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 없어도 주말은 주말

21.07.10(토)

by 어깨아빠

드디어 주말이다. 아내가 깊은 골짜기에서 잠시 넓은 평야로 나와 마음껏 햇살을 받을 수 있는 주말. 소윤이와 시윤이게도 마찬가지다.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랄 엄마 대신 등장한 아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시간이다. 서윤이에게는 어떤 시간인지 모르겠네.


날이 엄청 더웠다. 감히 어디 외출할 엄두를 못 내게 하는 날씨였다. 아내와 잠정적으로, 해가 좀 질 때쯤 나가기로 했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최선을 다했다. 오랜만에 우노도 하고, 그러고 보니 딱히 한 건 없네. 그냥 애들이랑 섞여서 지냈다. 소윤이는 얼마 전부터 루미큐브를 무척 배우고 싶어 했다. 오늘도 루미큐브 이야기를 꺼냈지만 쉽게 들어주기 어려웠다. 일단 시윤이가 루미큐브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항상 같이 있기 때문에 시윤이만 배제하고 소윤이한테만 가르쳐 주면 시윤이는 금방 알아차린다. 설령 ‘깍두기’처럼 끼워 준다고 해도 기분이 나쁠 거다. 서윤이의 방해도 뻔한 일이었다. 우노를 할 때도 서윤이 비위 맞춰 주면서 하느라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동생이 둘이나 있어서 감수해야 하는 소윤이의 애환이다.


점심에는 찜닭을 먹었다. 아내가 미리 재료를 다 준비해 놨다. 심지어 한살림에서 파는 양념까지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뭐 거저먹는 수준이었다. 아내는 서윤이 재울 때 같이 들여보내서 한숨 자게 하고, 찜닭을 만들었다. 파는 음식도 아니고, 항상 감에 의존하다 보니 만들 때마다 양념 맛이 다른 게 흠이었는데 양념까지 준비가 되어서 아주 든든했다.


시윤이는 주말에는, 그러니까 내가 함께 있을 때는 평일에 아내에게 보이는 말과 행동이 드러나지 않는다. 아직 잘 모르겠다. 아빠는 무서워서 그러는 건지 정서의 빈곤을 느낄 만한 시간이 없어서 그러는 건지. 아무튼 주말에는 그저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들이다. 이게 다행스러운 건지 안 다행스러운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내랑 서윤이는 한참 잤다. 찜닭이 푹 익고 거의 다 완성되었을 때쯤 일어났다.


찜닭을 맛있게 먹고 나자 소윤이와 시윤이는 외출의 욕구가 폭발했다. 사실 한참 전부터 그러긴 했다. 아빠랑 같이 있는 주말에, 아무 일도 없는 주말에, 집에만 있는 건 꽤 괴로운 일일 거다. 멀리 가기는 부담스럽지만 야외의 어떤 곳이 가고 싶을 때, 주로 가는 인근 동네의 공원(잔디밭에 가까운)에 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좋아하는(좋아하는 것치고는 매번 잠깐 하고 흥미를 잃긴 한다) 어린이 운동기구가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가는 길에 커피도 한 잔씩 샀다.


남자아이들 여러 명이 발야구를 하고 있었다. 발야구라는 말을 하는 것도, 쓰는 것도 무척 오랜만이고 발야구를 실제로 본 것도 진짜 오랜만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빠들이랑 형아들이 뭘 하는 거냐며 궁금해했다. 신이 나서 설명을 해줬지만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가끔 쌍욕이 오가기도 하고 공수교대를 할 때마다 판정 시비가 일긴했지만 그냥 왠지 모르게 흐뭇했다. 모바일과 온라인의 노예로 손가락질 받는 시대에 이렇게 더운 날 나와서 차고 뛰는 아이들이 있다는 자체가 그냥 뿌듯했다. 늙었나. 우리 애들 안 보고 걔네 노는 걸 한참 구경했다. 물론 내 본분도 다 했다. 이 더운 날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를 하면서 열심히 뛰기도 하고 서윤이를 안고 뛰기도 하고.


점심은 거하게 먹었으니 저녁은 간단히 먹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면서 자연드림에 들러서 간단히 장을 봤다. 애들은 간단히, 아내랑 나도 간단히 라면.


“아빠. 라면은 몸에 좋지는 않지만 가끔씩 먹는 건 괜찮져?”

“아, 괜찮다기보다는 안 먹는 게 좋긴 하지”

“근데 엄마랑 아빠는 왜 먹어여?”

“아, 그냥 먹을 것도 없고 그러니까”


우리 애들이 매운 음식은 아직 잘 못 먹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랬으면 라면을 먹을 때마다(자주 먹지도 않지만) 더 눈치가 보였을 거다. 아직 라면은 엄두도 못 내는 소윤이와 시윤이 앞에서 자유롭게 면치기를 하며 라면을 흡입했다.


별일 없었고 오후에 잠깐 나갔다 온 거지만 무더위, 샤워, 그밖의 자잘한 일상으로 피곤의 무게는 만만치 않게 쌓였다. 아내는 오늘도 애들 재우러 들어가서 다시 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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