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하늘 뒤에 숨겨진 폭염

21.07.17(토)

by 어깨아빠

진짜 엄청 더웠다. 요즘 계속 덥긴 했지만 오늘은 정말 더웠다. 하늘은 너무 파랗고 맑았다. 집 안에서 보면 3월의 봄날 같았는데 문을 열면 뜨거운 공기가 쑤욱 들어왔다. 사실 우리도 잘 몰랐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어디든 잠깐이라도 나가자고 성화였고 아내와 나는 그럴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산책이든 놀이터든 밖에서 시간을 좀 보낼 생각이었다.


점심에 토스트를 먹으려고 식빵을 사러 나갔다 왔다. 내가 소윤이와 시윤이, 서윤이까지 모두 데리고 나왔다. 한 1분 걸었더니 ‘그냥 더운’ 수준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소윤아, 시윤아. 진짜 덥다. 장난 아니네?”

“아빠. 너무 더워여”

“소윤아, 시윤아. 아무래도 우리 이따 밖에서 노는 건 너무 힘들겠는데. 그치?”

“하아. 그래도 놀고 싶긴 한데”

“너무 덥잖아”

“그래도 어디라도 나가자여”

“그래. 근데 밖에는 못 있을 거 같아”

“그럼 어디 가여?”

“글쎄. 뭐 마트 이런데?”


식빵 하나 사러 다녀왔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이 날씨에 밖에서 노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아쉬워했지만 더 얘기하지는 않았다. 마트가 됐든 어디가 됐든 실내의 어딘가를 가는 것으로 일단 정했다. 평일 5일 동안 두 번 정도밖에 바깥공기를 마시지 못한 아이들을 생각하면 잠깐이라도 나가긴 해야 했다.


점심 먹고 나서는 오랜만 아니 처음인 거 같다. 시윤이 공부하는 걸 봐 줬다. 주말에는 아무래도 노는 데 집중하다 보니 따로 공부를 하지 않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오늘은 아내가 진작에 시윤이 공부하는 것 좀 봐 달라고 얘기를 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도 미리 시간을 예고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서 시윤이에게 교재를 가지고 오라고 했더니 흔쾌히 들고 왔다. 시윤이의 집중력과 끈기에 놀랐다.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시윤이가 좀 힘들어하거나 짜증을 낼 기미가 보이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전략을 짜고 있었다. 0부터 9까지 흐릿하게 쓰인 걸 따라서, 0부터 9까지 혼자서, 다시 9부터 0까지 쓰인 걸 따라서, 9부터 0까지 혼자 힘으로. 하나하나 쓸 때마다 또렷하게 읽으면서. 뭔가를 배우기 위해 쓴다는 게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시윤이는 연필을 쥐었던 오른손을 몇 번이나 털어가며 열심히 썼다. 시간도 꽤 오래 걸렸다. 난 옆에서 열심히 격려하고 칭찬했다. 칭찬도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된다고 하니 칭찬할 때도 계속 생각을 해야 한다. 아이 키우는 게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다. 아내가 넌지시 알려준 의무 분량까지 마쳤을 때, 시윤이에게 선택권을 줬다.


“시윤아. 안 힘들어?”

“힘들어여”

“그럼 그만할까? 여기까지만 해도 되는데 오늘은”

“아니여 더 할래여”

“진짜? 안 해도 되는데”

“그래도 할래여”


시윤이는 끝까지 마쳤다. 양도 양인데 집중하는 태도에 더 놀랐다. 내가 모르는 시윤이의 모습이었다. 아내랑 있을 때는 공부할 때도 급발진(?)을 많이 한다고 했는데, 오늘은 그런 게 없었다. 공부할 때는 물론이고 하루 종일 없었다. 아내도 나도 일부러 애를 많이 썼다. 공부할 때도 서윤이가 다가와서 방해하려고 하면


“서윤아. 지금 오빠가 공부하는 시간이니까 서윤이가 좀 기다려줘”


라고 얘기하고. 시윤이가 뭔가 가지고 놀고 있는데 서윤이가 와서 뺏어가면


“서윤아. 아니야. 그건 오빠가 먼저 하고 있었으니까 오빠한테 돌려줘”


라고 하고.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시윤이한테 양보하라고 하거나 신경 쓰지 않았을 일들에 더 신경을 썼다. 신기한 건, 서윤이도 다 알아듣는다. 순순히 자기 걸 내어 놓을 때도 많다. 안아주는 것도 틈이 날 때마다 많이 했다. 난 원래 안아주는 걸 좋아한다. 내 느낌에는 오히려 애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내가 더 많이 안는 거 같기도 하다.


오후 늦게, 동네 마트로 마실을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최선이었다. 폭염이니 바깥 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도 오는 걸 보면, 진짜 덥긴 더웠나 보다. 밖에 나가서 놀지 못하고 마트에 가는 대신


“우리 것도 꼭 하나 사야 돼여”


라고 말하는 시윤이의 요구에 따라 비요뜨를 하나씩 사줬다. 카페에 들러 커피를 한 잔씩 사서 집에 돌아왔다.


저녁은 애들만 먹였다. 아내와 나는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아구찜에 꽂혔다. 어제 사 준 건 취소하고 오늘 아구찜을 사는 걸로 해도 된다는 나의 말에 아내는 바로 그렇게 했다. 아이들 저녁은 짜장이었다. 아내가 만들었다. 아내와 나는 모두 배가 엄청 고팠지만 나중을 위해 꾹 참았다. 아, 아내는 애들 먹을 때 같이 조금 먹었다.


저녁에 온라인 모임이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빠른 시간에 끝났다. 아구찜을 파는 가게는 차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굳이 차를 타고 가서 사 올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아내가 가기로 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아빠가 너네를 너무 재워주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소윤이와 시윤이가 이런 가당찮은 술수에 넘어갈 리 없다. 므훗한 웃음을 지으며 날 쳐다봤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꺼이 그래주겠노라며 받아들였다. 서윤이는 오늘은 아예 울고 그런 것도 없었다. 너무 졸렸는지 눕히자마자 바로 자는 자세를 잡았다. 재워준다고 한 것치고는 들어가자마자 인사를 나누고 바로 눈을 감았다. 재워주는 게 아니라 감시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신 셋 모두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시윤이는 낮잠을 자서 금방 안 잘 줄 알았는데 의외로 금방 잠들었다.


“곧 도착”


아내의 카톡을 받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다. 아내랑 나는 고개를 처박고 아구살을 발라먹는데 열중했다. 이거 며칠 전에도 있었던 장면 같은데.


“와, 여보. 너무 맛있다. 너무 잘 먹었다”

“그러게. 이런 생선을 먹고도 배가 부르는 게 늘 신기하다”


내일도 오늘처럼 덥다던데, 마트는 이미 다녀왔는데, 내일은 뭐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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