 치고. 오랜만에 치는 탁구라 그런지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생각보다 재밌었다. 아이들이 있으니 그리 오래 치지는 못했지만 다들 활기찼다. 탁구를 치고 나니 두통이 싹 사라졌다. 극도에 달했던 피곤함도 좀 사라진 느낌이었다.


서윤이는 대체적으로 기분이 좋았지만 당연히 엄마를 찾으며 우는 일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일부러 더 가서 안아주고 그랬는데 의외로 나에게 안겨도 금방 진정이 됐다. 사실 집에 있을 때는 잘 시도하지 않은 일이었다. 울면 당연히 아내에게 건넬 때가 더 많았다. 그래야만 진정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건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나 보다. 서윤이는 의외로 내 품에서도 금방 안정을 찾았고 꽤 한참 동안 머물기도 했다. 일단 안길 때 저항하는 게 아니라 ‘폭’ 안기는 느낌이었다. 이 느낌이 너무 좋다. 내 오른쪽 어깨에 자기 얼굴을 힘없이 떨구며 자기 몸 전체를 나에게 맡기는 듯한 그 느낌이 정말 좋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이만큼 어렸을 때는 이런 일이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난 신이 나서 서윤이가 울 때마다 가서 안아주고 내 어깨를 내줬다. 하나도 안 힘들었다. 힘들었지만 힘든 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4번 5번 척추가 닳는다 해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저녁은 바닷가 근처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울산에 살 때도 갔었고 작년에도 갔었다. 갈 때마다 맛있는 곳이었다. 바닷가 근처인데다가 외국인들도 많아서 마치 외국의 어느 휴양지에 와 있는, 기분 좋은 착각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또 참고로 외국이라고 가 본 나라는 한 손가락으로도 충분히 셀 수 있다. 외국 어느 휴양지의 풍경이 실제로 어떤지는 모른다.


자리가 꽉 차서 잠시 기다려야 했다. 바다가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들은 눈앞에 바다를 두고도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 났다. 남편들은 아이들과 함께, 아내들은 따로 나란히 앉아서 기다렸다. 셋이 앉아 있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주고 싶었다. 예상은 했다.


‘분명히 또 서로 자기가 제일 늙고, 제일 못 나왔다고 다투겠지’


역시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다들 자기가 제일 못난이라면서 몇 번이나 재촬영을 요구했다. 뭐를 달리하고 찍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순순히 재촬영 요구에 응했다. 그래도 10년 아니 10년도 필요 없지. 1년 뒤에만 봐도 ‘이때는 이랬네’라며 그리워할지도 모를 순간이었다. 저출산 시대를 역행하는 고출산 역군들이 아이들 없이 자기들끼리 모여 친구처럼(실제로 친구지만)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괜히 흐뭇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음식을 꽤 많이 시켰지만 그렇다고 엄청 넉넉하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만 그런 건가 싶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K도 많이 안 먹었다. 부모들은 다들 좀 그런 느낌이었다. 애들이 워낙 잘 먹으니까 섣불리 속도를 내지 못하고 조절하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서윤이도 피자를 조금씩 잘라서 줬는데 아주 잘 먹었다.


Y 가족은 저녁을 먹고 나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가족만 K 가족의 집으로 갔다. 아내에게 내가 애들을 재우겠다고 했다. 아내가 들어가면 왠지 바로 잠들 것 같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갑작스러운 비보에 침울해졌지만 잠시였다. 서윤이는 딱 10초 크게 울더니 금방 조용해졌다.


K의 아이들과 우리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난 뒤 2차전, 아니 3차전인가 4차전인가. 아무튼 야간 경기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K만 바빴다. K는 우리를 위해 새우 튀김, 가지 튀김, 애호박 튀김, 파프리카 튀김을 만들었다. 그 야밤에. 그것도 엄청나게 수준 높은 모양새와 맛으로. K, 그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인간계를 떠나 신계에 사는 그의 헌신 덕분에 맛있는 수제 야식과 함께 오늘도 아주 늦은 시간까지 수다의 불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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