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 버튼은 신중하게

21.07.11(주일)

by 어깨아빠

원래 오늘부터 소윤이와 시윤이의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따로 시간을 내는 건 아니었고, 3주간 원래 주일 예배 시간에 한다고 했다. 갑자기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늘어나면서 다음 주부터 2주 동안 예배 자체가 중단되었고, 안 그래도 약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던 성경학교도 아예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어제 소윤이에게 이 소식을 전해줬는데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좀 의외였다. 소윤이가 그렇게 성경학교를 기다리는 줄 몰랐다. 그래도 오늘부터 아예 취소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쁜 마음으로 새싹꿈나무 예배에 갔다. 아내와 나는 서윤이가 쭉 잔 덕분에 방해받지 않고 예배를 드렸다. 서윤이의 방해는 받지 않았지만 나 자신(졸음의 자아)과의 처절한 싸움이 있었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는 오랜만에 집에 와서 점심을 먹었다. 여름휴가의 여파로 긴축 재정이 필요하다는 아내의 계획에 따른 것이었는데 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커피는 샀다. 원래 인생은 모순의 연속이다.


아내가 오후에는 장모님, 장이어른한테 가자고 했다. 내일부터 사적 모임이 강력하게 통제되니 그전에 마지막으로 뵙고 오자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느지막한 오후에 출발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당연하고 이제 서윤이까지도 조금의 적응 시간도 없이 내려놓자마자 자기 집인 양 돌아다녔다.


처가에 가면 잠시 육아에서 멀어질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일기가 많이 밀렸으니 가서 일기를 쓰겠다는 생각으로 가방에 노트북을 넣어서 챙겼다. 예상대로 아이들은 장모님, 장인어른이 놀아주시고 다소 자유로운 시간이 생겼다. 일기를 쓸 마음이 나지 않았다. 뭔가 너무 피곤하고 나른했다. 일기는커녕 계속 늘어져 있었다. 아내는 들어가서 한숨 자라고 했지만 괜찮다며 사양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육아의 연수가 쌓이니 자연스레 얻은 습관이다.


“아 아니야 괜찮아”


아내가 뭐 말만 하면 저렇게 대답할 때가 많아졌다.


거실에 앉아 있다가 잠시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자러 들어간 건 아니었다. 그저 잠시 누워서 쉬려고 그랬다.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거의 눕자마자 잠든 것 같다. 깊게는 못 잤는지 거실에서 노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꿈에서도 들렸다. 길게 자지는 않았지만 엄청 개운한 잠이었다.


저녁으로는 족발과 피자를 먹었다. 오늘은 유독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서윤이는 청개구리였다. 무릎에 앉혀 놓고 먹이려고 하면 바닥에 가서 앉겠다고 하고, 그럼 바닥에 앉아서 먹으라고 하면 또 내 무릎에 오겠다고 난리였다. 그러고 보니 정신이 없을만했네. 소윤이와 시윤이도 썩 잘 먹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새 식사 시간이 끝났지만 내가 식사를 했나 싶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샤워를 했다. 장모님은 아이 셋을 모두 씻기겠다고 하셨지만 아내는 바쁘게 움직였다. 친정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이 이끈 부지런함이었다. 저녁 먹은 걸 정리하고 계셨던 장모님은 다급한 목소리로 장인어른께 나머지 정리를 부탁하셨다. 결국 소윤이(정확하지는 않다)는 장모님이 씻기셨다. 서윤이를 포함해 삼 남매가 모두 말끔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잠깐 어디라도’ 나가자는 고정 레퍼토리를 읊었다. 공원에 가자나 뭐라나. 그 시간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집에 가기 전에 모두 나가 잠시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소윤이와 시윤이의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소윤이는 할머니 집에서 자고 가고 싶다며 뜬금없는 이야기를 던지기도 했다. 평소에 굉장히 논리적이고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소윤이가 가끔 이렇게 급발진을 할 때가 있다. 대체로 할머니, 할아버지랑 있을 때. 이해는 된다. 집에서는 점점 ‘맏딸’의 역할과 임무를 부여받고 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있으면 그저 귀한 ‘첫 손주’니까.


집에 돌아와 아내가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을 때, 난 빨래를 돌렸다. 울산에서 돌아와서 아내에게 세탁기 사용법을 다시 교육받았다. 세탁기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은 없..아니 있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단순히 세탁기 사용법이 아니라 ‘이가영의 세탁기 사용법’을 배운 거다. 다들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아내의 세탁기 및 건조기 운영법은 ‘내 기준’에서는 조금 복잡하다. 결혼하기 전에 잠시 자취할 때, 나의 세탁기 사용법은 간단했다. 세탁기에 빨래를 때려 넣고 세제 붓고 동작 버튼 누르면 끝. 그에 비해 아내의 방법은, 세탁망에 따로 넣어야 하는 빨래도 있고(꽤 여러 종류) 물의 양도 재설정 해야 하고, 식초도 넣어야 하고.


아내가 말해준 걸 성실히 지켜 가며 세탁기를 작동시켰다. 세탁망에 따로 분류해야 하는 빨래가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큰 틀에서의 기준은 알고 있었다. 아내는 이렇게 말했었다.


“서윤이 옷 중에 좀 비싸고 좋은 거랑 얇은 소재의 옷. 그리고 여보 옷 중에 건조기 안 돌리는 거”


세탁망에 넣은 빨래는 나중에 건조기를 돌릴 때도 열외가 되고, 건조대에 따로 널어야 한다. 특별 관리를 받는 옷들인 셈이다.


아내는 애들을 재우고 나와서 다소 미심쩍은 듯 하나하나 물으며 확인을 했다.


“여보. 세탁망에 넣었어? 서윤이 옷? 여보 셔츠도?”

“어, 다 넣었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났지만”


거들먹거리며 아내에게 대답하고 할 일을 시작했다. 두어 시간이 지나고 나서 피곤이 느껴져서


‘아, 이제 자야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익숙하고 단조로운,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소리만큼 듣고 싶지 않은 가락이 들렸다.


딴 따라라 딴딴 따라라 딴딴딴딴


“아 맞다. 빨래 돌렸지”


일단 빨래를 돌리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거다. 세탁기의 ‘동작’ 버튼은 매우 신중하게 눌러야 한다는 걸 몸소 배웠다. 좌절하는 나를 대신해 아내가 젖은 빨래를 건조기로 옮겨줬다. 물론 아내는 이 과정에서도 섬세한 검수와 분류 작업을 거친다.


모든 집안일의 전자동화 및 가전제품 외주화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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