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8(주일)
역시나 더웠다. 코로나에 폭염에 갑갑한 상황에 어제처럼 하늘 파랗고 맑았다. 그나마 날씨라도 좋으니 위안이 되는 것도 같고, 반대로 날도 좋은데 못 나간다고 생각하니 괜히 더 답답한 것도 같고. 어제 마트 카드를 써 버려서 오늘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이었다.
예배는 집에서 드렸다. 의자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드렸는데 의외로 서윤이의 방해가 없었다. 괜히 한 번씩 노트북에 손을 갖다 대면서 눈치를 보기는 했지만 안 된다고 말하니 바로 손을 내렸다. 서윤이 때의 아기들은 말이 아니라 표정을 보고 안다던데,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나 아내의 표정을 보고 상황 파악이 안 될 때는 자기가 먼저 웃는다. 이제 눈치도 보고 처세도 하고. 정말 많이 컸다.
예배를 드리고 나서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석 블록을 꺼내 달라고 했다. 꺼내주기 전에 미리 얘기했다.
“서윤이가 있기 때문에 너네가 만들어 놓은 걸 부술지도 몰라. 그래도 짜증 내면 안 돼. 알았지? 미리미리 피해 놓던가”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러겠다고 했다. 서윤이가 방해하는 건 물론이고 완성된 걸 파괴하는 것도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자석 블록이 눈물의 블록이 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미리 알려주고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서윤이는 언니와 오빠를 열심히 방해했다. 그래도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얌전한 편이었지만 어쨌든 애들이 만든 걸 부수기도 하고 필요한 걸 가지고 가서 안 주기도 하고 그랬다. 미리 얘기를 해 놓은 효과가 있었는지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쁘게(?) 다시 만들거나 서윤이에게 블록을 내어줬다. 정말 지키고 싶은 건 미리 식탁으로 피신을 시키고 아내에게 얘기했다.
“엄마. 이거 사진으로 남겨주세요”
사진을 찍고 나면 서윤이에게 헌납했다. 기특하다. 다른 집에서 태어났으면 훼방 놓는 동생이랑 대판 싸우며 승리를 쟁취했을 텐데. 대신 오늘도 서윤이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시윤이의 편을 들어줬다(소윤이는 이제 급이 좀 다르다. 서윤이랑은 밀고 당기는 게 없다). 서윤이를 훈육하기 위한 목적은 0.1 % 정도였고, 시윤이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 99.9%였다.
서윤이는 점심을 먹고 나서 매우 심하게 칭얼거렸다. 낮잠이 늦어서 엄청 졸린 것 같았다. 바로 서윤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서윤이 재우고 나올게”
아내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다. 주말에는 아내가 재우면서 같이 자는 게 일종의 루틴인데 그걸 빼앗겨서 그런 듯했다. 서윤이는 엄청 금방 잠들었다. 한 5분 만에. 나도 바로 나왔다. 아내의 걱정과 염려를 덜어주기 위해 빨리 나왔다. 아내는 무척 졸려 보였다.
“여보. 들어가서 좀 자. 서윤이랑”
“그럴까?”
아내는 들어갔고 난 집안일을 시작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틈이 날 때마다 잘 실천하고 있다. 설거지도 하고 건조기에 있던 빨래는 꺼내고 세탁기에 다 된 빨래는 건조기로 옮기고. 주방 한쪽에 앉아서 건조기 먼지 거름망의 먼지를 청소기로 빨아들이는 나 자신을 자각한 순간, 사람은 변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내에게 배웠으니 아내가 하는 대로 그대로. 사실 완전히 그대로 하지는 않았다. 아내는 세탁기에 있던 빨래를 한 번씩 세게 턴 뒤에 건조기에 넣는다.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그래야 안 구겨진다고 했다. 나도 아내를 따라서 그렇게 하다가 빨래가 너무 많길래 그냥 때려 넣었다. 아내가 알아차리나 못 알아차리나 봐야지. 원래 회사에서 일할 때도 내 나름의 선을 정하기 위해 테스트를 많이 한다. 과연 나의 상급자는 어느 정도까지 알아차리고 꼼꼼하게 보는지.
건조기에 있던 빨래를 소파 위에 꺼내 놓고 세탁기에 있던 빨래를 정리하는데 소윤이가 소파에 있는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소윤아. 안 개도 돼. 아빠가 할게. 넌 시윤이랑 놀아”
“아니에여. 괜찮아여. 저도 할게여”
아, 우리 딸이 왜 이렇게 기특하게 큰 거지. 소윤이랑 마주 앉아서 빨래를 갰다. 소윤이가 어떻게 개야 하는지 알려줬다.
