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6(화)
아침에 내가 늦게 일어나면 아내라도 아침에 K의 아침 준비를 도왔어야 했는데 서윤이가 아내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긴, 비겁한 변명이다. 내가 늦게 일어나니까 그렇지 뭐. 물론 그렇다고 엄청 늦은 건 아니지만서도. K는 새벽에 일어나서 자기 일까지 했다고 했다. 오랜 훈련으로 다리와 폐를 단련한 마라토너 같은 꾸준함이었다.
점심에는 약속이 있었다. 신혼 때 우리를 자식처럼 대해 주시고 챙겨주셨던 권사님을 만나기로 했다. 아내와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분이지만 애들한테는 그저 엄마, 아빠가 아는 권사님 정도였을 거다.
“아빠. 우리는 안 가면 안 돼여?”
애들이 권사님을 꼭 뵈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 얘네를 어디 두고 갈 데가 없으니 데리고 가는 거였다. 부모님에게도 죄송해서 한꺼번에 셋은 못 맡기는데 남의 집에 셋을 떨구고 가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K 가 나에게
“아이 거 참.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오!!!”
라며 고함을 쳐도 할 말이 없었을 거다.
권사님께서 만나자고 한 장소가 숯불에 고기 구워 먹는 곳이라 조금 걱정이 됐다. 서윤이를 데리고 너무 정신없는 건 아닐까 싶었다. 다행히 우리의 걱정은 걱정으로 끝났다. 서윤이는 가는 동안 차에서 잠들었는데 고기를 다 먹고 다시 차에 탔을 때 깼다. 덕분에 엄청 평화롭게 식사를 했다. 소윤이랑 시윤이도 고기를 엄청 잘 먹었다. 하긴 애들도 이렇게 고기답게 구워 먹는 건 오랜만이었다. 맛있었겠지.
밥 먹고는 잠시 카페에 들렀는데 권사님의 딸도 잠시 만났다. 권사님의 딸은 아내랑 친구다. 우리가 신혼 때 아내는 임용고시 수험생이었고 권사님 딸도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둘은 여러 차례 함께 만나 공부를 했다. 집에서도 하고 카페에서도 하고. 그랬는데 이제 아내는 아이 셋의 엄마가 됐고 권사님의 딸도 첫째를 낳고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어떤 날은 새벽에 너무 힘들어서 아내의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육아의 고충을 나누기도 했다고 했다. 새삼 세월이 빠르다고 느꼈다. 어른들이 왜 ‘젊은 날의 추억을 먹고 사는 게 인생’이라고 말하는지 아주아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권사님과 헤어지고 나서 다른 카페에서 K 가족과 다시 만났다. 아니 만났다는 표현보다는 다시 합체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려나. 점심은 어떻게 했냐고 물었더니
“아, 라면 끓여 먹었어요”
라고 K 가 대답했다. 뭔가 많은 의미가 담긴 라면이었을 것 같았다. 대접에 지친 주인 부부가 오랜만에 대충 한 끼 때우며 여유를 느낀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그렇게 극진히 매끼 차려 주더니 본인들만의 식사에는 라면이라니. 왠지 그 라면이 맛이 없지는 않았을 거 같았다. 오히려 근래에 보기 드문 맛 좋은 라면이 아니었을까.
카페에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고기반찬이 넘쳐났던 식당에서는 자느라 점심을 못 먹은 서윤이에게 점심을 먹였는데 그렇게 잘 먹지는 않았다. 하긴 잘 안 먹을 만했다. 거의 맨밥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안 먹는 녀석에게 먹이는 건 몸과 마음의 소모가 꽤나 큰일이다. 그 카페가 커피가 맛있는 곳이라고 했는지 빵이 맛있는 곳이라고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잠시 백화점에 들렀다가 L(Y의 아내)을 데리러 L의 집으로 갔다. 어제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잔 Y 가족은 오늘 다시 K 집에서 함께 자기로 했다. 1년 만에 만나는 아내들의 깊은 유대와 그리움 때문이었다. Y는 퇴근 후 바로 식당으로 오기로 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K 의 차를 타고 저녁 먹을 식당으로 갔다. 아이들이, 특히 우리 아이들이 자기 차 안 타고 남의 집 차를 타고 싶어 해서 복잡해졌다. 아무튼 우리 가족, K 가족, Y 가족은 다시 식당에서 만났다.
