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삼겹살

21.07.13(화)

by 어깨아빠

“서윤이 왜 이러지ㅠㅠ”


아침부터 아내가 저렇게 카톡을 보내서 화들짝 놀랐다. 어디 아프거나 열이 나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다. 밥 먹다가 밥풀이 숟가락에 조금 남으면 오열한다면서 동영상도 보내줬다. 나도 몇 번 경험한 일이었다. 밥풀은 아니었고 서윤이가 좋아하는 반찬이 입에 안 들어가고 숟가락에 남으면 그러곤 했다. 아마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을 거다. 그렇게 울면서도 끝까지 다 먹었다고 했다.


점심에는 네이버페이 결제 알림이 날라왔다. 내가 결제하지 않았으니 아내가 결제했을 거다.


“포실포실 감자 햄치…”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배달시켰나 보다. 괜히 반가웠다. 아내가 끼니 준비의 짐과 부담을 훌훌 털어버리고 맛있는 거 배달시켜 먹는 게, 내가 다 좋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안타깝게도, 커피는 ‘인생 최악’으로 꼽을 만큼 맛이 없었다고 했다.


소윤이는 날이 갈수록 7살의 성숙함인지 ‘장’녀의 성숙함인지 장’녀’의 성숙함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속 깊은 행동을 자주 보여준다. 오늘도 있었다. 서윤이가 거실에서 놀다 잠들었길래 아내가 그대로 눕혀놨는데 소윤이가 손수건으로 머리를 덮어줬다고 했다. 땀 흘리지 말라고. 그러고 나서는 서윤이 머리맡에 장난감 스피커를 가지고 와서 자장가도 틀어줬다고 했다.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벌써부터 동생들을 챙기는 마음이 느껴져서 기특하기도 한데, 아주 가끔은 괜히 짠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너무 큰 거 같아서. 너무 큰 거 같아도 아직 아기인데.


아내는 오늘도 오후의 끄트머리에, 그러니까 나의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 ‘시윤이가 또 심각하다’며 기도를 부탁했다.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아서 아내는 매일 눈물을 쏟으며 보내고 있다. 아내의 기분이 어떨지 상상은 된다. 온전한 공감은 불가능해도.


얼른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 회사 동료를 집까지 바래다주게 됐다. 퇴근 시간이라 막히는 걸 감안하면, 동료를 바래다 주고 집까지 가는데 최소 2시간 30분이 걸릴 것 같았다. 아내에게 소식(?)을 전하려고 전화를 했다. 다행히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지 아내가 차분히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아이들은 먼저 저녁을 먹여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를 나누고 통화를 마쳤다.


한 시간 정도 걸려서 동료를 집에 바래다줬다. 가서 보니 (내) 엄마, 아빠 집에서 10분 거리였다. 어차피 늦은 거 엄마, 아빠 얼굴이나 보고 갈까 싶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내의 상황도 볼 겸 얘기도 할 겸.


아내의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 아내는 울고 있었다.


“여보. 왜? 또 시윤이 때문에?”

“기도하고 있었어”

“어, 알았어. 나 이제 출발해”


저녁은 무슨, 서둘러 출발했다. 역시나 집에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게 정리되고 평화로운 상태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막 저녁을 다 먹고 씻으려던 참이었다. 애들이 자기 전에 얼굴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이들 저녁은 삼겹살이었다. 내 삼겹살은 내가 알아서 구워 먹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해도 아내는 기어코 내 저녁도 준비하겠다면서 나한테 애들을 씻겨 달라고 했다.


시윤이를 씻기면서 시윤이한테 슬쩍 물어봤다.


“시윤아. 시윤이는 요즘 뭐가 제일 속상해?”

“음…”

“괜찮아. 아빠가 그냥 궁금해서 그래”

“내가 엄마한테 안겨 있는데 서윤이가 오는 거”

“아, 그때가 제일 속상해?”

“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서윤이가 내가 없을 때 엄마한테 오거나 서윤이가 와도 내가 계속 앉아 있었으면 좋겠어여”

“아, 그렇구나. 그래 엄마한테도 말해줘야겠다”


이게 시윤이의 모든 마음을 대변하는 건 아니겠지만, 꽤 큰 공간을 차지한 마음인 건 분명해 보였다. 요즘은 나도 별생각이 다 든다. 그동안 내가 시윤이한테 뭘 잘못한 게 있었나, 나도 모르게 시윤이의 마음을 뭉개고 있었던 게 있었나, 이건 괜히 이렇게 했나, 그건 괜히 그렇게 했나. 나도 이런데 아내는 오죽할까.


아까 울었던 건 다행히(?) 당장 시윤이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시윤이와의 관계 때문에 꽉 막힌 것 같은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 그냥 방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고는 기도를 시작했다고 했다. 아내는 이렇게 표현했다.


“사실 울 핑계가 필요했지. 기도한다는 핑계로 울려고”


어찌 됐든 아내는 아이들을 신경 쓰지 않고 한참 기도에 매진했다고 했다. 물론 엄마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는 서윤이는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게 그거지만 그래도 기도하면서 운 거라고 하니 조금 마음이 놓이긴 했다. 아내는 그렇게 울고 난 와중에도 애들 저녁이라며 삼겹살을 구워주고 저녁을 차려줬다. 꾸역꾸역 내 삼겹살도 구워 준 거고.


아내는 애들을 재우러 들어갔고 난 아내가 눈물로 구워준 삼겹살을 홀로 앉아서 먹었다.


소윤이는 요즘도 엄마에게 편지를 많이 쓴다. 거의 매일 하루에 한 통씩. 원래 엄마를 향한 사랑 고백이 가장 많았다. 아니, 어쩌면 그게 거의 유일한 내용이었다. 요즘은 다른 내용도 조금씩 생겼다. 엄마를 위로하는 내용, 시윤이의 급발진에 원인을 제공한 것을 사과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오늘 소윤이가 쓴 편지의 한 구절이 참 뭉클했다.


“시윤이에 잘못과 제 잘못이 똑같아요”


나의 아내, 아들, 딸. 다들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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