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 라떼

21.07.12(주일)

by 어깨아빠

아내는 어제 자기 전에 새삼 현실을 인식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 내일부터 진정한 일상 시작이네”


금요일은 ‘다시 주말’이라는 힘으로 버텼지만 이제 정말 일상 다운 일상으로 복귀해야 했다. 아내의 막막한 심정이 조금 느껴졌다. 아내는 다시 찾아온 일상의 막막함을 부지런함으로 돌파하려는 듯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들 아침 반찬 만드는 걸 사진 찍어서 보냈는데 정성과 수고가 느껴졌다. 계란 프라이가 세 개인 걸 보니 오늘도 아침은 대충 때우려는 듯했다. 혼자 애들 밥을 정신없이 준비하다 보면 입맛도 없고 그래서 거르는 거나 마찬가지인 수준으로 때우고 넘길 때가 많다고 했다.


아내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로부터 한 시간쯤 뒤에 아내는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시윤이는 또 시작됐다 ㅎㅎ”


아내의 ‘ㅎㅎ’가 왠지 웃음이 아니라 ‘흑흑’처럼 느껴졌다. 과정은 항상 비슷하다. 아내가 뭔가를 하라고 하거나 하지 말라고 하면 (그건 대체로 아니 항상 매우 합당한 요구 혹은 시윤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싫다면서 짜증을 올리다가, 아내의 마음과 인격에 상처를 낼 정도의 말과 행동까지 가는 거다. 이걸 단순히 ‘짜증’, ‘떼’ 같은 단어로 기록하기에는 한참 모자라다.


소윤이 때는 해 보지 않은 경험이라 아내도 나도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다. 아내도 나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 요상한 느낌이다. 왜 그러는지도 대충 알겠는데 사실은 잘 모르겠고. 분명히 오픈북 시험인데 문제도 어렵고 답 쓰는 건 더 어려웠던 그 느낌이랄까. 아내가 상황을 얘기하면 내 나름대로 아내에게 방향을 제시하곤 하지만 그건 아내도 아는 내용이다.


어쨌든 매일 매듭이 지어지긴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아내가 몸과 마음, 특히 마음의 타격을 너무 많이 입는 게 문제다. 아내가 그런 소식을 전할 때마다 일에 집중하기가 어려워진다. 아내도 나에게 이야기하면 내가 어떨지 아니까 이야기를 안 하려다가도, 또 나한테라도 이야기하지 않으면 답답하고 우울해서 어쩌지를 못하니까 하는 거다. 그나마도 걸러서 하는 것일 테고.


시윤이는 그 이후로도 한두 번 더 그랬다고 했다. 부모니까 참고 기다려야 하고 먼저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멀쩡해서 그러는 건 아니다. 상대가 아무리 다섯 살, 내 배 아파서 낳은 사랑하는 자녀라도.


다 연결되어 있는 문제겠지만 또 어떻게 보면 별개의 문제다. 시윤이의 사랑의 그릇을 채워주는 건 그것대로,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을 묻는 건 그것대로, 몸과 마음이 상한 아내를 보듬어 주는 건 그것대로, 엄마와 동생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눈치와 철이 생기는 소윤이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그것대로. 각각 수행해야 할 일들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할 수 있어도 빠져야 할 일도 있고.


그런 분별을 떠나서 오늘은 그냥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항상 안쓰럽지만 오늘은 뭔가 더 적극적으로 위로해 주고 싶었다. 퇴근하는 길에 꽃집에 들러서 장미 한 송이를 샀다(자주 가던 꽃집이었는데 가게 이름도 바뀌고 사장님도 바뀌었다. 이제 안 갈 것 같다). 카페에 들러 아이스 라떼도 한 잔 샀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아내가 전해준 집이 아닌 ‘다른 집’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나를 향해 웃으며 달려오고 아내는 열심히 저녁 준비를 하고. 아내의 얼굴, 정확히는 눈에만 오늘의 흔적이 남아 있다(물론 나도 미리 듣지 못했으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내는 나의 장미와 커피를 보고 약간 울컥한 것 같았다. 그거면 성공이다. 아내의 마음 알아줄 이 남편뿐이다.


소윤이는 요즘 용돈에 대한 개념이 생기면서 엄마와 아빠가 언제 용돈을 줄지 매우 궁금해한다. 사실 아내와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아빠의 생일이 되기 전에 꼭 용돈을 달라고 했다. 그걸 모아야 아빠 선물을 뭐라도 하나 살 수 있다면서. 오늘은 또 그 얘기를 하면서 아내에게


“엄마. 아빠 생신 전에 용돈을 주신다고 했는데 근데 지갑이 없으면 돈을 보관할 수가 없어여. 지갑이 없으면 용돈을 받을 필요가 없어요 그쳐?”


라고 말하면서 씨익 웃었다고 했다. 오늘 같은 날은 아내가 시윤이한테 뺨 맞고 소윤이한테 가서 위로받는 날인가. 시윤이가 아기 때, 반대였던 날도 허다했다. 요즘 시윤이를 보면 나중에 애들이 좀 크고 나서도 얼마나 고민과 걱정이 많을지 상상하게 된다.


아내는 애들을 모두 재우고 나와서 다급하게 나갔다. 기저귀 바우처를 써야 하는데 온라인에서는 쓸 수 있는 곳이 제한적이라고 했나 아니면 원하는 기저귀가 없다고 했나. 아무튼 동네 근처 마트에 쓸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문 닫기 전에 가야 한다고 했다.


애들을 재우고 ‘육아 퇴근’을 한 뒤에도 기저귀를 사러 나가야 하는 아이 셋 육아인의 삶을 바로 옆에서 보니, 오늘은 유독 더 아내가 얼마나 굳건히 내가 나간 집을 지키고 있는지 느껴졌다. 장미 한 송이는 아내의 원래(?) 모습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는, 그리고 스스로도 잊지 말라는 나의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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