정신없기는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서윤이를 무릎에 앉히고 밥을 먹었다. 바닥에 앉아서 먹는 자리였고 부스터가 없었기 때문에(서윤이는 부스터를 쓴 적이 없다)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여기서도 서윤이 먹을 게 마땅치 않았다. 서윤이의 입을 홀릴 만한 무언가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전혀 없었다. 내 앞에 앉은 아내가 엄청 빠르게 식사를 하는 게 보였다. 거의 먹지 못하는 나를 위한 배려의 숟가락질이었다. 아내와 교대를 하고 순식간에 내 몫의 밥을 먹어치웠다.
저녁을 먹고 나서 아내들은 장을 보고 집으로 갔고 남편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K 의 집 근처에 있는 교회로 갔다. 거기 카페가 있었는데 애들이 놀기 좋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들이 놀라고 만들어 놓은 공간에 커피도 파는 느낌이었다. K 의 첫째가 그저께부터 거기를 가자고 말했었다. 공간은 단순했다. 키즈카페라고 하기에는 좀 부족한 것이 그냥 커다란 짐놀이터 하나만 있는 곳이었다. 아이들도 음료를 하나씩 시켜야 한다고 해서 뽀로로 주스를 하나씩 사 줬다. 그게 제일 쌌다. 모르긴 몰라도 다들 평소에는 이런 걸 거의 안 먹을 거다. 그래서인지 다들 받자마자 벌컥벌컥 들이켰다.
별것 없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정말 신나게 잘 뛰어놀았다. 특히 첫째들이 참 행복해 보였다. 항상 동생을 챙겨야 하고 지켜야 할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은 첫째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첫째끼리 모여서 원 없이 뛰어노니 너무 좋았나 보다. 시윤이도 처음에는 누나가 있는 첫째 무리(소윤이를 포함해서 세 명)에 껴서 놀다가 어느샌가 동생들이랑도 놀고, Y의 둘째랑도 놀고 그랬다. 아이들은 이렇게 저렇게 모여서 놀다가 다 같이 놀기도 하고 그랬다.
막내부터 최고령자까지 모두 어울려 얼음땡을 하기도 했다. 이때가 아이들이 최고조로 흥분한 때가 아니었나 싶다. 마음껏 소리 지르고 뛰고. Y의 첫째가 술래가 되었는데 나머지 아이들이 Y 주니어 1 의 옷을 사정없이 잡아당겼다. 그 옷은 아내가 울산 방문 선물로 사 가지고 간 거였고, 오늘 처음 입은 거였다. 보는 내가 안타까웠다.
‘아, 저러면 목 다 늘어날 텐데’
Y 주니어 1 의 쇄골이 다 드러날 정도로 잡아당겼다. 너무 사정없이 잡아채니까 좀 위험하기도 했다.
“아, 얘들아. 잡아당기지는 말고 톡 치는 걸로 하자. 알았지?”
뒤늦게 방법을 바꾸긴 했지만 Y 주니어 1 의 옷은 이미 오픈넥 내지는 오픈숄더처럼 바뀐 뒤였다. 그래, 여름이니까 통풍 잘 되고 좋지 뭐.
아이들은 신이 나니까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다들 찬양을 많이 들으니 신이 날 때 부르는 노래도 모두 찬양이었다. 가락과 박자는 찬양인데 느낌은 뽕짝이었다.
“춴국은 마취 봐테 괌추윈 보화아. 뙁 속에 묻췬 아무둬 뭐르는 붜석”
아빠들은 앉아서 아이들이 노는 걸 지켜보며 이따금씩 간헐적인 대화를 나누곤 했다. 모든 아이들이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열심히 놀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부지런히 씻겨서 재웠다. 어느새 어른들의 마지막 밤이었다. 서둘러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K 는 오늘도 저녁에 튀김을 했다. 거기에 스테이크도 굽고. 어제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다. K 의 입에서 처음으로 ‘힘들다’는 류의 표현이 등장했다. 그럴 만했다. 명절에 전 부치는 어머니들의 심정을 알 것 같다는 K 의 말에 좀 많이 미안하긴 했다. 그래도 그가 준비한 튀김과 스테이크는 너무 맛있었다. 그 덕에 오늘도 즐겁게 아주 늦게까지 수다를 떨었다.
이렇게 모이면 대체로 그러는 것처럼, 아내가 눈을 희번덕거리는 증상을 보이자 자리가 정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