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8(목)
올 여름 휴가를 내면서 잘한 일이 두 가지다. 하나는 월화수목 휴가를 낸 것. 또 하나는 집으로 돌아온 수요일이 아니라 목요일까지 휴가를 낸 것. 장거리 운전 후 바로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과 금요일 하루만 출근하면 다시 주말을 맞는 기쁨을 모두 누리는 게 가능했다. 사실 조삼모사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 많이 노는 ‘기분’이라도 느끼는 게 낫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쉬워했다. 아빠가 쉬는 날이었지만 오후에 처치홈스쿨 모임이 있어서 딱히 뭘 할 수는 없었다. 모임을 우리 집에서 하는 거라, 나는 서윤이를 데리고 나가기로 했다. 시윤이는 아빠랑 나가는 서윤이를 부러워했다.
서윤이는 낮잠을 안 잤기 때문에 일단 차에 태우면 금방 잘 게 분명했다. 재우고 난 뒤에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카페에 가서 밀린 일기를 쓸 건지 아니면 조금 멀리 쇼핑몰에 갈 건지. 차에 탈 때까지 고민을 하다가 출발하면서 결정했다. 쇼핑몰에 가기로 했다.
서윤이는 바로 잠이 들었다. 서윤이는 자고 있었지만 서윤이랑 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서윤이랑 둘이 있어서 기분 좋은 사람치고는 쇼핑몰에 도착해서 너무 조심스럽게, 서윤이가 깨지 않도록 유모차에 옮겼다. 다행 아니 아쉽게도 서윤이는 잠에서 깨지 않고 계속 잤다.
날이 무척 더웠다. 올여름에는 정말 정확히 장마 기간과 겹쳐 휴가를 다녀왔다. ‘울산에서도 이런 날씨가 하루라도 있었다면 물에도 들어가고 그랬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히는 후텁지근한 날씨였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기는 했지만 혼자 여유롭게 구경하니 구경할 맛이 났다. 물론 총알이 없어서 사고 싶은 걸 다 사지는 못했다. 아니지. 정확히 말하자면 딱 하나 샀다. 민소매티셔츠. 축구할 때 입는 반바지, 축구할 때 입는 타이즈, 축구할 때 입는 반팔 티셔츠도 사고 싶었지만, 잘 참았다. 울산에서 올라오자마자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급증해서 이제 당분간 축구도 못할 것 같았다. 가장 큰 위기는 축구화였다. 정말 매력적인 가격의 축구화가 있어서 몇 번을 고민했지만, 역시 꾹 참았다. 사실 참은 게 아니라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다. 용돈쟁이의 용기는 통장의 잔고와 비례한다.
아내에게서 처치홈스쿨이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놀랍게도 서윤이는 거의 2시간 동안 계속 잤다. 서윤이랑 데이트 너무 즐거웠다. 서윤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손가락을 빨았다. 가끔씩 웃어주기도 하고. 무척 편안해 보였다. 서윤이도 아빠를 좋아하는 게 분명하다.
저녁에는 소윤이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월남쌈을 먹으러 가기로, 어제저녁에 이미 정했다. 휴가의 마지막 날, 처치홈스쿨을 하느라 아빠랑 시간을 못 보냈지만 나름의 선물로 준비한 회심의 한 방이었다. 나도 덩달아 설레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집은 난리통이었다(난리통은 굉장히 순화된 표현이었다).
시윤이가 난리의 핵심이었다.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시윤이가 또 꼭지가 돌아서 (조금 과격하다 싶지만 시윤이의 당시 모습을 떠올리면 이것도 순화시킨 표현이다) 바락바락 악을 쓰고 있었다. 휴가 때는 단 한 번도 이런 모습이 없었다. 이게 아내가 억울해(?) 하는 부분이다. 아빠 앞에서, 남들 앞에서는 전혀 그러지 않다가 엄마랑 둘이만 있으면 꼭 이런다는 거다.
오늘은 마침 내가 들어갔는데도 태도가 누그러지지 않길래 내가 데리고 들어가서 훈육을 했다. 시윤이는 평소에 내 앞에서는 보이지 않는 과격한 행동이나 모습을 보였다. 아내가 ‘자기 앞에서만’ 보인다며 전해주던 그 모습들이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사실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도 스치고. 얘가 도대체 왜 이럴까 하는 생각도 하고. 그 짧은 시간에 진짜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두어 시간 집에 없었다고 그 새 이런 일이 생기나 싶어서 좀 짜증도 났다.
꽤 오래 걸렸다. 아내는 식당에 전화해서 두 번이나 예약을 미뤘다. 영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즐거운 휴가의 마무리를 위해 일부러 잊고 애써 평상시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시윤이는 훈육이 끝나고 나면 바로 괜찮아진다. 진짜 속마음이야 알 길은 없지만 말하고 행동하는 건 평소처럼 한다. 식당에 가서도 다들 잘 먹었다. 역시나 월남쌈은 애 셋이랑 먹기에 쉽지 않은 음식이다. 월남쌈이었지만 쌈을 싸 먹을 여유가 쉽게 생기지는 않았다. 서윤이가 크게 한몫을 한다. 서윤이가 막 울고 떼쓰고 그러는 건 아니다(그러고 보니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대신 정말 쉬지 않고 계속 입에 넣어줘야 한다.
소윤이는 월남쌈을 정말 진심으로 열심히 잘 먹었다. 소윤이가 월남쌈 먹자고 노래를 부르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먹고 싶고 좋아해서 그런 거라는걸, 월남쌈을 먹을 때마다 느낀다. 덩달아 시윤이도 잘 먹었다. 밥 먹고 나서는 잠시 카페에도 들렀다. 바로 집에 가기 아쉬우니 야외 자리에서 좀 놀기도 하고 쉬기도 하는 게 의도였다. 막상 밖에 있어보니 감히 그런 여유를 즐길 날씨가 아니었다. 엄청 더웠다. 그래도 왔으니 잠깐이라도 놀고 가야 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했다. 삼 남매를 번갈아 가며 안고 뛰었다. 난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 오래 놀지는 못했다. 덥기도 했고 모기도 있었다.
집에 와서 아내가 애들을 재우는 동안 난 건조기에 있던 빨래를 꺼내서 갰다. 양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그렇듯, 할머니가 꾹꾹 눌러 담아서 떠도 떠도 계속 나오는 고봉밥처럼 개도 개도 끝없이 나오는 느낌이었다. 울산에서 큰 깨달음을 준 K 를 본 받기로 한 결심의 후속 조치였다. 앞으로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