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울산에서, 여름 휴가 4일차

21.07.07(수)

by 어깨아빠

K 의 주니어 2 의 생일이었다. 우리 모두 어제 새벽 3시까지 수다를 떨었는데, 그때까지 미역국은 없었다. 아침에는 미역국이 있었다. K 든 K 의 아내든 누군가 끓였을 테지만 왠지 모르게 K 가 끓였을 것 같았다. 아무런 단서나 근거는 없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아침 먹고 다들 모여 K 주니어 2 의 생일을 축하해 줬다. 아이들은 열심히 축하해 준 대가로 초코 케이크를 한 조각씩 받아먹었다. 다들 어찌나 잘 먹던지. 평소에 이런 걸 막 먹이는 집들이 아니다 보니 애들이 간만에 찾아오는 기회를 너무 즐거워하는 듯했다.


K의 집에서는 애들한테 책을 참 많이 읽어줬다. 누군가 한 명이 슬쩍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 달라고 해서 읽어주면 하나, 둘 모이면서 모든 아이들이 나를 둘러쌌다. 남의 집이고 남의 아이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이미지 관리를 위해 더 각별히 읽어주지는 않았다. 평소에 집에서 읽어주는 것처럼 연기를 해가며 읽었다. 다만 집에서는 권수가 야박했다. 두어 권 읽고 나면


“아, 이제 조금 쉬었다 나중에 읽을까?”


할 때가 많다. 물론 '나중에’는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아이들이 가지고 오면 가지고 오는 대로 읽어줬다는 차이는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보면 ‘아빠가 왜 저렇게 책을 끝없이 읽어주시지?’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왜 자꾸 읽은 책을 바로 또 읽어달라고 할까. Y 의 막내가 좋아하는 ‘아담과 하와’는 앉은 자리에서 대여섯 번은 읽은 것 같다.


“00아. 이거 삼촌이 너무 많이 읽어서 지겨운데 다른 것 좀 읽을까?”

“이거. 이거. 0이는 이거 일글래애에에”

“그래? 그럼 딱 한번만 더 읽자?”


아무튼 책 많이 읽어줬다.


Y 는 출근을 했고, K 도 점심시간쯤 일이 있어서 나갔다. 여전히 비는 세차게 내려서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그냥 집에 있었다. 아이들은 어제 갔던 카페에 가고 싶어 했지만 가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집에서 늘어져 있느라 그랬나. 난 서윤이를 많이 안아줬다. 엄마한테 가지 않고 나한테 안겨도 진정이 되는 서윤이를 보니 너무 신이 나서 시도때도 없이 안아줬다.


소윤이는 애가 뭔가 계속 침울했다. 그 카페에 못 가게 되어서 (사실은 가기로 한 게 취소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못 간다는 사실 자체가) 슬펐던 게 시작이었다. 보통 때와 다르게 한참 동안 회복을 하지 못하고 혼자 우울하게 있었다. 아침인지 점심인지 먹을 때 내가 보기에는 소윤이가 섭섭할 수도 있는 일이 좀 있었는데 혹시 그것 때문인가 싶어서 물어봤는데


"아니여. 그건 아무렇지 않은데여?"


라고 대답했다. 약간 의외긴 했지만 정말 그런 거 같았다. 졸려서 그랬는지 카페 못 간 게 정말 그렇게 속상했는지 아무튼 한참을 축 처져 있었다. 물론 나중에는 다시 활력을 찾고 놀기는 했다.


아무튼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어느덧 돌아가야 할, 진짜 우리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다시 짐을 챙기는데 소윤이의 가방이 묵직했다. 거기에는 성경책, 공부할 책, 필사책 같은 게 들어 있었다. 휴가 기간 중에 성경책만 딱 한번 꺼냈다. 원래 여행의 묘미가 그런 거지 뭐. 일단 다 챙기고 보는 거지. 나도 챙긴 옷은 한가득이었는데 정작 입은 옷은 두어 벌 정도였다. 건조기가 있으니 하루만에 빨래가 끝나서 굳이 새 옷을 꺼낼 필요가 없었다.


출근했던 Y 는 반차를 내고 점심시간이 지난 뒤 돌아왔다.


집에서 나와서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카페에서 한 번 더 회동을 가졌다. 일하러 갔던 K 도 다시 그 카페로 왔다. ‘징글징글하게 안 간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들은 커피와 빵, 아이들은 빵을 먹었다. 아내들의 주도로 철저한 배급제 하에 빵을 분배했지만 아이들은 성에 차지 않는 듯 계속 더 달라고 했다. 애들이 원하는 만큼 빵을 먹이려면 거기에 있는 빵을 전부 샀어야 할지도 모른다.


거기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아이들은 차에 타느라 바빴고, 남편들은 애들 태우느라 바빴고, 아내들만 석별의 정을 깊게 나눴다. 아내는 괜히 눈물이 났다고 했다. 하긴 1년에 한번 보는 사이니 헤어질 때 아쉽긴 하지. 난 머무는 동안 너무 고생을 시켰나 싶은 생각에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른 해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시윤이는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서윤이는 타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엄청난 기세로. 서윤이는 카시트에서 우는 일이 거의 없는데 정말 맹렬하게 울었다. 배가 고픈 것 같았다. 시윤이가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좀 고민이 됐지만 서윤이의 울음이 진정될 것 같지 않아서 출발한 지 한 시간 만에 휴게소에 진입했다. 서윤이는 차가 멈추자마자 울음을 그쳤고 내가 안아주겠다고 하니 바로 웃었다. 휴게소에서 밥도 엄청 잘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은 돈까스를 같이 줬는데 쉴 새 없이 받아먹었다. 아내랑 나는 컵라면을 하나씩 먹었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출발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한참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윤이와 서윤이는 물론이고 소윤이도 푹 잤다. 애들도 많이 피곤하긴 했나 보다. 10시 30분쯤 집에 도착했다. 부지런히 아이들을 씻기고 아내가 데리고 들어갔다. 아내도 피곤했는지 다시 나오지 못하고 잠들었다가 아주 뒤늦게 다시 나왔다.


울산에서의 휴가는 끝났지만, 내 연차는 내일까지다. 이게 정말 신의 한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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