“아빠. 엄마가 그러는데 제 옷이나 시윤이 옷은 너무 작게 개지 말고 조금 길게 개야 한대여. 그래야 서랍에 넣을 수가 있다고 하던데여. 그러니까 아빠도 그렇게 개여”
“아, 그래? 알았어”
사실 나도 예전에 들은 말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난다. 어느 정도 크기로 개라고 했는지 다 까먹었다.
“소윤아. 이 정도?”
“그 정도면 될 거 같은데여?”
시윤이는 앉지 않았다. 누나가 하는 건 자기도 뭐든 하려고 하면서 집안일은 아닌가 보다. 옆에서 열심히 손가락도 빨고 나랑 소윤이랑 대화도 하고 그랬다. 같이 앉아서 할 법도 했는데 그러지는 않았다.
“아빠. 엄마가 나와서 이거 갠 거 보면 엄청 좋아하시겠져?”
“그럼”
“엄마가 할 일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좋겠져?”
“그러게”
소윤이는 진심으로 엄마가 나와서 좋아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소윤이를 보면서 문득 ‘이렇게 키운 딸을 어떤 새 아니 어떤 놈에게 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사위를 압도하려면 그때까지 이 덩치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는 꽤 길게 자고 나왔다. 소윤이의 바람대로 아내는 나와서 무척 좋아했다. 소윤이도 엄마를 보며 무척 흐뭇해했다.
오늘 외출의 명분은 팥빙수로 삼았다. 날이 너무 더우니 팥빙수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아내와 나는 커피도 한 잔씩 마시고. 윌에 가기로 했다. 서윤이랑 카페에 가는 건 언제나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하지만 감자와 고구마로 조금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아내와 나는 커피 한 잔씩, 소윤이와 시윤이는 팥빙수, 서윤이는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사과칩. 팥빙수와 함께 나온 숟가락은 다섯 개였다. 서윤이 것까지 챙겨주셨나 보다. 시윤이가 팥빙수를 너무 맛있게 먹었다. 진짜 무슨 국밥을 먹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는 쉬지 않고 숟가락을 움직였다. 팥빙수가 꽤 맛있어서 (나중에 알고 보니 직접 쑨 팥이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숟가락을 집어넣었다가 시윤이를 보면서 슬그머니 빼기를 여러 번 했다. 정말 잘 먹었다. 소윤이도 물론 잘 먹었지만 시윤이가 진짜 맛있게 잘 먹었다.
“아 또 먹고 싶다아”
시윤이는 진심이었다. 이게 찬 팥빙수가 아니었다면 진짜 더 사줬을지도 모른다. 배탈 나고 감기 걸릴까 봐 더 사주지는 않았지만, 탕수육 먹을 때만큼 집중해서 먹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팥빙수가 몸에 좋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냥 그렇게 잘 먹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마트에 들러 저녁 먹을 걸 사는 것으로 우리의 짧은 외출은 끝났다.
애들은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주고 아내와 나는 비빔면을 먹었다. 서윤이 저녁은 빼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밥을 조금씩 덜고, 밥솥에 남은 밥을 섞어서 줬다. 서윤아, 미안. 너도 일반인(?)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게 아직 각인이 안 됐나 보다.
내가 요리할 때의 최대 단점은 설거지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거다. 나름대로는 최소화하려고 하는데 하다 보면 잘 안된다. 맛있게 먹을 때는 좋지만 먹고 나서 주방에 서면 후회스럽다. 하루빨리 이사를 가서 식기세척기를 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를 가는 건 기약이 없으니(사실 구체적인 계획도 없다) 식기 세척수(手 - 나의 두 손)를 부지런히 움직였다.
주말답게 아내가 좀 더 편히 쉴 수 있게 만들어 줘서 좋았다. 시윤이와의 힘든 한 주를 보낸 아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움이다.
애들을 다 재우고 나서는 다시 시윤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와 나는 조금 더 구체적인 분석과 결론을 도출했다. 아내의 사랑의 언어는 ‘스킨십’이 아니라는 것에 둘 다 공감했다. 시윤이를 핑계로 얘기하며 ‘나도 평소에 그것 때문에 약간 불만이 있다’는 걸 드러냈다. 아내는 인정했다. 내 생각에도 아내가 시윤이를 많이 안아주려면 생각 이상의 의지와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힘들겠지만 일단 그것부터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 정말 꼭 해야 되는 일, 피할 수 없는 일이 아니면 미뤄도 되니 시윤이를 많이 안아주는데 시간을 많이 많이 쓰라고 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한 시간일지도 모르니가.
아내는 결심과 의지를 다지며 종이에다 ‘안아주기❤︎’, ‘뽀뽀해주기❤︎’라고 써서, 가장 잘 보이는 곳(가스레인지 위)에 붙였다.
“여보. 내일 또 시작이네. 나 잘 할 수 있겠지?”
“어. 지금도 잘 하고 있어. 걱정하지 마”
얘들아, 엄마가 이렇게나 노력하신다. 너네 복받은 거야.